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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기억할 오늘] 페렐만의 선택(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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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이 2006년 오늘 '필즈상' 수상을 거부했다. Pravda.ru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Grigori Perelman, 1966.6.13~ )이 2006년 8월 22일,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 수상을 거부했다. 그는 4년 전 밀레니엄 수학 7대 난제 중 하나인 ‘푸앵카레 가설’을 증명, 국제수학자연맹(IMU) 필즈상 위원회 만장일치로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의 결심을 되돌리기 위해 IMU 회장 존 볼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까지 찾아갔지만 페렐만은 만남조차 거부했다.

4년 뒤인 2010년 3월, 2000년 7대 난제 선정기관인 미국 클레이수학연구소가 상금 100만달러의 ‘밀레니엄 상’ 첫 수상자로 그를 선정했지만 그는 그 상도 마다했다. 그 무렵 그는 직장마저 사표를 낸 채 도시 외곽 한 어린이 자선재단 소유의 ‘바퀴벌레가 들끓는’ 숲속 오두막에서 노모와 함께 은둔하듯 지내고 있었다. 찾아온 기자에게 그는 “상금에도 명예에도 관심 없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미 모두 가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이듬해 러시아 학자 최고의 영예로 꼽힌다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의 정회원 자격도 사실상 거부했다. 그를 추천한 스테클로프연구소 측은 끝내 그의 동의서를 얻지 못했다.

그는 1982년 레닌그라드고교 시절 소련 대표로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출전해 만점으로 금메달을 땄다. 레닌그라드대에 진학 90년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UC버클리 펠로를 거쳐 95년 귀국해 스테클로프연구소에서 일했다.

사실 페렐만은 상뿐 아니라 수학계 자체를 등졌다. 상의 명예에는 관심 없었을지 모르나, 학자적 윤리와 명예에는 누구보다 예민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푸엥카레 가설 증명을 두고 수학계가 근 4년간 검증을 벌이던 무렵, 역시 필즈상 수상 이력의 하버드대 수학자 싱퉁야우(Shing-Tung Yau)가 자기 제자들의 공로를 부각하며 페렐만을 공개적으로 폄훼한 일이 있었다. 그의 주장은 물론 그릇된 것으로 판명 났다. 수학자 존 내시의 전기를 쓴 실비아 나사르(Sylvia Nasar)는 그 과정에 페렐만이 ‘숫자처럼 정확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수학계’에 대해 환멸을 느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페렐만은 “수학자 중에도 정직한 이들이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들도 대부분 순응주의자일 뿐이다. 그들은 정직하지 않은 자를 용인할 만큼, 얼마간만(more or less) 정직했다”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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