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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선 LIVE] 선진국이 왜 코로나에 저렇게 약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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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적 경제, 자유로운 이동… 코로나에 약한 고리 제공

위기 이후 선진국 기준은 유연성과 자원 동원 능력 될 것

조선일보

강인선 부국장

미국은 항생제의 90% 이상을 중국에서 수입한다. 미국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해열진통제 이부프로펜의 90%가 중국산이고, 타이레놀의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도 70%가 중국에서 만든 것이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중국이 이런 의약품 수출을 중단해버리면 미국 사람들은 진통제 한 알 사먹기도 어려워진다.

중국과 무역 갈등을 겪으면서 미국은 중국이 의약품을 무기화할 가능성을 우려해왔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가능성이 순식간에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미·중 관계에 갈등이 없어도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해 중국의 의약품 원료 생산 가동 라인이 멈추면 미국 동네 약국 선반이 텅 비는 건 시간문제라는 걸 실감하게 된 것이다.

재선 유세 중인 트럼프에게 코로나는 충격적인 장애물이다. 트럼프는 오로지 경제만 바라보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며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지출해왔다. 하지만 코로나란 '보이지 않는 새로운 적' 앞에선 속수무책,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세계 최고 의료 선진국인 미국의 의료진이 코로나 확산세 앞에 산소호흡기 숫자를 세면서 불안에 떨 것이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치료약도 백신도 없는 새로운 전염병 코로나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의 위기 대응 실력을 벌거벗기고 있다. 누구도 정답은 모른다. 다른 나라를 도울 여력도 없다. 전 세계 90여국이 국경을 닫고 외국인 출입을 금지하고, 자국민을 데려가기 위해 전세기를 띄우고 있다.

코로나 대응 능력은 기존 선진국 순이 아니다. 중국, 이탈리아, 미국, 스페인, 독일 등 코로나 확진자 숫자 상위권 국가들의 명단을 훑어보면 그대로 선진국 순위이자 경제력 순위다. 이란 등 소수의 예외가 있을 뿐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폭주하는 코로나 확산세는, 전염병은 경제·복지 수준이 낮고 위생·방역이 잘 안 되는 후진국에서 더 창궐할 것이란 상식을 뒤집는다. 지난 수십년 세계화를 통해 국가 간 장벽을 낮추고 세계를 실핏줄처럼 연결한 개방적인 경제,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선진 경제가 오히려 코로나에 대한 약한 고리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온다. 물론 코로나 진단 검사조차 어려운 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대규모 확진자가 숨어 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선진국의 개념은 바뀔 것이다. 복지 제도를 제대로 갖춘 잘사는 나라가 아니라 새로운 위기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과 자원 동원 능력을 기준으로 다시 규정해야 할 것이다.

미·중으로 대표되는 국제사회의 리더십도 재평가를 받을 것이다. 조만간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경제 대국이 되고 싶어 했던 중국은 코로나 발병 초기 상황을 축소·은폐해 전 세계가 코로나를 초기 진압할 기회를 놓치게 함으로써 신뢰를 잃었다. 미국은 초반 확산세를 과소평가함으로써 미국 내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은 물론 국제 리더십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초기 대응엔 실패했지만 철저한 방역과 대규모 진단 검사, 확진자 접촉 경로 추적 등으로 급증세를 막으면서 모범 사례로 떠올랐다. 베트남은 검사 규모는 제한적이었지만 자가 격리 등을 통해 2차 감염을 막고 은퇴한 의사 등을 동원하는 등 제한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스웨덴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이동 제한 조치 등을 최소화하고 학교와 직장에서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는 실험적 조치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나라도 자신들의 방식이 성공적이라고 자화자찬할 수 없다. 불확실한 상황에 과신보다 더 나쁜 독약은 없다.

[강인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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