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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만물상] ‘세계 최초’의 ‘감염 주도 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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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어떤 사람이 ‘소득 주도 성장’을 비꼬아 인터넷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됐다. 소득 주도 성장은 마차가 말을 끈다는 식으로 선후가 뒤바뀐 주장이다. 그래서 결혼부터 하면 사귀게 된다는 ‘혼인 주도 연애’, 두꺼운 옷을 벗으면 봄이 온다는 ‘탈의 주도 입춘’, 피로를 미리 풀면 잠이 잘 온다는 ‘휴식 주도 수면’ 같은 말을 만들어 냈다. 허구적 경제 논리를 꼬집은 것이다.

▶요즘 '감염 주도 방역'이란 말이 인터넷에서 돌고 있다. 누군가 인터넷에 "문재인식 방역법: 바이러스를 창궐시켜 중국인들이 알아서 떠나게 한다. 이것이 외교 마찰 따위는 없는 감염 주도 방역"이라는 글을 올린 뒤 퍼지고 있다. '소득 주도 성장으로 세계 유례없는 경제 발전을 이룩하더니 감염 주도 방역으로 세계 유례없는 방역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중국을 막지 않는 청와대의 큰 그림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글들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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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감염 주도 방역'이 우스개만 아닌 것으로 현실이 흘러가고 있다. 정부 방역 정책의 실제 결과가 그렇게 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우한 코로나 확진자가 3명뿐이던 지난달 26일 중국발 외국인의 전면 입국 금지를 처음 권고한 이래 총 일곱 번이나 중국 차단을 요구했다. 질병관리본부장을 비롯한 전문가들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에는 한 달 만에 76만여 명이 참여했다. 정부는 그러나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머지않아 종식된다"며 "행사 취소하지 말라"고 독려했다.

▶그러는 사이 국내 확진자는 2300명을 넘었고 요 며칠 새 매일 500명 넘게 폭증하며 확진자 증가 폭이 중국을 뛰어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중국인들이 한국에 오지 않고 중국 유학생들은 '알아서' 중국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지난달 하루 1만2000명가량이던 중국인 입국자 수는 최근 그 10분의 1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한국을 중국보다 더 위험한 나라로 만들어 외교 마찰 없이 중국인 입국을 막는다는 '감염 주도 방역' 아닌가.

▶엊그제 청와대는 “최근 입국하는 중국인 숫자 자체가 많지 않다”며 중국인 입국 제한이 필요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마치 감염 주도 방역이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린다. 조금 있으면 국경을 차단하든 말든 중국인을 비롯해 아무도 한국에 오지 않으려 할지 모른다. 한국인 입국을 거부하는 나라도 60국 안팎이다. 이렇게 처량할 수가 없다.

[한현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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