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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특파원 리포트] '정치꾼' 트럼프도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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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있다 보니, 한·미 양국의 '우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처를 비교해서 보게 된다. 공통점은 양국 모두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4월 총선을 앞둔 한국,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의 정치인 모두 '코로나발(發) 선거 악재'를 두려워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성급하게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했다가 역풍을 맞았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우리는 잘하고 있고 매우 잘 준비돼 있다'고 발언했다가 자화자찬만 한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차이점은 전문가에 대한 태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 시각)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전문가를 필두로 한 '코로나바이러스 태스크포스(TF)'와 함께 기자들 앞에 섰다. CDC는 감염병과 관련해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기관이다. 소위 '차르(czar·러시아어로 황제)'라 할 만큼 확실한 전권(全權)을 행사한다. 전날 CDC가 '미국 내 지역사회 유행' 가능성을 경고한 것을 의식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쇼'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는 기자회견에서 줄곧 전문가를 앞세웠고 이들의 조언에 따랐음을 강조했다. 중국발 외국인 입국을 조기 차단한 것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매우 좋은 결정이었다"며 "우리의 최우선순위는 미국인의 건강과 안전"이라고 했다.

한국은 비(非)전문가인 정치인들 목소리가 전문가를 압도한다. 한국 최고 방역 전문가들이 모인 질병관리본부와 대한감염학회, 대한의사협회 등이 중국에 대한 전면적 입국 금지나 제한 확대를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 과학이 정치에 밀려났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우리 집 불났는데 남의 집 불길을 챙긴다. 출입국 책임자인 법무부 장관은 미국의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정치적'이라 깎아내린다. 국민 건강 챙기는 보건복지부 장관은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라 한다. 이 와중에 외교부 장관은 한국인 입국을 막는 나라들에 항의한다고 한다. 자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다는 나라에 무슨 염치로 항의하나.

정치·외교도 물론 중요하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다만 국민의 생명, 안전보다 앞선 정치라는 게 있을 수 있나. 지금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에게 필요한 건 대통령이 주는 홍삼액이나 "허탈하겠다. 힘내라"는 격려 같은 게 아니다. 그저 정치 논리 신경 안 쓰고 직업적 소신으로 뛰게 하면 된다. 순수하게 국민 건강만을 최우선에 두고 전권을 쥔 '방역 대통령' 역할을 하게 하면 된다.

지금이라도 비전문가들은 비켜달라. 제대로 이끌지도, 잘 따르지도 못하겠거든 비켜라도 주는 게 국민을 위한 길이다.

[박순찬 실리콘밸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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