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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길어진 비례투표 용지보다 진짜 문제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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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선거운동이 시작된 4·15 총선에 사상 최초로 ‘비례위성정당’이 등장하면서 유권자들은 기호 1번인 더불어민주당과 기호 2번 미래통합당이 없는 ‘듣도 보도 못한’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맞닥뜨리게 됐습니다. 4년에 한 번 국민의 대표를 뽑는 중요한 선거인만큼 선거 기호를 헷갈려 실수하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저는 복잡해진 비례 투표용지에 대해 설명해드릴 정치팀 이지혜입니다.

우선 이번 비례 투표용지는 맨 위칸이 ‘기호 3번’부터 시작됩니다. 기호 1번인 민주당과 기호 2번 통합당이 모두 비례위성정당을 추진하면서 자체 비례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죠. 20대 국회에서 20석으로 세번째로 의석수가 많은 민생당이 기호 3번으로 비례 투표용지 맨 윗자리를 선점하게 됐습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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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과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은 창당한 지 1∼2개월밖에 안 됐지만, 비례 투표용지 상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민주당과 통합당이 ‘고군분투’한 결과입니다. 위성정당 창당의 ‘선두주자’ 통합당은 조훈현 비례의원 ‘제명’을 시작으로 현역 의원 20명을 파견했지요. 민생당과 의석수는 같지만 미래한국당은 지난 선거에 출마하지 않은 정당이라 뒤로 밀렸어요. 미래한국당은 기호 4번을 달고 비례 투표용지 두번째 칸을 차지했습니다.

통합당의 ‘의원 꿔주기’를 강하게 비판했던 민주당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민주당도 지역구 4명, 비례 3명을 시민당으로 보냈는데요. 후보 등록 마지막 날 부랴부랴 윤일규 의원(충남 천안병)을 추가 파견했습니다. 공직선거법상 ‘지역구 의원 5명 이상’이 있어야 전국 지역구와 비례대표 선거에서 같은 번호를 보장받는 ‘전국 통일 기호’ 규정 때문입니다. 통일 기호를 받지 못한다면 시민당이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정의당 뒤인 기호 6번을 받고, 시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지역구에서는 우리공화당 등이 기호 6번을 받게 돼 혼란이 예상됐거든요. 추가 파견으로 결국 시민당은 비례와 지역구 통일 기호 5번을 받아 비례 투표용지 세번째 칸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제 자리는 잡았고, 모정당과 비례위성정당의 기호가 다르다 보니 지지자들에게 이를 각인시키는 홍보가 필수겠죠. 민주당은 오는 ‘15일’은 ‘1번(지역구 민주당) 찍고, 5번(비례투표 시민당) 찍는 날’이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통합당은 2번(지역구 통합당)과 4번(비례투표 미래한국당)을 합쳐 ‘이판사판’이라는 문구로 홍보에 나섰죠.

시민당 다음으로 의석수가 많은 정의당(6석)은 기호 6번을 달고 네번째 칸에 들어갑니다. 정의당은 지난 선거 정당투표에서 3% 이상을 득표해 비례와 지역구 번호가 같은 일 기호로 ‘기호 5번’을 받을 수 있었지만, 민주당이 시민당에 의원을 추가 파견하는 바람에 비례대표 투표용지 순서를 정하는 기준일인 27일이 돼서야 ‘기호 6번’으로 최종 확정됐습니다. 정의당에서는 “일찌감치 홍보물을 인쇄하는 등 선거를 준비했을 텐데 기호가 늦게 정해져 피해를 봤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정의당 다음으로 의석수가 많은 우리공화당(2석)은 7번을 받았습니다. 민중당(김종훈)·한국경제당(이은재)·국민의당(권은희)·열린민주당(손혜원)·친박신당(홍문종)은 1석씩 의석을 가지고 있는데요. 지난 선거에 출마했던 민중당과 한국경제당이 우선권을 가지고 지난 총선 득표율 순으로 8번, 9번을 받았습니다. 국민의당, 친박신당, 열린민주당은 추첨을 통해 각각 10, 11, 12번을 가져갔고요. 원외정당들은 13번부터 가나다순으로 기호가 정해졌습니다.

그렇게 모두 37번까지 이어져 올해 비례 투표용지는 48.1㎝에 이른다고 합니다. 2004년 정당 투표제가 도입된 이래로 최장입니다. 용지가 너무 길어 분류기도 쓸 수 없어 모두 수작업으로 개표해야 합니다. 비례대표 선거 개표까지 늦어질 것이란 전망을 들으면 ‘당이 너무 많다’는 말이 절로 나오지요.

‘길어진 투표용지’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국회에 다양한 목소리가 들어오게 하자는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취지였으니까요. 오히려 문제는 사라진 1번과 2번입니다. 비례대표 의석수를 최대한 많이 차지하기 위해 거대양당이 만든 비례위성정당은 서로 이름도 비슷한데다 비례와 지역구 투표용지의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었죠.

설마 총선 때마다 ‘뒤죽박죽 투표용지’를 받아들어야 하는 걸까요? 아마도 아닐 것 같습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선거법이 21대 국회에서 다시 개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지배적이거든요. 오는 4월15일에 당선될 국민의 대표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꼼수’가 없는 선거제도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해 봐야겠습니다.

이지혜 정치팀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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