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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16강 탈락' 환호하던 이란男, 보안군이 쏜 총 맞고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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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20대 남성이 자국 축구대표팀의 카타르 월드컵 16강 탈락에 환호하다가 이란 보안군(군경)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영국 가디언, BBC방송 등이 인권단체를 인용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히잡 의문사' 반정부 시위가 한창인 이란에서는 자국 축구 대표팀이 정권을 대변한다고 여기고 이번 월드컵에서 경기 응원을 거부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전날 미국-이란전 직후 이란 북서부 카스피해 연안 도시 반다르 안잘리에서 27세 메흐란 사막이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자국 대표팀의 패배를 축하하다가 군경 총에 맞아 숨졌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휴먼라이츠(IHR)는 "이란 대표팀이 미국에 패한 뒤 군경이 그(사막)를 직접 겨냥해 머리에 총을 쐈다"고 전했다. 미국 뉴욕의 인권단체 이란인권센터(CHRI)도 사막이 이란의 패배를 축하하다 군경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이란 군경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란은 지난달 29일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B조 3차전에서 미국에 0대 1로 패했다. 이날 이란 대표팀의 패배로 16강 진출이 좌절되자 반정부 시위대가 반다르 안잘리를 비롯해 수도 테헤란 등 여러 도시에서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환호성과 함께 축포를 터뜨리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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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축구 응원단이 지난달 29일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미국과의 경기에서 이란 군경에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끌려가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의 이름 피켓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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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 이란인은 자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것이 현 정권을 지지하는 것처럼 여기고 응원을 거부하고 있다. 앞서 이란 대표팀은 조별리그 1차전 잉글랜드전에서 국가 제창을 거부했는데, 이를 두고 당시 외신들은 "반정부 시위 지지" 의미로 해석했다. 하지만 대표팀은 그 뒤 이어진 2차전(웨일스)과 3차전(미국)에서는 경기 전 국가 제창에 임했다. 일각에선 이란 대표팀이 정권의 강한 압력에 시달린 결과라는 관측도 나왔다. 한 테헤란 시민은 가디언에 "축구 대표팀의 승리는 이란 당국에 선물이 될 것"이라며 "국가 대표팀이 아니라 '뮬라'(이란 신정일치 정권)의 팀"이라고 말했다.

이란에선 지난 9월 마흐사 아미니(22)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한 사건 이후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IHR은 이란 군경이 유혈 진압에 나서면서 현재까지 최소 448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집계했다. 여기에는 미성년자 60명과 여성 29명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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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열린 사막의 장례식장에서도 추모객들은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 구호는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를 겨냥한 이란 반정부 시위대의 구호 가운데 하나다.

공교롭게도 사망한 사막은 이란 축구 대표팀 미드필더 사이드 에자톨리히의 지인으로 알려졌다. 에자톨리히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둘은 유소년 시절 같은 축구팀에서 뛰었다고 소개하며 자신과 사막이 유니폼을 입고 어깨동무하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너를 잃었다는 지난 밤의 비통한 소식에 가슴이 찢어진다"며 "언젠가는 가면이 벗겨지고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 우리 조국이 이런 일을 당할 이유가 없다"고 애도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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