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김향미의 ‘찬찬히 본 세계’]“미 루이지애나주 코로나19 사망자 70% 흑인”…미국의 ‘건강격차’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시의 한 식료품점 주차장에서 한 고객이 구매한 상품을 카트에서 내리려 하고 있다. 미시시피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코로나19에 불균형적으로 더 많이 감염된 것으로 보고됐다. 잭슨|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 내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이 코로나19에 더 큰 타격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8일(현지시간) AP통신이 미국 8개주 및 6개 주요 도시, 플로리다주 6개 카운티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코로나19 피해 인종별 현황’을 분석한 결과,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 중 인종이 파악된 3300명 중 약 42%가 흑인으로 나타났다. 분석 대상이 된 지역의 전체 인구 중 흑인 비율은 21%다. 흑인은 인구대비 피해가 크다는 얘기다. AP통신은 “인종차별과 불평등의 역사가 만들어낸 건강격차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이날 현재 미국 내 코로나19 감염자는 43만명을 넘고, 사망자도 1만5000명에 육박한다. 미국 내 전체 코로나19 감염·사망자의 인종별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몇몇 주정부와 도시들이 자체 통계를 발표했다. 루이지애나주 주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코로나19 사망자의 70.48%가 흑인으로 나타났다. 루이지애나주 흑인 인구는 33%다. 앨라배마 주정부의 지난 7일 발표를 보면 코로나19 감염자의 비율은 백인 49.7%, 흑인 36.6%로 나타났는데 사망률은 44%로 동일했다. 앨라배마주의 인구 구성을 보면 백인이 69%, 흑인이 27%다.

경향신문

지난 7일 기준 일리노이주의 코로나19 환자의 30%, 사망자의 40%가량은 흑인이다. 일리노이주의 흑인 비중은 14.6%다. 흑인 인구 비중이 30%인 일리노이주 시카고시의 경우 흑인 발병자가 전체의 52%를 차지하고 사망자의 경우 무려 72%에 달한다. 시카고의 첫 흑인 여성 시장인 로리 라이트풋은 “이 숫자들은 당신의 숨을 멎게 할 것이다. 시장이 된 후 가장 충격적인 일”이라고 했다. 미시시피주 통계에서도 코로나19 사망자의 72%가 흑인, 28% 백인이었다. 미시시피주의 흑인 인구는 38%, 백인 인구는 59%인데 코로나19 감염자의 56%가 흑인인 반면 백인은 37%였다.

코로나19 피해가 집중된 뉴욕시에선 8일 기준 사망자의 28%가 흑인이다. 시 전체 인구 중 흑인 비율은 22%다. 또 뉴욕시에선 전체 인구의 29%인 히스패닉계가 사망자 전체의 34%를 차지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뉴욕시에서 흑인과 히스패닉 지역에서 사망자가 많이 나왔다. 이 지역 주민들을 위해 특별 대책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 주지사도 이날 “뉴욕의 인종에 따른 피해 집중에 충격을 받았다”며 “왜 가장 빈곤한 사람들이 언제나 최대 희생을 치러야 하는가. 이를 바꿔야 한다. 이 순간의 현상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했다. 뉴욕시 보건위원인 올리시스 바르보트 박사는 흑인·히스패닉계 지역에서 피해가 큰 것에 대해 “만성질환과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7일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감염연구소 소장은 “우리는 당뇨병, 고혈압, 비만, 천식과 같은 질병이 소수집단,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것을 알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중환자실에 가야 하거나, 더 많은 죽음에 이르는 것은 아프리카계가 그러한 질환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매우 슬픈 일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합병증을 피할 수 있도록 최선의 치료를 해주는 것 뿐”이라고 했다.

미국 내 흑인들은 건강 상태, 소득 수준, 의료보험 가입률 등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기 때문에 코로나19에 더 큰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또한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일터에서 생계를 꾸리는 저임금 노동자들이라는 점도 감염률을 높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뉴욕타임스(NYT)가 7일 전했다. 연장선상에서 ‘뿌리깊은 불평등’의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거주지의 기대수명은 백인 거주지의 기대수명에 못 미친다. 시카고에서 백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흑인의 기대수명보다 8.8년 길다. 미 펜실베니아주 드렉셀대학교의 유행병·생물 통계학 조교수인 샤렐레 바버는 1930년대 이후 흑인들은 취업 기회가 부족하고 주택이나 식료품점 등 생활 여건이 열악한 곳에 주로 살았다고 지적했다. 바버 박사는 “코로나19 피해에서 인종적 불평등이 나타나는 것은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기존의 구조적 불평등 탓”이라고 말했다. 뉴헤이븐대학의 서머 존슨 매기 보건대학 학장은 로이터통신에 “흑인이 더 나쁜 결과를 경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며 “전염병 대유행은 많은 유색인종 공동체가 겪는 보건 부분의 차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 일부 흑인들은 얼굴 가리개를 하면 범죄자나 테러리스트로 오인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마스크나 스카프 등의 착용을 거부하고 있다고 미 CNN이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현재 인종별 통계는 일부이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지만, 흑인 공동체의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즉시 (정책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고 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 유튜브 구독▶ 경향 페이스북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