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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어떤 집도 피하지 못했다” 우한, 76일 만에 봉쇄 해제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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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친구 잃은 상처 아물지 않은 시민들

“우한 사태, 천재 아니라 인재” 지적한 주민도 숨져

“8일 이후에도 거주 지역 바깥으로 자유롭게 못 나가”

“무증상 감염자 등 추가 감염 우려에 출근 꺼리기도”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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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인들 모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숨진 가족이 있어요….”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 시민 천(陳·여)모 씨는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우한시 전체의 어떤 가정도 (코로나19를)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며 “가족, 친척이 아니라면 친구라도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고 전했다. 차오커우(礄口)구에 사는 천 씨 자신, 남편, 천 씨의 어머니 등이 코로나19에 감염됐고 남편의 고모는 결국 숨졌다.

“월급 못 받아 생계 힘들어도 혼자 견딜 수밖에”

중국 정부는 코로나19가 처음 확산된 우한시에 대한 봉쇄를 8일부터 해제한다. 외부로 연결되는 공항 기차역 고속도로 통제를 푸는 것이다. 900만 명이 머물던 우한시가 1월 23일부터 봉쇄된 지 76일 만이다.

하지만 상당수 시민들은 우한시를 휩쓴 코로나19로 입은 상처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우한시에서만 중국 전체 확진 환자의 약 61%에 해당하는 5만8명이 감염됐고 이중 2571명이나 숨졌다. 중국 전체 사망자의 77%에 달한다. 치명율은 5.1%에 달해 후베이성 이외 지역(0.9%)보다 훨씬 높았다.

우한 시민들은 8일 이후에도 우한 시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외출은 기본적으로 금지되는 등 통제가 계속된다고 전했다. 일터 복귀가 정상화되지 못해 생계를 위협받고 있었다. 무증상 감염자 등에 의한 2차 유행 우려로 외출이나 출근을 꺼리는 시민들도 있었다.

우한의 코로나19 상황이 가장 심각했던 2월 중순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우한 사태는 천재(天災) 아니라 인재(人災)”라고 지적했던 청(程)모 씨도 세상을 떠났다. 3일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를 남기자 “휴대폰 주인은 병으로 사망했다. (원하는) 일을 처리하기 어렵다. 양해를 바란다”는 답장이 왔다. 2월 통화 때 어머니가 사망하고 아버지가 감염돼 밀접 접촉자인 그도 아버지와 같이 호텔에 격리 중이었다. 당시 그는 “핵산 검사가 음성으로 나왔다”고 했지만 결국 감염돼 숨진 것으로 보인다.

우한시 둥시후(東西湖)구에 사는 판(潘·36)모 씨는 부모, 본인, 아내, 아이까지 일가족 5명이 모두 감염됐다가 최근 퇴원했다. 퇴원 뒤 격리 시설에 14일간 격리된 뒤 집으로 돌아와 또다시 14일간 격리 중이다.

그는 통화에서 “격리 시설에 있을 때까지도 (병세가 악화될까 봐) 가슴을 졸였다. 집에 온 뒤 천천히 나아지고 있지만 전에는 (심리적 불안이) 정말 심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가족엔 다행히 사망자가 없어 유골을 받으러 장례식장에 간 적은 없지만 우한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건 안다”고 말했다.

우한은 봉쇄가 해제되지만 그는 앞으로도 한동안 일터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2개월여의 월급은 받았는지, 집세 등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물으니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니 월급은 못 받았다”며 “생계에 어려움이 있지만 혼자 견딜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정부 도움을 받아 해결해야 하지 않나’라고 물으니 “(도움이) 필요해도 (도움을 청할) 방법이 없다. 어려움이 있어도 (정부의) 통보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힘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코로나19 유행이 사람들을 기운 없게 하고 앞날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어요. 코로나19가 (완전히) 끝나면 이곳을 한동안 떠나고 싶습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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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출근, 일상 회복까지 시간 많이 걸릴 것”

후베이성 정부는 5일 우한시 대형 기업들의 업무 재개율이 97.2%, 대형 서비스 기업의 재개율은 93.2%에 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형 기업의 직원 복귀율은 60.5%에 그쳤다. 우한시 공장과 기업들이 문을 열어도 실제로는 직원이 없어 정상 운영이 어렵다는 것이다. 우한시 일부 대형 쇼핑몰이 문을 열었지만 식당 대부분은 여전히 문을 닫은 상태다.

우한시 우창(武昌)구에 사는 샤오(邵·여)모 씨는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거주 지역 바깥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없고 일부분만 출근하고 있다.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도 매우 적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건강 증명서 기능을 하는 모바일 건강 코드가 있어야 거주 단지 바깥으로 나가거나 출근할 수 있고 외출 시간도 너무 길면 안 된다.

그는 “8일 우한 봉쇄 해제는 고소도로 등 외부로 연결되는 통로에 대한 통제를 해제하는 것”이라며 “시민들이 정상 출근하고 일상 생활을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지 한인 소식통도 “중국인 직원들을 다시 출근시키려고 했지만 이들이 무증상 감염자에 대한 두려움이 많고 사는 곳에 대중교통 운행도 회복되지 않아 현실적으로 출근이 어려워 연기했다”고 전했다.

우한시 당국은 무증상 감염자와 외부 유입 환자 증가를 우려하면서 주민들에게 불필요한 외출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우한시에서 14일 이상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거주 단지 주민들은 단지 밖으로 나갈 수 있지만 한번에 2시간 동안만 나가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7일 “봉쇄 해제가 해방이 아니다” “우한시 문을 여는 건 집 문을 여는 게 아니다”라며 “8일이 최종 승리의 날이 아니다”라고 선전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2차 유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우한 봉쇄 해제가 방역 종식으로 인식되는 걸 막기 위한 대비로 풀이된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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