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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기억할 오늘]국제 모국어의 날(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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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오늘은 국제 모국어의날이다. 사진은 가자지구 북부 자발야 난민캠프 어린이들의 수업 장면. u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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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의 세계적 석학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 1909~1997)에게 18세기 독일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와 사실주의를 잇는 ‘일개’ 문예사조가 아니라, 서구 2000년 역사의 가장 중요한 사상혁명이었다. 당대 계몽주의로 선명하게 부각된 서구 지적 전통의 세 기둥, 즉 “모든 진정한 질문에는 대답이 존재한다”는 확신과 답을 찾는 방법 역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는 신념, 모든 대답은 서로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타격한 게 낭만주의였다.

낭만주의자들은 모든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대답’들, 가치와 규범들을 비판하고 조롱했다. 그들은 기후와 토양과 제도가 다 다르듯 인간은 저마다 다른 독립적인 존재라 여겼고, 세상의 사물과 현상도 계몽적 이성주의자들이 말하듯 인과의 연역-귀납으로 모든 답을 구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지식 대신 신념을, 보편 대신 특수를, 추상 대신 구체를, 질서 정연한 법칙 대신 질풍노도의 열정을 중시했다.

저 거역, 혹은 혁명의 모든 과정을 촉발시킨 한 사람으로, 벌린은 칸트의 친구인 독일철학자 요한 게오르크 하만을 꼽았고, 하만은 저 낭만주의의 전복적 사유를 다듬은 도구 중 하나로 ‘언어’를 꼽았다. 그는 ‘한 언어로 지각하고 사유한 것은 다른 어떤 언어로도 미세한 부분까지 똑같이 표현될 수 있다’고 주장하던 계몽주의자들을 비판하며 “언어는 장갑처럼 벗었다 낄 수 있는 사유의 수단이 아니다”라고, “인간은 사유할 때 상징으로 사유하며 언어로 사유한다”고 주장했다.

1952년 2월 21일, 서파키스탄(현 파키스탄) 정부가 ‘식민지’ 동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 71년 독립) 시민들에게 그들의 모국어(벵골어)를 박탈하고 서파키스탄 엘리트 계층 언어인 ‘우르드’를 가르치고 쓰게 하자 동파키스탄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시위를 벌였다. 유네스코는 1999년 그날을 기려 ‘국제 모국어의 날’로 선포했고, 2008년 유엔총회가 공식 지정했다. 유엔은 “언어는 유ㆍ무형 인류자산의 보존ㆍ발전을 위한 가장 힘센 수단이며, 문화 다양성 확보의 관건”이라고 밝혔다.

21세기 지구에는 7,000여개의 언어가 있지만, 2050년이면 그중 90%가 사라질 운명이라고 한다. 세계는 속절없이 세계화하고 있고, 언어와 함께 낭만주의의 자리도 위태로워지고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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