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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코로나19가 퍼트린 새로운 병 ‘가정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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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영국 BBC방송 앵커 빅토리아 더비셔가 6일 뉴스를 진행할 때 손등에 적었던 가정폭력 신고 전화번호.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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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에 떨면서 여러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가정 폭력’ 증가도 그 중 하나다. 가족 구성원 대부분이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갈등이 잦아지고 폭력으로 발전하는 식이다. 유엔까지 나서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획기적인 대책 마련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영국 BBC방송 앵커 빅토리아 더비셔는 6일(현지시간) 뉴스를 진행하면서 ‘가정폭력 신고 전화번호’를 적은 손등을 지속적으로 노출했다. 지난달 23일 영국 전역에 이동 제한령이 내려진 이후 가정폭력 신고가 급증하자 신고 방법을 알리기 위해 머리를 짜낸 것이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지만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세계 곳곳에서 가정 내 폭력 사건은 확연히 늘고 있다. 영국 가정폭력 상담기관 레퓨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일주일간 폭력 신고 전화 건수는 25% 증가했고, 홈페이지 접속도 무려 150% 뛰었다. 미 CNN방송도 뉴욕주(州) 나소카운티 사례를 들어 최근 몇 주간 가정폭력 범죄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0% 늘었다고 전했다.

여러 사람이 좁은 공간에 장기간 격리되면 다툼은 많아지기 마련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딱 그런 경우다. 영국 브리스톨대 마리앤느 헤스터 박사는 미 일간 뉴욕타임스에 “가정폭력은 보통 크리스마스나 여름방학처럼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긴 시기에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팬데믹(pandemicㆍ세계적 대유행)’으로 발전한 코로나19 공포도 갈등을 한층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감염병 위협 탓에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위기가 고조되고 여기서 비롯된 스트레스를 가정폭력으로 잘못 풀고 있다는 진단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5일 성명을 통해 “코로나19 유행 이후 강화된 경제ㆍ사회적 긴장과 이동제한 조치가 결합해 학대 받는 피해자 수를 증가시켰다”고 지적했다.

나라마다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결책을 내놓고 있기는 하나 딱히 효과는 없어 보인다. 영국은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예외적으로 외출을 허락했다. 프랑스ㆍ스페인 정부는 약국에서 가정폭력을 신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의약품 구매를 위해 집 밖에 있는 동안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게끔 돕겠다는 것이다. 취지야 좋지만 폭력에 시달리는 구성원의 경우 가해자의 감시망을 벗어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여성에 대한 폭력 예방과 교정을 코로나19 사태에서 핵심적인 국가 정책으로 다뤄야 한다”면서 각국에 폭력 종식을 이끌어 낼 근본적인 대응안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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