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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푸틴의 '검은복수', 셰일업계 직격탄···유가 20달러도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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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만에 최저가 이유있는 추락

“러, 가스사업 막은 트럼프에 분노

30달러 밑돌아도 10년 버틸 각오”

사우디와 증산전쟁 뒤엔 미국 견제

미 셰일업계 직격탄, 줄도산 위기

국제유가가 배럴 당 20달러 선 아래로 내려가면서, 자칫 한 자릿수까지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미국과 유럽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빠르게 확산하며 ‘역(逆) 오일쇼크’을 일으킨 데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증산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한 4월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바닥 밑에 지하실’이란 투자업계의 말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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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 시간 외 거래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5월물이 전 거래일 대비 6% 이상 폭락해 배럴당 한때 최저 19.92달러까지 떨어졌다. WTI가 배럴당 20달러 선이 무너진 건 2002년 2월 이후 18년 만이다. WTI 가격은 올해 초 배럴 당 62달러까지 올랐다가, 불과 석 달 사이 3분의 1토막으로 쪼그라들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브렌트유 5월물은 장중 배럴당 23.03달러까지 내렸다. 전 거래일과 비교해 7% 넘게 떨어졌다. 2002년 11월 이후 거의 18년 만의 최저치다.

미국 셰일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셰일오일의 채굴 원가는 기술 발달로 현재 32~57달러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30달러 미만의 국제유가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 배럴당 유가가 33달러까지 떨어졌던 2016년 상반기에 실제로 수십 곳의 미국 셰일오일 업체가 부도를 내고 문을 닫았다. 더군다나 빚도 많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이들 셰일오일 업체가 갚아야 할 부채만 860억 달러(107조원)로 추산된다.

유가 하락을 부추기는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이다. 미국과 유럽 등이 이동 제한령을 내리면서 경제 활동을 멈추고, 원유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글로벌 원유 수요의 최대 25%가 증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맏형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벌이는 ‘유가 전쟁’으로 공급은 급증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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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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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대로라면 사우디는 다음 달 초부터 산유량을 2월 대비 27% 증가한 하루 1230만 배럴까지 높인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 27일 러시아와 추가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힌 데다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증산계획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앞서 25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에게 전화해 증산 금지를 압박했으나 통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러시아의 복수심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표면적으로는 사우디와 러시아가 싸우는 것으로 보이지만, 미 셰일 산업을 무너뜨리기 위한 양국의 고육지책으로 봐야 한다며, 러시아가 더 격렬하게 전투에 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FT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의 천연가스 사업 확대를 저지한 일에 분노하고 있다”며 “러시아 정부는 유가가 30달러 이하에서 움직여도, 10년은 버틸 수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장기전을 각오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외신은 미국 셰일 업계가 사우디와 러시아의 협공에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FT는 “기업 신용평가업체에 따르면, 2015~2016년 저유가를 견뎠던 많은 셰일 기업들이 조만간 파산 신청을 하게 될 것”이라며 “지난 10년간 투자액이 급증했던 셰일 산업이 생각보다 리스크가 크다는 것을 느낀 월스트리트 투자자는 앞으로 에너지 산업에서 손을 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국내 정유화학업계도 불똥이 튈 전망이다.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재고평가손실을 떠안으며 큰 폭의 실적 악화가 예상된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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