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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통행금지는 최후 수단” 코로나 위기 속 독일 민주주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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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현장

유럽에 연대의 손길 내민 독일

확진자 늘자 이동금지령 만지작

2인 초과 접촉 금지령만 실시

코로나로 민주주의 후퇴 논란

베를린 승객 75%·운송수입 90%↓

‘사회적 거리’ 성공엔 안전망 필수

임대료 지원·임금보전 등 조처

이탈리아·프랑스 환자 수용한 독일

“1·2차 세계대전 부채감 되갚는 것”

윤리적 열등감 극복할 수 있을까


한겨레

지난달 31일 이동제한령이 실시되고 있는 독일 베를린 중앙역 모습. 사람의 발길이 끊겨 텅 빈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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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실시 중인 접촉제한 조치를 이달 5일에서 19일까지 연장했다. 현재 독일은 공공시설은 물론 음식점 등 일반 가게들의 운영을 제한하고 집 밖에서 두 명을 초과해 만날 수 없는 접촉금지령이 내린 상태다. 유럽 대부분에 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이동금지령이 내려진 것에 대해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게 아니냐는 논쟁도 치열했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남은주 전 <한겨레> 기자가 현지 상황을 전해왔다.





지난달 30일 아침 9시.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 있는 포츠담 광장(포츠다머 플라츠)은 고요했다. 글로벌 기업의 사무실들과 복합상영관이 들어서 있어 언제나 붐비던 소니센터는 건물 전체에 불이 꺼져 있었고 광장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장으로 이어지는 8차선 넓은 도로에도 손님 없이 달리는 버스들만 있을 뿐이었다. 지나가는 차량도 거의 없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독일 전역에 접촉금지령을 내린 지 8일째 되는 날, 베를린 도심은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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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거리에서 사라진 사람들



포츠담 광장은 베를린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다. 영화제가 열리던 3월1일까지만 해도 1600석이 넘는 대형극장에 사람이 가득 차고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마스크를 쓴 사람도, 그것에 신경 쓰는 사람도 없었다. 베를린에서 마스크 쓰는 사람은 레드카펫에서 마스크 퍼포먼스를 했던 필리핀 가수 카븐 데 라 크루스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지난달 2일 베를린에서도 첫 확진자가 나왔지만, 7일 브레멘과 베를린의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에는 5만5천 관중이 모였다. 클럽은 여전히 붐볐다. 코로나19 확산 첫 2주 동안 감염자 263명 중 42명이 클럽에서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달 16일 독일 학교들이 휴교에 들어가면서 분위기가 급하게 바뀌었다. 18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대국민연설을 앞두고 에스엔에스(SNS)에서는 “오늘 독일도 프랑스, 이탈리아처럼 이동금지령을 실시한다고 발표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전날부터 프랑스에서 외출이 제한되면서 생필품을 확보하려는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 슈퍼마켓이 아수라장이 되는 장면이 독일에도 중계됐다. 이날 아침부터 독일에서도 사재기가 시작됐다.

그러나 18일 메르켈 총리는 결국 통행금지를 발표하지 않았다. 독일 연방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의무화하는 접촉금지령으로 가닥을 잡았다. 4월1일 기준 독일에선 확진자가 가장 많은 바이에른주를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만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의 이동금지령을 시행하고 있다. 이동금지령은 꼭 필요하지 않은 곳이면 가지 않도록 외출 자체를 제한하는 조치고, 접촉금지령은 외출은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가족이나 동거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과 1.5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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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시내 중심부에 있는 포츠담 광장 앞 텅 빈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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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도심에서는 공연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공연 포스터가 떼어지고 그 자리에 ‘집에 머무세요, 그리고 딜도를 사용하세요’라는 포스터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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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과 술집 등이 모두 무기한 휴업에 들어간 독일 베를린의 클럽 베른하인 앞의 텅 빈 모습. 평소 대기줄로 꽉 차 있던 모습과 대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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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기 확진자가 나온 베를린의 한 클럽에 붙은 휴업안내문. 접촉금지령이 내려진 4월19일까지 문을 닫는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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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선 외출을 제한하되 외출 목적은 폭넓게 인정하는 이동제한령이 실시되고 있다. 베를린교통공사(BVG) 집계를 보면 3월 한달 승객 수는 전달보다 75%가량 줄어들었으며 운송수입은 90% 가까이 줄었다. 코로나 위기가 시작되면서 많은 베를린 시민들이 주로 집에 머문다는 뜻이다. 4월부턴 이동제한령을 어기면 꽤 많은 벌금을 내도록 규칙이 정비됐다. 새 규칙에 따르면 다른 사람과 최소 1.5m 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50~500유로(6만5천~65만원), 노인시설에 있는 할머니를 1시간 이상 방문하면 100~1천유로(13만~130만원), 다른 사람 집에서 머물면 500유로(65만원)까지도 벌금을 내게 됐다.

본격적인 단속이 시작되면서 도심은 텅 비었고 동네에선 어린이들이 사라졌다. 놀이터가 폐쇄되고 공원엔 혼자 걷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슈퍼마켓 앞에는 사람들이 1.5m 간격으로 긴 줄을 섰다. 동네에서 경찰들이 사람들을 지켜보는 모습도 보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경찰이 개인의 행동을 단속하는 상황은 독일에선 영 낯설다. 코로나19를 막겠다며 기본권을 제한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높다. 많은 독일 언론들은 지난달 16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동금지령을 발표할 때 했던 연설을 비판적으로 소개했다. 주간지 <슈피겔>은 “그는 20분 동안 ‘이것은 전쟁이다’라는 말을 여섯번 했다”며 “프랑스 국민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믿을 만한 대통령을 보았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통행금지를 실시하자 ‘강한 정부’에 대한 기대로 지지율이 오르는 현상에도 우려가 높다. 독일 신문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헝가리 총리가 국가비상사태를 무기한 연장할 수 있는 법을 통과시킨데다 폴란드에선 코로나 위기를 틈타 여당이 대선운동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었고 영국에선 경찰이 코로나19 확진자들을 체포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는 등 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4월2일 기준 8만4415명으로 세계에서 네번째로 확진자가 많은 독일이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처럼 통행금지를 하지 않았던 것은 우선 이런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독일은 프랑스나 이스라엘처럼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통행금지를 실시할 법적 근거가 없으며 이탈리아처럼 군인들이 민간인을 통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독일의 접촉금지령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특정 장소를 차단할 수 있다”고 정한 연방감염보호법 제28조에 근거한 것인데, 바이에른주의 통행금지는 이 법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했다고 변호사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한 중앙정부가 독일 전역에 통행금지 조치를 하는 것은 자치 정신에 어긋난다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반발도 컸다. 독일도시·지방자치단체협회 사무총장 게르트 란츠베르크는 “통행금지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가장 심각한 침해 중 하나이며 아직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다”라며 거부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자치와 기본권 침해 논쟁 끝에 독일 정부는 접촉제한을 실시하고, 지역감염이 우려되는 지역에서만 벌금이나 이동제한으로 추가 규제하는 방안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접촉금지령 2주가 된 지금 논란은 줄어들었다. 베를린자유대의 하네스 모슬러 교수는 “지금 독일의 조치들은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했지만 침해하지는 않는다. 위기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이 조치는 한시적이며 사회적 합의에 따라 변경될 수 있어서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들어 접촉금지령이 민주주의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독일의 접촉금지령은 2주 동안 시행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다시 2주를 더 연장할 수 있는 한시적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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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 관광객들로 가득 찼던 이스트사이드 갤러리가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대여 자전거만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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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코로나19로 접촉금지령이 내려진 독일 베를린 이스트사이드갤러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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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안전망이 최고의 방역”


유럽의 이동금지령의 목표는 건강보건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환자를 유지하는 것이다. 길게 보아 전체적인 환자 수는 같다고 하더라도 환자가 빠르게 늘어나면 위중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시설과 인력이 부족해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처럼 사망률이 높아지게 된다. <슈피겔>에 따르면, 애초 영국과 네덜란드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대신 바이러스를 견뎌낼 수 있는 건강한 사람 50%가 감염되도록 해서 전체 집단이 면역을 얻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에 이어 스페인까지 건강보건 시스템이 붕괴될 조짐을 보이자 이들 국가도 무조건 초기 환자를 줄이는 것으로 방역 목표를 바꾸고 국경폐쇄와 이동제한 등에 나선 것이다.

싱가포르, 대만처럼 선제적 방역에 성공해서 이를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감염속도를 줄이고 집단면역의 길로 가게 될지는 독일에서 논쟁 중이다. 감염학자인 베를린종합병원의 크리스티안 드로스텐 박사는 최근 <엔디아르>(NDR) 방송과 함께 하는 팟캐스트에서 “증상이 나타나면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격리해야 한다. 독일식 접촉금지가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점 말고도 셧다운 조치로 인한 경제적 타격도 정부엔 큰 압박이다. 휴업 조치로 크라이슬러 자동차 회사 임원들이 급여를 반납하기로 하고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바피아노가 파산 신청을 했다. 대형 백화점 카르슈타트는 임대료 국가보호를 신청했다.

베를린자유대 김상국 연구교수는 “자영업자를 위한 긴급자금지원, 단축근무를 위한 정부 지원금, 실업급여 및 생계수당 등 독일은 위기 상황에 있는 시민들을 위한 방어기제로 활용할 제도가 많다. 전염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있으려면 사회적 안전망의 역할이 이렇듯 중요하다. 독일이 셧다운에 나설 수 있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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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시내 놀이터가 폐쇄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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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시내 한 마트 앞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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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와 폐쇄, 유럽 각국 다른 해법들



최근 독일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병상이 부족해 다 수용하지 못한 중환자들을 잇따라 받아들이고 있다. 73개 병원에서 이탈리아 환자들을 받아들이고, 프랑스 환자 50명도 독일 남부 지역으로 이송할 계획이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지역별로 고르게 발달한 보건시스템 덕분이다. 독일 전역에는 1942개 병원이 있는데 의료시설이 전국에 고르게 분포해 위기 때 긍정적 역할을 한다. 지방정부들은 아직까지는 병상에 여유가 있다고 보고 외국에서 온 코로나 중환자들을 수용한다. 독일연방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독일에는 주민 10만명당 33.9개의 집중치료실이 있다. 환자들을 모두 수용하지 못해 의료시스템 붕괴 현상을 보이고 있는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각각 9.7개, 8.6개의 집중치료실이 있다. 병상이 얼마나 남는지에는 확진자 자가격리 비율이 영향을 끼친다. 베를린의 경우 4월2일 기준 2993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입원은 476명, 중환자실 104명으로 코로나19 확진을 받아도 입원보다 자가격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렇게 마련한 병상을 이웃 나라 중환자들에게 내주는 것이다.

거기에 독일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이 한몫했다. 문화인류학자인 정진헌 베를린자유대 겸임교수는 “1·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은 유럽 주변국에 도덕적 부채가 쌓여 있었다. 2015년 메르켈이 난민을 적극 받아들이는 정책을 펼치면서 윤리적 열등감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위기 때 주변국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유럽연합 공동체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주의의 또 다른 축은 연대이다. 코로나19를 이유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국경을 폐쇄한 상황에서 포르투갈은 자국에 있는 난민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별도의 체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도 7월까지는 모두 체류 허가를 받을 수 있고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베를린/글·사진 남은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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