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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다른 나라와는 거꾸로 가는, 스웨덴의 '평소 대로' 코로나 대응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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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각국과 미국의 여러 주(州)들이 학교·공공기관·음식점 등을 폐쇄하고 국경을 닫는 등 사회 전체가 ‘강제 격리’에 들어간 요즘, 완전히 거꾸로 가는 나라가 있다. 스웨덴의 국경은 여전히 EU(유럽연합) 국가들에 열려 있고, 유치원부터 9학년까지 학교 수업도 정상적으로 진행된다. 집회도 ‘500명 이상’인 경우에만 금지했다.

스웨덴이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운 ‘청정 국가’여서도 아니다. 25일의 세계보건기구(WHO) 집계에 따르면, 인구 1012만 명인 스웨덴에선 지금까지 2272명이 감염돼 36명이 사망했다. 하루 새 감염자 256명, 사망자 11명이 늘었다.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는 22일 TV 연설에서 “감염 확산으로, 일상 생활과 건강, 일자리가 위협받는다”며 “더 많은 사람이 아플 것이고, 더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스웨덴 공공보건청의 장(長)이자 스웨덴의 최고 전염병학자인 안데르스 테크넬은 지난 18일에도 TV 인터뷰에서 “감염자와 한집에 살면서, 출퇴근하거나 통학해도 안전하다”고 말했다. 공공보건청이 결정하는 바이러스 진단 대상도, WHO(세계보건기구)의 기준보다도 매우 느슨하다.

이 탓에, 상점과 음식점은 여전히 영업 중이다. 스웨덴의 SVT 국영방송은 지난 주말에도 스키 리조트의 클럽에서 수백 명이 파티 하는 모습을 소개했다. 이웃인 덴마크는 정반대다. 덴마크 언론이 ‘코로나 총사령관’이라고 부르는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사실상 나라 전체를 봉쇄했다. 100명 이상의 집회를 금지했고, 학교·대학·도서관·문화시설 모두 폐쇄했다. 덴마크는 지난 14일 EU 국가 중에서 제일 먼저 국경을 닫은 나라 중 하나였다. 스웨덴의 테크넬 청장은 “국경 폐쇄는 정치적 결정일 뿐, 방역에 효과가 없다는 것은 ‘돼지독감’때 이미 증명됐다”고 반박한다.

스웨덴의 중도 좌파 연립정부도 아직 어떠한 ‘강제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냥 각자 상식에 의존해, 가능하다면 집을 떠나지 말고 불필요한 여행을 삼가고 나이든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라는 권고뿐이었다.

조선일보

시민들이 코로나 확산 속에서도 평소처럼 모여서 따듯한 봄날 기온을 즐기는 스톡홀름의 노천 카페 거리/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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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스웨덴 정부의 이런 ‘방임적’ 태도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 시온주의자 연맹 대표인 사스키아 판텔은 트위터에 젊은이들이 따듯한 봄날을 즐기는 노천 카페의 모습을 게재하고 “이건 미친 짓”이라며 “스웨덴에 사는 것이 겁난다”고 썼다. 또 칼 빌트 전(前) 총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코로나 사망자 시신을 옮기기 위해 군 수송차량들이 동원된 이탈리아의 모습을 소개하며 “수 주 내 이게 우리 현실이 될 수 있다…우리 보건 당국도 준비해야 한다. 다른 대응 방식은 범죄”라고 비판했다. 스웨덴의 여러 전염병학자들은 “공공보건청은 단지 70세 이상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해 신속하고 분명하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해야 한다”며 “훨씬 광범위한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비판한다.

◇스웨덴 특유의 ‘사회적 신뢰’
그런데도 스웨덴이 이렇게 다른 나라와는 거꾸로 가는 코로나 문화를 형성하는 것과 관련, 미국의 자유주의 이념 잡지인 ‘리즌(Reason)’은 “전문성을 갖춘 보건 당국이 모든 것을 닫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국민이 이를 따르고, 이 과정에서 개인의 책임과 상호 신뢰를 중요시하는 문화”를 이런 정책의 기본 토양으로 꼽았다.

공공보건청과 같은 전문 기관은 선거로 집권한 정치인들과, 이들이 구성한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이다. 스웨덴 ‘노딕 웰페어 센터(Nordic Welfare Center)의 사회정책 평론가인 라르스 트래가르드는 “스웨덴 국민은 이번 코로나 사태의 최종 권위를 지닌 공공보건청의 결정을 매우 높이 신뢰해 총리든 그가 구성한 정부든 그들의 조언을 따르게 된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기업에 재택 근무를 권고할 뿐이고, 최종 결정권은 각기 사정이 다른 기업에 있다.

미국의 ‘포린 폴리시’는 이를 다른 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스웨덴 특유의 매우 높은 ‘사회적 신뢰’로 요약했다. 즉 ①국민은 공공 기관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믿음이 강하고 ②이들 기관은 반대로 자신들의 조언을 국민이 따른다고 믿으며 ③모든 사람이 책임 있게 행동하리라는 서로간의 신뢰도 매우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제 조치’가 없는 정부 차원의 느슨한 ‘권고사항’과, 각자 상식적으로 이를 판단해서 따를 것이라는 기대가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에서 어떤 결과를 빚을지는 불분명하다. 독일의 영어 방송인 DW는 25일 “점점 감염건수가 늘어나면서, 과연 얼마나 이런 방역 방식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이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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