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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최대 규모의 가야 왕궁지...함안 가야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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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가야 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계기로 준비한 연속 보도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경북 고령과 전북 남원의 고분군을 중심으로 가야 연맹의 영역이 얼마나 됐는지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연속 보도 마지막으로 고대 가야인의 왕궁지 가운데 최대 규모인 함안 가야리 유적으로 가보겠습니다.

박종혁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고대 아라가야의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좌우 양쪽에서 가운데를 향해 경사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냥 야산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왕궁의 성벽이 있던 곳입니다.

산 정상에 올라가면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인 말이산고분군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성벽으로 추정되는 이유는 인위적으로 벽을 축조한 흔적이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김보상 /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 저러한 토층들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쌓은 흔적이 확실하므로, 저 부분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한 성벽의 외부 부분이 되겠습니다.]

고대 가야인들은 이른바 '판축기법'을 써서 성벽을 만들었습니다.

일정한 틀을 만들어 안에 흙을 집어넣은 뒤 단단히 다져서 성벽을 만든 겁니다.

사용한 흙도 한 가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흙으로 벽을 세웠습니다.

튼튼한 벽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이런 기법은 고대 중국의 성이나 백제 한성기의 왕성인 풍납토성에서 확인되는 방식입니다.

이런 성벽이 둘레 2.4km에서 확인되는데 가야 권역에서 최대 규모입니다.

남아 있는 성벽 가운데 가장 높은 게 9m에 이릅니다.

신라의 월성, 백제의 부소산성 등과 대등한 규모입니다.

당시 아라가야의 국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김보상 /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 연인원 16만 명 정도 동원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추정했던 인원은 대략적인 인원일 뿐입니다. 앞으로 저희가 조사해서 (더 정확하게 확인할 계획입니다.)]

왕궁지에서는 토기와 철기가 당연히 출토되었습니다.

직경 60cm에 깊이 80cm의 나무울타리인 목책 지역도 100m 구간에서 확인되었습니다.

또 건물지와 부뚜막 시설의 흔적도 발견되었습니다.

지질 조사 결과 당시 성 바깥 인근 지역은 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토기와 철기 등 여러 물자를 유통했던 요충지라는 뜻입니다.

[변영환 /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 : 담수 환경을 활용한 이 지역의 유통 등에 활용하기 위해서 가장 완만하고 터가 넓은 이 지역에 왕궁이 조성된 게 아닌지….]

가장 완벽하게 남아 있는 가야 왕궁지인 함안 가야리 유적은 가야 왕성의 원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오는 2043년까지 발굴 조사와 정비 작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가 오는 9월 최종 확정되면, 잊힌 고대 문명 가야의 신비를 풀어가는 여정이 더욱 탄력을 받은 전망입니다.

YTN 박종혁입니다.

YTN 박종혁 (johnpark@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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