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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기억할 오늘] 인민공화국의 인민봉기(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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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10년 전인 2009년 6월 19일 중국 허베이성 스셔우 시에서 '인민공화국 건국이래 최대 규모'의 시민 봉기가 일어났다. 최근의 홍콩 특별행정구 봉기로 그 기록도 깨졌다. rfa.org


미 하원의회가 출자해 1996년 설립한 아시아 단파라디오 방송 RFA(Radio Free Asia)에 따르면, 어지간한 규모가 아닌 한 좀체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 중국서도 시위와 폭동, 노동쟁의나 연좌농성 등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대중 저항운동이 한 해 평균 1,000여건씩 발생한다고 한다. 30년 전의 톈안먼사태 이후 최근의 ‘특별행정구’ 홍콩의 대중봉기 이전까지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거의 없었지만, 성(省)이나 시 등 지역 당과 행정ㆍ공안 당국의 불의나 부정에 대한 저항은 끊이지 않았고, 미국 얘기니 100% 신뢰할 순 없지만, 시장 경제 비중이 커지고 지역ㆍ계층간 빈부격차가 심화하면서 저항의 규모와 양상도 점점 거칠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중국의 대표적 국영 싱크탱크인 중국 사회과학아카데미가 1949년 공화국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한 거리 폭동’이라 규정한 스셔우(ShiShou) 봉기가 10년 전인 2009년 6월 19일, 허베이(湖北) 성 스셔우(石首) 시에서 일어났다. 시ㆍ당 권력자들이 지역 유력자와 결탁, 비리를 저지르고 살인을 포함한 갖은 범죄를 은폐하고 있다고 여긴 시민 수만여 명이 만 이틀간 도시 주요 도로를 점거한 채 경찰과 무력으로 대치한 사건이었다.

2009년 6월 17일 새벽, 스셔우의 가장 큰 호텔인 ‘융룽(永隆)호텔’의 24세 요리사 위안가오(徐遠高)가 호텔 정문 앞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몸은 구타를 당한 흔적이 역력했지만, 경찰은 그가 남겼다는 염세적 내용의 유서를 근거로 자살로 결론 지었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당시 그 호텔은 마약 거래의 온상으로 악명 높았고 그 전에도 직원 의문사 등 여러 차례 의심스러운 일들이 빚어졌지만 은폐됐다고 한다. 호텔 공동 소유주 중 한 명이 시장과 시 당서기의 친척이었다. 시 실력자 중 다수가 호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사건 전 요리사는 호텔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말을 지인들에게 하곤 했다고 한다. 시민들은 그가 청부 폭력으로 숨졌다고 여겼다.

봉기 시민은 최대 7만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시 당국은 전투경찰 포함 1만여명의 경찰 지원을 받아 시신을 탈취한 뒤 부검을 통해 자살로 공식 판정했고, 시신은 6월 25일 화장됐다. 시 당서기 등 관련자들은 1년 뒤 실각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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