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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연극 ‘아트ART’ 배우의 힘이 오롯이 전달되는 말의 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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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지난 공연에서 객석 점유율 103%에 누적 관객 수 20만 명을 기록했다. 몰리에르 어워드 베스트 작품상, 토니 어워드 베스트 연극상, 로렌스 올리베에 뉴코미디상, 뉴욕 드라마비평가협회 베스트상을 수상한 검증된 연극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웃음과 고뇌를 동시에 안겨 주는 블랙 코미디이다.

시티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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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장소 백암아트홀

기간 ~2020년 5월17일

티켓 R석 6만6000원, S석 4만4000원

시간 화, 목, 금 20시 / 수 16시, 20시 / 토 15시, 19시 / 일, 공휴일 14시, 18시 *월요일 공연 없음

출연 세르주-이건명, 엄기준, 강필석 / 마크-박건형, 김재범, 박은석 / 이반-조재윤, 이천희, 박정복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연극 ‘아트’는 15개 언어로 번역되어 35개 나라에서 무대에 올려진 작품이다. 인간의 이기심, 질투, 소심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그 매개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색 그림이다. 이 하얀 캔버스 위에 15년 우정을 지켜 왔다고 자부하는 세 친구의 끊임없는 대화가 물감이 되어 전혀 다른, 혹은 의도치 않은 새로운 그림이 그려진다.

세련되고 지적인 피부과 의사 세르주, 유머 있고 자신감 충만한 항공 엔지니어 마크, 우유부단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문구 도매업자 이반은 우정이 남다른 친구 사이다. 어느 날, 세르주가 고액의 그림을 산다. 그림은 가로 150cm, 세로 120cm의 하얀 캔버스. 자세히 들여다보니 흰색 바탕에 흰색 줄이 쳐진 하얀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본 마크는 온통 하얀색뿐인 그림을 고액에 샀다며 세르주에게 핀잔을 준다. 세르주는 자신의 안목으로 고른 그림을 무시하는 마크의 말에 기분이 언짢다. 마크는 이반에게 세르주의 형편없는 그림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이반은 마크와 달리 세르주의 선택을 존중한다. 발레를 보기로 한 날, 세 사람은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이내 화제는 세르주의 그림으로 옮아간다. 세 사람은 증폭되는 각자의 감정으로 점점 격해진다.

그야말로 프랑스식 연극의 특징인 말의 성찬이 무대에 펼쳐진다. 한마디도 지지 않고 서로를 향해 쏟아 내는 대사는 매우 재미있고, 세 사람의 개인적인 성향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그깟 그림 때문에 15년 우정에 금이 가도록’ 싸우는 세 사람이 이상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싸움의 원인은 정작 그림이 아니다.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격한 언어를 주고받는 것의 본질은 15년 동안 쌓인 서로에 대한 ‘감정의 앙금’이다. 그들은 친하다. 아니 친하다고 믿기에 어떤 말을 해도 되고, 그 말이 상대를 아프게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이 내뱉는 말에 상대의 말이 더해져 강하게 나를 비난하고 자극하고 무시한다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즉, ‘왜 내 말을,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만을 고민하는 것이다. 정작 문제는 각자가 다 안고 있는데 말이다. 바로 상대의 마음과 감정보다는 내 감정을 먼저 챙기는 이기심,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앞서는 질투와 심술 그리고 누구나 공감하는 ‘관계에서의 소통 부재’다. 이 소통은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친구, 연인 등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것에서 필요하지만 ‘막상 해보려고 하면 없는 것’이 된다.

극은 재미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솜씨는 유연하고 배우들의 케미와 연기의 무게감은 객석까지 전달된다. 엄기준, 이건명, 박건형, 박은석, 조재윤 등 9명의 배우는 각자 맡은 캐릭터의 충분한 해석력을 바탕으로 ‘배우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알려준다.

100분간 말싸움의 결말은 무엇일까. 물론 관계는 회복되지만 그 과정에는 분명 이해, 배려 등의 ‘아름다운 말’이 필요하다. 이 말들은 적절한 시간에 팡 터지면서 유치찬란한 무대 분위기를 단박에 ‘용기 있는 선택으로 관계를 회복한 세 친구’로 바꾼다. 어쩌면 세상을 산다는 것, 그것은 하나의 ‘아트’가 아닐까.

[글 김은정(프리랜서) 사진 마크923]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24호 (20.04.1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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