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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만화는 공짜’라는 사회적 인식과 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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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

허영만의 마지막 베팅



모바일서 콘텐츠 유료화 선언
만화인생 건 도전은 성공할까

▶ 60대 중반을 넘긴 허영만 화백은 아직도 화제작을 그리는 ‘현역’ 만화가입니다. 그의 작업실에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표어들이 군데군데 붙어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서점을 가면 이 수천권, 수만권의 책 중에서 내 책이 팔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하는 천생 ‘프로’입니다. 이런 만화가가 자신의 만화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허영만(66) 화백이 기자의 말을 잘랐다.

“자꾸 새로운 시도, 도전이라고 말하지 말라니까. 그런 게 아니라 지금 막다른 골목에 몰렸어요. 이제 이 길밖에 남지 않았고, 이것마저 실패하면 만화 그만 그릴 겁니다.”

<각시탈>, <날아라 슈퍼보드>, <비트>, <타짜>, <식객> 등 30년 넘게 히트작을 내며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허 화백이 ‘만화 제값 받기’에 총대를 메고 나섰다. 지난 4월9일부터 서비스가 시작된 ‘카카오페이지’에서 <식객2>를 유료로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식객2>를 보려면 편당 500원 혹은 월정액 2000원을 결제해야 한다. 허 화백은 단순히 만화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만화는 무료’라는 사회적 인식과의 싸움을 시작한다고 했고, 기자는 이런 모습을 ‘시도’ 혹은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표현이 허 화백의 마음에 거슬린 것이다. 허 화백은 궁지에 몰린 자신의 절박한 ‘행위’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돈 내고 만화 보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형편없는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성과가 어떻든 이게 마지막 시도”라고 못박았다. 인터뷰는 5월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자곡동 쟁골마을에 위치한 허 화백의 작업실에서 이뤄졌다.

원고료를 독자에게 직접 받는 매력

-5년 만에 <식객> 연재를 다시 시작했다.

“5년 전에 <식객> 연재를 중단한 것이 내 의지가 아니었다. 그 이후에도 <꼴>,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이하 말무사) 등의 작품을 연재했지만, <식객>만큼은 계속하고 싶었다. 작가가 평생 작품활동을 하더라도 정말 독자들에게 가깝게 갈 수 있는 작품은 많아봐야 서너편이다. <식객>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준비한 얘기를 아직 다 하지 못했고, 외부 여건만 허락되면 식객은 100권을 목표로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현재 <식객>은 27권 ‘팔도냉면 이야기’까지 출간됐다.) 그래서 지난해 7월 <말무사> 연재를 마치고서 <식객> 연재를 다시 시작하려고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렸다.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찾아서 온갖 곳을 다녔다. 심지어 매체가 아닌 한식세계화사업단이나 대기업들의 문도 두드렸다. 그런데도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는 곳을 찾지 못했다. 소재 고갈이 아니라 재정적인 문제로 만화를 못 그린다는 게 참 아쉬웠다. ‘정말 이대로 주저앉아야 하나’라고 낙심하다가 생각난 것이 스마트폰이었다. 화면은 작지만, 해상도가 좋아졌으니 이걸로 충분히 만화를 연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길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했다.”

-김범수 의장과는 원래 안면이 있었나?

“아니다. 그냥 내가 만나자고 했고, 단도직입적으로 ‘식객을 연재할 곳을 찾고 있다’고 얘기했다. 김 의장도 바로 같이 해보자고 하더라. 기왕 시작하는 일이니 만화가 무료, 콘텐츠가 무료라는 인식에 도전하고 싶었다. 사실 도전이 아니라, 만화가들이 처한 상황은 막다른 골목이다. 독자들이 만화를 공짜로 보는 상황에서 포털이나 매체가 책정한 원고료로는 작품활동을 할 수가 없다. 웹툰의 경우엔 혼자서 작업하는 작가들이 꽤 있지만, 내가 하는 작업들은 손이 많이 필요하다. 취재도 해야 하고, 음식과 배경 그림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지금 운영하는 화실에도 문하생이 4명이다. 나를 포함해 5명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허 화백 같은 분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최근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화실 운영하려면 얼마가 든다’고 얘기했더니 말들이 많더라.(허 화백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달 화실 운영비가 3500만원 필요하다고 밝혔다.) 얼마 전에는 집 앞을 지나는데 동네 사람이 ‘허 선생이 그렇게 어려워?’라고 물어봤다. ‘돈이 부족하다’, ‘밥을 못 먹는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에겐 만화가 일이다. 빚지면서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빚지면서 일하면 후배 만화가들은 무슨 희망을 가지고 일하겠나. 화실에서 집으로 생활비를 안 가져간 지 꽤 오래됐다. 문하생들 월급 주고, 취재비, 식대, 운영비, 세금 등을 다 떼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다.”

-어려운 상황은 이해하는데 왜 ‘만화 유료화’를 시도하는지 궁금하다.

“모르긴 몰라도 만화 쪽 사람들은 나를 굉장히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성공하나 실패하나 지켜보고 있을 것이고, 내가 성공모델을 만들면 많은 후배 작가들도 새로운 활로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거다. 지금 상황은 너무 답답하다. 문하생들도 식사를 하다가 종종 ‘선생님, 이 만화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실력을 키워야 한다. 야구에서도 실력을 키워야 대타 기회가 올 때 배트를 휘두르는 것처럼 실력이 없으면 기회가 와도 날려버린다’고 채찍질한다. 하지만 사실 이런 말을 하는 속내는 복잡하다. 이 친구들의 앞길이 불투명하고, 만화계의 앞날이 어둡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고민 끝에 나온 것이 유료화다. 만화가 무료라는 인식에 도전하고, 독자들에게 직접 원고료를 받겠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독자들도 이젠 바뀌어야 한다. 최소한의 원고료를 지불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만화를 그릴 수 있다. 제작비가 방대하게 들어가는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다. 만화가 입장에서도 매력적인 측면이 있다. 내 원고료를 신문이나 잡지, 포털업체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직접 받는 셈이다. 그래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작품에 대한 접근성이 중요한데도 카카오페이지에만 <식객2>를 독점 연재한다고 했다. 이유가 있나?

“사실 돈 내고 몇 사람이나 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다고 다른 곳에도 연재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일단 한 곳에 몰빵을 하는 것이다. 물론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나마 포털이나 신문에서 받던 원고료보다도 못 벌 수 있고, 아주 형편없는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결과가 어떻든 이게 마지막 시도다. 이 시도가 성공하지 못하면 만화 그만할 거다. 혼자서 낙서 같은 만화나 끼적거리면서 여행하며 노후를 보낼 거다.”

웹툰은 만화가들을 정당하게 대우하는가

허 화백의 화법은 그의 만화 <타짜>의 주인공 고니와 비슷했다. ‘목숨을 걸 수 없다면 베팅하지 말라’던 고니처럼 허 화백도 그의 40년 만화인생을 걸고 ‘만화 유료화’에 베팅한 듯했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허 화백이 성공하기 어려운 시도에 만화인생을 거는 것을 아쉬워한다.

“자꾸 새로운 시도, 도전이라고 말하지 말라. ‘막다른 골목’이라고 표현했다. 이것마저 실패하면 만화 그만 그린다.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내가 만화를 계속 그리고 싶어서다. 그러기 위해선 만화를 계속 그릴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둘째 이유는 후배들에게 길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2002년 동아일보에서 시작한 <식객> 연재도 종합일간지에서 장기연재 만화를 매일 싣는 첫 시도였다. 당시 스포츠신문이 급격하게 쇠락하고 있어 만화가로선 새로운 매체가 필요했다. 그래서 개척한 곳이 종합일간지였다. 나는 선배 만화가이자 이 분야의 선두주자로서 책임감이 있다. 선동열 기아 타이거즈 감독이 예전에 야구선수로서 처음 연봉 1억원을 돌파했을 때 한 야구기자가 ‘야구만 하는 무식한 사람이 어떻게 연봉 1억원을 받냐’고 얘기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욕을 했다. ‘이 나쁜 놈아, 그 선수가 네가 공부한 것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대충 하지 않았다. 저 선수가 잘돼야 다른 선수들이 희망을 가지고 꿈을 꾸지 않겠냐. 너 같은 놈은 기자도 아니다’고 말했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조차 나에게 ‘돈 충분히 벌었을 텐데 왜 저런 말을 하냐’고 얘기할 수 있다. 실제로 벌어놓은 돈 쓰면서도 일했다. 하지만 내가 후배 만화가들에게 희망을 줘야 그들도 도전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도 마지막으로 덤비는 거다.”

-지금 만화시장은 포털업체가 서비스하는 웹툰이 지배하고 있다. 포털업체가 만화가들에게 정당한 몫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개별 작가들이 구체적으로 얼마를 받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만화가들의 생활이 참 옹색하다. 연재 시작하면서 빚지는 사람도 많다. 내 문하생 출신이자 <미생>을 그린 윤태호 작가 정도면 웹툰 업계에서 특A급이다. 그런데도 윤태호 작가의 작업실에 가보면 20평도 안 되는 곳에서 6명이 작업을 하고 있다. 만화의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 작업실에 가서 만화의 꿈을 키울 수 있겠나. 만화가 잘돼서 가끔 영화 판권을 받는다고 해도 그동안의 빚을 갚는 수준이다. 어떤 분야든 선두주자는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게 그 분야가 사회에서 인정받는 수준을 의미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걸 보고서 더 노력한다. 하지만 지금은 만화의 꿈을 가진 젊은이들도 낙담하고, 결국 게임회사에 들어가는 등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웹툰이 만화가들을 정당하게 대우하고 있느냐는 상당히 논쟁적인 주제다. 네이버를 운영하는 엔에이치엔(NHN)과 다음(Daum)은 웹툰 작가들에게 지급하는 원고료에 대해 ‘일률적인 기준이 없지만, 조회수와 평판 등을 두루 고려해 책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네이버에 웹툰을 연재하는 한 작가는 “신인 때는 월 원고료가 100만원을 넘기 힘들고, 인기를 좀 얻어도 100만원 안팎의 원고료를 받는다. 노동강도에 비해 턱없이 적을뿐더러 생계를 이어가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서찬휘 만화평론가는 “원고료 책정 기준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포털업체는 웹툰의 조회수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비교할 수 없다. 만화 통계연감을 살펴봐도 시장의 크기를 가늠할 기초자료가 너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허 화백도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웹툰이 만화에 미친 영향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나?

“내가 다음에 <말무사>를 연재할 땐 특별한 대우를 받았지만, 업계 전반으로 볼 땐 아쉬운 면이 많다. 일단 만화가 공짜라는 인식을 준 것이 잘못됐다. 이게 업계를 망하게 한다. 한번 공짜라는 인식이 생기니까 이걸 깨는 것이 너무 어렵다. 또 포털업체들도 현재만을 볼 것이 아니라 미래를 생각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을 대우해야 한다. 작가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줘야 하지 않겠나. 강을 건너면 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지금은 물살이 센 강만 보여주고 있다. 포털업체들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는 모르겠는데 곶감만 빼먹지 말고, 투자 좀 했으면 한다.”

-그래도 웹툰 덕분에 신인 만화가들이 데뷔하기가 쉬워졌고, 다양한 작품들이 나왔다는 평가도 있다.

“데뷔하기는 확실히 쉬워졌다. 실력이나 독자들의 반응이 있든 없든 간에 데뷔할 수 있고, 작가 행세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아졌다. 하지만 많은 작가들이 컴퓨터로 그림을 쉽게 그리다 보니까 그림이 별로 늘지 않는다. 작품이 다양해지긴 했지만, 장편 극만화의 비중도 많지 않다. 그나마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니까 장편 극만화가 유지되는 형편이다. 진짜 만화 콘텐츠의 질적 향상이 이뤄지려면 장편 극만화가 계속 나와야 한다.

장편 극만화는 혼자서 할 수가 없다. 윤태호 작가도 5명이서 작업한다. 지금 상황에선 누가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가는 장편 극만화를 만들겠나. 만화에 제대로 된 원고료가 지급되지 않으면 장편 극만화는 계속 나오기 힘들다.”

포털업체들은 웹툰 서비스로 인해 만화생태계가 발전했다고 적극 항변한다. 엔에이치엔 홍보실 관계자는 “웹툰이 인기를 끌고서 만화가들의 저변이 넓어졌다. 포털업체에 정식으로 연재하는 웹툰 작가가 300여명이고, 네이버 ‘웹툰 베스트도전’에만 1000여명의 아마추어 작가가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 만화 관련 학과 역시 2006년 15개에서 2010년 26개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만화를 계속 그리고 싶다
후배 만화가에게 희망을 줘야
그들도 도전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마지막으로 덤비는 거다
성공 못 하면 만화 안 그린다

웹툰 덕분에 만화가들이
데뷔하기는 쉬워졌다
컴퓨터로 쉽게 그리다보니
그림이 별로 늘지 않는다
작품이 다양해지긴 했지만
장편 극만화 비중도 많지 않다


성과 거둔다면 다른 작가들도 동참할 것

­-콘텐츠가 무료라는 인식은 만화뿐만이 아니다.

“처음 인터넷이 활성화될 때 콘텐츠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사람들에게 공짜로 보여주고, 광고로 수익을 얻었는데 결국 이 수익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게 제대로 가지 않았다. 일본 만화잡지 <소년 선데이>의 편집장도 한국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선 단행본을 팔기 위해 1~2권을 인터넷에서 서비스하는 수준인데 한국은 콘텐츠가 무료라는 인식이 강해 판매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른 콘텐츠도 상황이 비슷하지만, 만화가 처한 환경은 심각하다. 음악 역시 한동안 무료였는데 요즘은 어떠냐.”

­-노래 150곡 정도를 1만원대에 판매하고 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최근 신문을 보니까 가수 장기하씨가 소비자들에게 자발적으로 가격을 매기라고 했더니 한 곡당 900원이 넘었다더라.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통해 콘텐츠가 제값을 받는 문화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정말 소중한 고급 콘텐츠는 사라질 것이고, 만들려는 시도조차 없어질 것이다. 한 사회에서 콘텐츠가 차지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다방면에 영향을 준다. 고급 콘텐츠가 계속 나와야 문화적으로 풍요로워진다.”

­-만화 유료화 시도에 호응하는 다른 만화가들이 있나?

“안 그래도 카카오 쪽에 윤태호, 강풀을 끌어오라고 주문했다. 그 작가들이 지금 따로 연재하고 있는 작품이 있어 어렵겠지만, 작가들이 유료화 시도에 더 참여해야 한다. 물론 어려움이 있다. 작가로서 매체를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심지어 내가 <동아일보>에 연재하다가 다른 신문으로 옮기는 것도 굉장히 신경 쓰인다. 솔직한 심정으로 작가는 작품에만 신경을 쓰고 싶다. 이런 심정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내 시도가 조금이나마 성과를 거둔다면 분명 다른 작가들도 동참할 것이다.”

­-웹툰 시장이 열리기 이전에도 만화업계는 어려웠다. 특히 도서대여점 시대가 열리고서 일본 만화가 물밀듯이 밀려왔을 때 한국 만화가 상당한 침체기였다.

“1974년에 데뷔하고서 편한 적이 없었다. <각시탈>이 인기를 얻고도 70년대 내내 전업을 생각할 정도로 어려웠다. 만화에 대한 편견도 심했다. 그나마 80년대 만화잡지 시대가 열리고선 연재한 만화를 단행본으로 다시 찍어서 팔 때는 괜찮았다. 하지만 90년대 도서대여점이 많아지고, 일본 만화가 쏟아질 때 한국 만화가 정말 어려웠다. 그때 만화가들은 한번 엎어졌고, 포털은 넘어진 놈을 한번 더 밟은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 만화에 대한 인식은 많이 좋아졌나?

“군사정권 때는 어린이날마다 만화가들이 죄인이었다. 남산에서 만화책을 섹스테이프와 함께 화형식을 했다. 기분 더러웠다. 아내는 밖에 나가서 남편 직업이 만화가라고 말도 하지 못했다. 만화 심의가 사라진 이후에도 작가들은 자기검열을 했다. 마치 네모난 상자틀에서 키운 수박과 비슷하다. 수박이 상자 모양으로 자란 이후에 상자틀을 없애도 각진 모양이 둥글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나 역시 각진 머리를 둥글게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화처럼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고, 트렌드가 빨리 바뀌는 콘텐츠 분야에서 30년 넘게 꾸준히 사랑받는 사례가 드물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지금이야 이 나이에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이 드물지만, 내가 젊을 땐 항상 내 위에 누군가 있었다. 이상무, 이현세 작가의 작품이 더 인기를 얻었다. 예전부터 누구보다 더 잘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다만 한번 시작하면 대충 하고 넘어가진 않는다. 자료를 많이 모으고, 꼼꼼하게 취재했다. 젊었을 때도 언제까지 만화를 그릴 수 있을지 너무 불확실했다. 그래서 노력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까지 왔다. 깐깐하고 피곤하게 일하는 편이라 평소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지만, 요즘만큼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이번에 ‘카카오페이지’ 서비스 시작이 6번이나 연기됐을 때 이 마른 몸에 4㎏이 더 빠졌다. 몸무게가 이제 63㎏이다. 만화 40년을 그려도 피가 마르더라. <식객>이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을 잘 마치고 싶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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