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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문재인 대통령이 호명한 ‘열사 4명’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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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사진=동아일보DB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호명한 4명의 열사들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오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 했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도 함께 기리고 싶다”며 전두환 정권 하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죽은 故 박관현, 표정두, 조성만, 박래전 열사의 이름을 호명했다.

故 박관현 열사는 1953년 전남 영광군에서 태어났으며, 1978년 전남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던 중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민족민주화 대성회’를 주도했으나 다음날 17일 계엄군의 일제 검거를 피해 은신했다. 그는 약 2년간의 은신기간 동안 서울 공릉동 등에서 노동자로 생활했다.

이후 박 열사는 1982년 4월 체포됐으며, 내란죄 등으로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광주교도소에서 40일간 옥중단식투쟁을 하며 5·18 민주화운동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다가 끝내 숨졌다.

1963년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난 故 표정두 열사는 1980년 당시 광주 대동고 학생으로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야학교사, 신흥금속 노동자로 일하며 민주화 운동을 지속해왔으나, 1987년 3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근처에서 기름을 몸에 끼얹고 불을 붙인 후 “장기집권 음모 분쇄”, “광주사태 책임지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주한 미 대사관 앞으로 가다가 쓰러졌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이틀 후 눈을 감았다.

故 조성만 열사는 1964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1984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1987년 대선 당시 부정선거 규탄을 위한 ‘구로구청 농성’에 참가해 구류 10일을 받았다.

이후 가톨릭민속연구회 회장이었던 조 열사는 명동성당 구내 교육관 4층 옥상에서 “양심수를 석방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투신했다. 투신 후 그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그날 저녁에 운명했다.

故 박래전 열사는 위 세 사람과 다르게 ‘광주·전라도 출신’은 아니지만, 당시 5·18 광주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힘썼다. 박 열사는 1963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1982년 숭실대학교에 입학했으며, 민중후보 선거대책위 선전국장·민중정당결성 학생추진위 선전국장 등을 맡았다.

그는 꾸준히 광주학살 진상규명 및 6·10남북학생회담 쟁취 투쟁을 벌여왔으나 1988년 6월 4일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광주는 살아있다”, “군사파쇼 타도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신했다. 이틀 뒤 박 열사는 끝내 눈을 감았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4명의 열사들을 호명한 후 “광주정신으로 희생하며 평생을 살아온 전국의 5·18들을 함께 기억해달라. 이제 차별과 배제, 총칼의 상흔이 남긴 아픔을 딛고 광주가 먼저 정의로운 국민통합에 앞장서 달라”고 호소했다.

김은향 동아닷컴 기자 eunhy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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