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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 '신상털기·악마화'에 가려지는 '박사방'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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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신상 공개 이후 신상털기·악마화 보도

조주빈의 범죄 행위 희석시킬 우려 존재…중요한 건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본질

"가해자와 범죄에 대한 객관적 보도 필요"

"'n번방' 사건, 성범죄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노컷뉴스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비롯해 수많은 여성의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25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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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성 착취 범죄가 이뤄진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신상이 공개된 후 일각에서 그의 신상이나 행적을 세세하게 보도하는가 하면, 그를 '악마'라 표현하며 사건의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24일 신상공개위원회를 개최하고 '박사방'이라는 이름의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에서 미성년자 등 수십 명의 여성을 협박해 얻은 성 착취 영상물을 제작·판매한 운영자 조주빈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 걸러지지 않은 가해자 정보·가해자의 악마화, 범죄 행위 희석 우려

신상 공개 이후 일부 언론에서는 조주빈이 대학 재학 시절 학점 4.17을 받을 정도로 학업과 동아리 활동을 활발히 했다든지, 글쓰기 솜씨가 좋았다는 등의 그의 세세한 행적을 보도했다. 그러나 가해자의 재능이나 선행 등 긍정적 특성을 부각하거나 사건과 무관한 신상과 행적을 세세하게 보도하는 것은 범죄 행위를 희석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5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한다면 알 권리 차원에서 공개할 수 있겠지만, 가해자에 대한 정보나 범죄 사실과 무관한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공개해선 안 된다"며 "중요한 것은 사건의 본질을 짚어낼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n번방' 사건에 처음부터 주목하고 보도했던 매체들은 '신상정보 보도' 등에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조심스럽게 사건에 접근한다"며 "이유는 분명하다. 그런 보도들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 아닐뿐더러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사(조주빈)가 성적이 잘 나와서 범행을 저질렀나, 글쓰기가 뛰어나서 피해자들 협박을 잘 한 건가"라고 반문하며 "하등 관계가 없는 내용이다. 이 같은 신상정보 보도를 보면 스스로 모순을 이야기한다. '성' 관련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조주빈을 두고 '악마', '괴물'로 표현하는 보도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조주빈은 25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포토라인에 서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자신과 자신이 저지른 범죄 행위를 '악마'로 표현했다.

범죄자를 '악마화'하는 보도는 범죄자와 그를 옹호하는 이들에게 잘못된 영웅 심리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우려스럽다. 전문가들은 결국 이러한 보도로 인해 사건의 본질이 가려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권 활동가는 "대다수의 범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성범죄에 있어서 가해자를 '악마'로 치부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 사람을 '악마화'하는 순간 타깃은 한 사람으로 좁혀지기 때문"이라며 "박사가 감옥에 간다고 해도 또 다른 유사한 성범죄자들이 길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를 '악마화'하는 것은 우리 사회 안전 자체를 위협하는 보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도 "조주빈은 '악마'라는 프레임은 스스로가 범죄 행위를 제어할 수 없었다는 걸 정당화하거나, 본인의 의지보다 다른 영향력이 미쳤다고 보이게끔 만들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며 "조주빈은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돈벌이 수단으로 보고 불법적인 행위를 저질렀다. 조주빈의 악마화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이야기가 끼어들면 사건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보도가 이어지자 전국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와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지난 24일 긴급지침을 발표하고 "가해자를 '짐승', '늑대', '악마' 등으로 표현할 경우 가해 행위를 축소하거나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타자화해 예외적 사건으로 인식하게 한다"며 "성범죄는 비정상적인 특정인에 의해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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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에 '박사방'을 열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박사' 조주빈(25)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가운데 경찰서 앞에서 조주빈 및 텔레그램 성착취자의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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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건 'n번방', '박사방' 사건의 본질과 해결

'n번방', '박사방' 사건이 가진 범죄의 중대성과 국민들의 이목이 쏠인 상황에서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보도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사건이 가진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들여다봐야 한다.

'n번방' 사건을 최초 보도한 텔레그램 기반 디지털 성범죄 '추적단 불꽃'은 지난 23일 유튜브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며 "20만 명이 넘는 가해자를 규탄하고, 제대로 된 처벌과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함께 이뤄가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최진봉 교수는 "치열해진 언론 시장에서 언론은 사람의 관심을 많이 끌기 위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하고자 하는 유혹에 늘 휩싸인다. 이번처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터졌을 때도 이러한 위험이 존재한다"며 "지나친 자기 해석을 경계하고, 확인된 사실 위주로 객관적 보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순택 활동가는 "'n번방' 사건은 디지털 사회에서 성범죄의 진화가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가해자들의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며 "언론은 'n번방' 사건이 한국사회의 성범죄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혜화역에서 '불법 동영상 처벌'에 대한 시위가 벌어졌을 때, 그들이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라며 이야기조차 들어주지 않았던 남성 및 언론권력 등 기득권층의 문제를 짚어야 한다"며 "그리고 그 같은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어떤 목소리들이 배제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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