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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탁류청론]재난기본소득, 소득 재분배 역행하는 재정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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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세무학회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응책 중 하나로 '재난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모든 국민이 어려운 국면을 맞이했기 때문에 재난의 경중 혹은 소득 수준 등을 따지지 말고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도 일부 소득층을 제외한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000달러(어린이는 500달러)를 지출하는 계획안을 발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경제부양책으로 나온 약 2조달러 중 매우 낮은 비율을 차지할 뿐이다. 미국은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 거론되고 있는 국민 1인당 100만원씩, 총 50조원은 전체 국가재정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미국과 일본 등은 기업 살리기에 비중을 두지만 우리나라는 재난기본소득에 큰 비중을 두고 논의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미래에 얼마만큼 지속될지 가늠하기 쉽지 않은 불확실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에 일회성 재난기본소득은 한계가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국민의 외출을 막는 등 국민 간 직접적 만남을 억제함으로써 경제 흐름을 막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생산과 유통이 중단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난기본소득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더라도 국민의 소비와 연결돼 경제 상황에 기여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또 우리나라는 가계 부채 및 공과금의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재난기본소득이 소비지출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유용될 여지도 크다.


재정 운영의 경우 국민의 소득 재분배를 고려해야 한다. 재정의 원천인 세금을 징수하는 경우에는 초과 누진세율 등을 고려해 소득 재분배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번 재난기본소득은 국민의 소득 수준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득 재분배와 역행하는 등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재난기본소득은 정략적인 접근이 있을 수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장은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 않은 상황임에도 이미 중앙정부에 앞서 모든 주민에게 1인당 10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등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는 지역의 재난 상황과 소득 수준 등을 따지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재정을 낭비할 수 있다. 재난 극복에 집중하기보다는 기본소득이라는 이념적 실천에 더 비중이 있어 보인다.


재정 운영에서는 재정 원천과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한다. 재정은 대부분이 세금과 국채에서 나오며 이는 국민의 고혈이다. 최근 경제가 어려워 세금도 제대로 징수되지 않는 상황에서 재정 확대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특히 재정을 소득 원천의 엔진 역할을 하는 기업을 살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정부가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으로 몇십만 원을 지원하는 것보다 기업이 고용을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도 재난기본소득의 집행보다는 기업 살리기를 위한 재정 대책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미국은 주택 가격 하락으로 금융시장의 붕괴를 우려해 주택저당담보증권을 무한정 매입하겠다는 방안도 발표했다.


결국 재난 지원은 모든 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재난기본소득이라는 명목으로 지급하는 것보다는 재난 경중과 소득 수준 등을 고려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도 재난 지원에 소요되는 재원은 불요불급한 정부지출을 우선적으로 조정하고, 미래의 부담이 되는 국채 발행은 후순위로 해야 한다. 성장 동력의 핵심인 기업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며 재정 및 금융 지원 확대, 규제 철폐와 법인세 인하 등 국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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