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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윔블던, 연기 아닌 취소 왜?… 코트 잔디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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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대전 이후 75년만에 취소

코트 잔디 6~7월에 최적 상태

공기·습도에 맞는 잔디로 꾸며 여름 지나면 잔디 상태 나빠져

- 세계 테니스 스타들 침통

로저 페더러 "망연자실", 세리나 윌리엄스 "기절초풍"

윔블던은 매년 4월 코트에 새 잔디를 심는다. 올봄은 예외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윔블던까지 멈춰세웠다. 윔블던을 주최하는 올잉글랜드 테니스클럽(AELTC)은 1일(현지 시각) "올해 대회는 취소하고 내년 6월 28일에 경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언 휴잇 AELTC 회장은 "제 1·2차 세계대전 중에만 대회가 취소됐다는 것을 고려해 사흘간 격론을 벌였지만 결국 취소하게 됐다"며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내린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잔디 전통 윔블던, 결국 취소키로

윔블던은 1877년 첫 대회를 개최했다. 1896년 시작한 올림픽보다도 역사가 길다. 올여름은 134번째 대회가 될 예정이었다. 작년엔 관중 50만명이 모였다. AELTC는 2월 말까지 취재 신청을 받는 등 정상 개최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찰스 왕세자와 보리스 존슨 총리까지 확진자가 될 정도로 최근 영국의 코로나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자 대회를 포기했다. BBC는 티켓 환불, 방송 중계권과 스폰서 계약 취소로 발생하는 AELTC 손해액을 최소 2억파운드(약 3000억원)로 계산했다.

클레이코트인 프랑스오픈은 일단 대회를 5월에서 9월로 미뤘다. 하지만 윔블던은 연기가 아닌 취소를 택했다. 143년 역사 동안 천연 잔디 코트를 고수한 전통이 선택의 여지를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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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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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블던은 지금까지 잔디 관리를 맡은 책임자가 단 8명에 불과할 정도로 여름 잔디 관리에 최첨단 기술과 노하우를 쏟아붓는데, 올여름 개최가 물 건너간 이상 잔디가 제 기능을 못 할 시기에 강행하느니 취소가 맞는다는 결론을 냈다.

윔블던 코트는 영국 한여름의 햇빛과 공기, 습도에 최적화된 다년생 호밀 잔디로 100% 꾸민다. 4월에 씨앗 9t을 심어 최대 15㎜ 높이까지 길렀다가 개막이 다가올수록 길이를 조금씩 깎고 일조량을 늘려 잔디를 질기게 만든다. 이렇게 관리한 잔디만이 남녀 단·복식과 주니어 경기, 휠체어 경기 등 보름간 열리는 650여 경기를 버텨낸다.

"백신 없으면 테니스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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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페더러, 세리나 윌리엄스


만우절에 날아든 비보에 선수들은 침통하다. 특히 1981년생 동갑내기 로저 페더러(스위스·세계 4위)와 세리나 윌리엄스(미국·9위)의 충격이 더하다. 이 대회 남녀 최다 우승자(페더러 8회, 윌리엄스 7회)이자 지난해 준우승자인 둘은 올여름 윔블던에서 마지막 투혼을 불사를 작정이었다. 페더러는 지난 2월 오른쪽 무릎 수술 후 재활 삼매경이었고, 윌리엄스도 둘째 출산 계획을 미루고 훈련에 전념해왔다. 둘은 소셜미디어에 한 줄만 남겼다. 페더러는 "devastated(망연자실)", 윌리엄스는 "shooked(기절초풍)".

세계 1위 노바크 조코비치(32·세르비아)에게도 악재다. 올 시즌 무패 행진을 질주한 조코비치는 1969년 로드 레이버 이후 처음으로 한 해 메이저 4개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캘린더 그랜드 슬램' 달성 기회가 사라졌다. 페더러가 지닌 남자 메이저 대회 최다 우승(20회) 기록에 1승 뒤진 라파엘 나달(33·스페인·2위)도 아쉽다. 이들은 말을 아꼈다.

올해 테니스 시즌이 이대로 끝날 수도 있다.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US오픈은 대회장인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를 코로나 임시 병원으로 쓰고 있다. BBC는 "매주 도시를 바꿔가며 열리는 종목 특성상 테니스가 가장 늦게 재개되는 스포츠일 것"이라며 "코로나 백신이 없는 한 테니스도 없다"고 전망했다.

영국인들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으며 내년을 기다린다. 이미 경험이 있다. 1940년 센터코트가 독일 공군(루프트바페)의 폭격으로 부서졌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윔블던 부지는 영국군 진지로 쓰였다. 전쟁은 끝났고, 테니스는 부활했다.

[양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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