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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카라 한정판 앨범도 어떻게든 보낸다"…부산 바다 드론 정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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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유심칩 23개요? 오늘 남포동 지하상가 문 닫는 날인데…. 아뇨, 어떻게든 구해보겠습니다.”

지난달 27일 부산 영도구 한국해양대에 있는 ㈜해양드론기술 사무실. 이 회사 황의철(51)대표와 직원 10여명은 이런 저런 주문이 밀렸지만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 업체는 부산항 앞바다에 묘박(배가 항구에 접안하지 않고 닻만 내려 정박하는 것)한 선박의 선원들이 주문한 물품을 해양드론에 실어 배달하는 일을 한다.

특히 이날 유심칩 주문이 눈길을 끌었다. 유심칩은 스마트폰으로 영상 등 콘텐트를 보려는 선원들이 가장 많이 찾는 품목 중 하나다. 이날 부산 지하상가 등은 문을 닫아 구하기 어려운 물품이었다. 황 대표는 부산역 인근 텍사스 거리에서 유심칩을 유통하는 러시아 상인을 수배해 금세 물건을 구했다. 그는 “고객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라며 "주문이 들어오면 어떻게든 물건을 구하려 애쓰다 보니 인근 상권을 꿰뚫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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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드론기술 드론이 배달 물품을 매단 채 선박에 접근하고 있다. 사진 해양드론기술





헬기 몰던 前 해군, 드론으로 육지-바다 잇다



해양드론기술이 가진 사업 모델의 요체는 배달·유통업이다. 드론을 이용해 육지와 바다를 잇는 모델이다. 이 사업은 황 대표가 독특한 이력을 살려 시작했다. 그는 한국해양대에서 기관공학을 전공했다. 이 학과를 졸업하면 보통 3등 기관사 자격증을 따고 졸업해 3년간 상선 등에서 군 복무를 한다. 하지만 황 대표는 해상작전 헬기 조종사로 발탁돼 20년 2개월간 군 복무를 했다. 이 기간 그는 헬기 조종과 수리 업무 등을 했다. 중령으로 제대한 뒤 2014년부터 3년간 대한항공 R&D센터에서 무인기 시험평가 파트 리더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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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해양드론기술 황의철 대표가 해상 배달 드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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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대표는 2018년 9월 해양드론기술을 창업했다. 세관 영업 허가와 사업자 등록 등 과정을 거쳐 지난해 2월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황 대표는 “장기간 배를 타는 선원은 육지 물건이나 음식이 필요하지만, 묘박하는 동안 원칙적으로 육지에 오를 수 없다"고 말했다. 종전에는 작은 통선을 이용해 육지를 오가기도 했지만, 세월호 사고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 이후 완전히 막혔다고 한다. 그는 “그런데 묘박지는 육지와 가깝다. 특히 부산 남외항 묘박지는 번화가인 남포동과 자갈치·국제시장 등과도 인접해 이곳에서 물건을 구한 뒤, 드론을 통해 날려 보내면 수요가 있을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한정판 걸그룹 앨범, K리그 용병 티셔츠 찾아 삼만리



해양드론기술은 스마트폰 앱 ‘나라온’을 통해 주문을 받는다. 선원은 필요한 물품과 선박명, 묘박지 위치 등 정보를 입력한다. 업체 측은 물품 가격과 배달비용, 배달 예상 시간을 알리고, 주문자가 이를 확인해 결제하면 물품 구매와 배달 작업이 시작된다. 황 대표는 “배달비용을 정할 때 이동 거리와 시간, 입수 난도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한다. 비용은 최소 1만원이며, 물품 가격 등에 따라 10만원이 넘을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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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드론기술 직원들이 지난달 27일 관제센터에서 배달중인 드론을 모니터하고 있다. 사진 해양드론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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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까지 드론으로 500차례 배달했다. 이 가운데 음식 주문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황 대표는 “고객 중 한국해양대를 졸업해 이 일대 맛집 정보에 훤한 선원이 많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학교 앞 하리항의 A횟집 모듬회’라거나 ‘태종대 입구 B닭집 갈릭치즈치킨’처럼 주문이 구체적이다. 이외에도 프랜차이즈 아이스크림, 피자는 물론 족발이나 아귀찜 등 주문도 많다. 황 대표는 "대부분 영도나 남포동, 자갈치 시장 일대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주문 품목으로 걸그룹 '카라'의 한정판 앨범, K리그에서 뛰는 인도네시아 출신 선수 아스나위의 티셔츠 주문을 꼽았다. 황 대표는 “티셔츠는 노력하면 구할 수 있었지만, 카라 한정판 앨범은 끝내 구하지 못했는데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드론, 전쟁 수단 아닌 ‘사람을 위한 도구’로 인식되길”



현재 해양드론기술이 보유한 드론은 10대다. 드론 1대는 3~5㎏의 물품을 싣고 왕복 16㎞까지 오갈 수 있다. 시제품으로 나와 있는 드론에 자체 개발한 방수 기능과 비상 부주장치, 배송을 위한 로프 탈착 장치 등을 덧입혀 해상 비행과 배달이 가능할 수 있도록 개량했다. 부주장치는 동체·날개·꼬리부분·엔진·착륙장치 등을 말한다. 드론이 비행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바다를 가로질러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과정은 육지 관제센터에서 모니터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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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대표는 “얼핏 보면 단순히 드론이 육지와 배 사이를 오가는 것이지만, 묘박지를 포함한 항구는 엄중한 보안 지역이자 면세구역이어서 제약이 아주 많다"라며 "선례가 없는 사업인 만큼 드론이 묘박지를 오가게 하기 위해 세관과 국토부 등 기관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으며 맨땅에 머리를 박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배달 사업 이외에도 해양드론기술은 부산해경·한국해양대와 공동으로 드론 구조, 훈련 관련 기술 자문, 국토교통부 K드론 시스템 실증 사업 등에도 참여하고 있다.

해양드론기술의 최종 목표는 해상용품 물류 공급 사업자로 도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외국어 사용이 가능한 앱 개발에 나섰다. 또 전남 여수항에 제2 사업장을 구축하고 있다.

황 대표는 “드론을 통해 음식과 유심칩 등 소품을 배달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선박용품 공급을 위해 이 배달망을 육상 수송망과 연결하고, 고객 수요 데이터를 분석해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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