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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코로나19 'SOS' 보낸 미 핵항모 함장 '경질' 논란…루스벨트 증손자 "그는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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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승조원들이 코로나19의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리며 지원을 요청하는 서한을 상부에 보냈다가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이유로 경질된 핵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의 브렛 크로지어 함장의 과거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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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가 다수 나왔지만 하선하지 못해 승조원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긴급 서한을 상부에 보내 여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며 경질된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의 브랫 크로지어 함장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크로지어 함장이 “끔찍한 행동을 했다”고 비판했지만, 루스벨트호가 이름을 따온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증손자는 그를 ‘영웅’으로 부르면서 옹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 기자회견에 참석해 해군이 크로지어 함장을 경질한 데 대해 “그가 한 행동은 끔찍해 보인다. 적절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함장이 쓴 5쪽짜리 편지가 사방에 공개됐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그가 한 행동, 편지를 쓴 것은 끔찍했다고 생각한다”면서 “내 말은 이것은 문학 수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핵으로 추진되는 거대한 배의 함장이다. 그는 편지에서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됐다”고 덧붙였다.

미 해군은 지난 2일 크로지어 함장을 전격 경질했다. 루스벨트호의 상황을 담은 서한을 언론에 공개되도록 했다는 이유에서다. 토머스 모들리 미 해군장관 대행은 국방부 브리핑에서 크로지어 함장의 경질이 자신의 지시였다고 밝혔다. 모들리 장관 대행은 전날 브리핑에서 서한을 언론에 유출한 것은 해군 규율 위반으로, 징계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크로지어 함장은 지난달 30일 국방부에 서한을 보내 “승조원 5000명에 대한 감염 여부를 조사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당시 루스벨트호에는 코로나19 확진자가 100명을 넘은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크로지어 함장은 서한에서 “우리는 전쟁 중이 아니다. 수병들이 죽을 이유가 없다. 우리가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우리 수병들을 적절하게 보호하는데 실패하고 말 것이다”라면서 승조원들이 신속하게 하선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다음날 이 서한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의해 최초 보도되고 다른 매체를 통해 잇따라 보도되면서 여론이 큰 반향이 일었다. 그러나 해군 지휘부는 크로지어 함장이 ‘언론 플레이’를 했다면서 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포스트는 “국방부 관리들은 크로지어 함장이 자신의 고향에서 발행하는 매체에 서한을 유출해 경질됐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어 “일부 지휘관들은 그의 경질을 반대했고 경질 소식에 해군 지휘부가 놀라고 있다”고 전했다.

모들리 장관 대행은 “크로지어 함장의 서한을 보면 마치 해군이 그가 호소한 다음에야 행동에 나선 것 같은 편견을 조성하는데 사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모들리 장관 대행은 경질과 관련한 비판을 이미 예상했다면서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군 지휘부는 크로지어 함장의 서한이 언론에 공개된 다음날 괌에 정박 중인 루스벨트호 승조원들이 순차적으로 하선해 호텔 등의 숙소에서 격리돼 머물수 있도록 조치했다.

크로지어 함장은 3일 승조원 수백명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가운데 루스벨트호에서 내렸다. 자신들이 신속히 하선해서 격리될 수 있도록 도운 대가로 함장 자리에서 쫓겨난 그에 대해 경의를 표한 것이다. 민주당 리처드 블루멘털·크리스 밴 홀런 상원의원 등은 국방부 감찰관실에 루스벨트호의 코로나19 확산과 이에 대한 해군의 대응 및 크로지어 함장 경질에 관한 공식 조사를 요구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뛰고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비롯해 후보를 사퇴한 엘리자베스 워런·에이미 클로버샤·카멀라 해리스 등 다른 상원의원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 그의 복귀를 청원하는 온라인 청원도 시작됐다.

논란이 이어지면서 루스벨트호에 이름을 물려준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증손자도 가세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의 26번째 대통령으로서 1901~1909년 재임했다. 롱아일랜드 대학교 시어도어 루스벨트 연구소장인 트위드 루스벨트는 4일 뉴욕타임스에 ‘크로지어 함장은 영웅’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그는 “해군은 크로지어 함장을 경질하면서 그의 편지가 승조원들 사이에 극심한 공포를 야기할 수 있는 중대한 실수라고 했지만 당시 항공모함 내의 끔찍한 상황을 볼 때 그가 다른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면서 증조할아버지도 자신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루스벨트 소장은 “크로지어 함장이 지휘하던 항모의 이름을 가진 분의 후손으로서 이런 상황에서 증조할아버지는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이 경우는 어떻게 하셨을지 정확히 한다”면서 루스벨트 대통령도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고 소개했다. 쿠바를 둘로싸고 미국과 스페인이 전쟁을 벌일 당시 루스벨트는 ‘러프 라이더스’라는 자원 기병대를 이끌고 참전했는데 미국이 전쟁에 승리했음에도 쿠바에 남겨진 병사들 사이에 황열병과 말라리아에 집단 감염됐다는 것이다.

루스벨트를 비롯한 전장의 지휘관들은 병사들을 이끌고 귀환할 것을 희망했지만 당시 미국 정부 지도자들, 특히 러셀 앨저 육군장관이 국내 정치적 반발을 우려해 이를 거절했다고 루스벨트 소장은 설명했다. 이에 루스벨트는 동료 지휘관들의 암묵적 동의 아래 언론에 공개 서한을 보냈고 병사들을 데려와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결국 귀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앨저 장관의 눈밖에 났고, 무공 명예훈장 후보에 올랐지만 받지 못했다고 루스벨트 소장은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증조할아버지는 2001년 사후 훈장을 받았고, 결국 그가 승리했다”면서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그 시대에 명예로운 길을 택했고, 크로지어 함장도 같은 길을 걸었다”고 칭찬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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