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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G20 "코로나 함께 극복" 외쳤지만…2008년과 달라진 '각자도생'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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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첫 G20 세계금융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2008년 11월 14일 오전 워싱턴 내셔널빌딩뮤지엄에서 전체회의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타개와 세계경기 부양을 위한 공조방안 마련을 논의하고 있다. [ 공동사진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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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G20 정상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다시 모였다. 화상 회의 형식이었다. G20은 공동선언문을 통해 “공동의 위협에 대항하여 연합된 태세로 대응할 것을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계가 G20에 거는 기대감은 2008년 국제 금융위기 때에 못 미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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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26일 열린 주요 20개국(G20) 특별 화상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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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G20은 삐걱대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 해 독일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뒤 공동선언문은 이례적으로 G19+1(미국) 형태로 발표됐다. 19개 국가는 “파리기후협약은 되돌릴 수 없다”를 공동선언문에 넣길 원했지만, 이미 협약 탈퇴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그 문구에 한해 미국은 동의하지 않는 형식으로 선언문이 발표됐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로 “합법적인 무역방어 수단의 역할을 인정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보호무역주의를 일부 인정하는 내용이다. 첫 회의 때 “1년간 새 무역장벽을 두지 않기로 한다”고 선언했던 G20는 자유무역주의와 개방 정신을 뿌리에 두고 출범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고집으로 뿌리는 뒤틀리기 시작했다. G20 내에서 공조와 개방보단 자강(自强)과 고립의 목소리가 커졌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가 G20 정상회의 10주년을 기념해 2018년 발간한 보고서에선 “G20 정상회의의 불안정은 반세계화와 포퓰리즘에서 발생한 것인데 그 문제가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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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8월 30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아나 주 에번즈빌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집회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할 준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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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의 배경엔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캐릭터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히브리대 교수는 지난 20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오직 세계적인 협력을 통해 효과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실에선 실제로 협력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봤는데, 그 원인을 미국이라는 리더의 공백에서 찾았다.

하라리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와 2014년 에볼라 전염병과 같은 이전의 글로벌 위기에서 미국은 글로벌 리더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현재의 미국 행정부는 지도자의 직무를 포기했다. 인류의 미래보다 미국의 위대함에 대해서만 훨씬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했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의 2016년 대선 운동 구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였고, 이번 재선 운동 구호는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다.

‘트럼프 발(發) 고립주의’는 이미 전 세계로 번졌다. 세계의 무역·통신·교통은 갈수록 복잡하게 연결되고 있지만 동시에 독자 생존을 원하는 고립주의 경향이 확산하고 있다. 영국은 유럽 공동체 탈퇴(브렉시트)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9개국은 지난 25일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채권 발행을 EU 회원국에 촉구했다. 하지만 독일·네덜란드·오스트리아 등은 그리스 등 부채비율이 높은 국가들과 함께 채권을 발행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자국 재정 건전성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런 상황에 대해 “유럽이 정말 ‘하나 된’(all-for-one) 정신이 필요할 때 많은 국가는 ‘자국만 위한’(only-for-me) 대응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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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즐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지난 1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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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자국 중심주의는 국가 간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진행형인 미·중 무역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감정의 골은 코로나19 사태에서도 계속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우한 바이러스’라고 부르며 중국의 책임론을 부각했다. 그러자 중국은 “미군이 우한에 코로나19를 가져온 것일 수 있다”며 오히려 미국을 탓했다. G20 화상회의 직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코로나19 통계를 믿지 못하겠다”며 중국을 공격했다. G20 내에서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미국은 원유 생산량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고, 한·일도 수출규제를 둘러싼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공조하자며 모였지만, 서로 사이가 좋은 상황이 아니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과거 금융위기 때는 각국 금융자본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역 전쟁을 치른 미·중 갈등에 군사적인 문제까지 얽혀 각국이 복잡하게 합종연횡을 반복하고 있다”며 “코로나19에 국경 봉쇄로 대응하는 세계를 보면 향후에도 공생과 협력보다는 각자도생의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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