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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신용카드는 지갑 속 CCTV… “그렇다고 현금으로만 살아보니 서럽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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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코로나 계기… 현금살이 2박3일 체험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 알게 됐다. 내 지갑 속에 가로 8.5㎝, 세로 5㎝ 크기의 CC(폐쇄회로)TV가 살고 있다는 것을. 신용카드는 우리가 언제 어딜 갔는지, 뭘 먹었는지, 뭘 샀는지 알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신용카드 속 ‘디지털 흔적’을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의 세부 동선을 찾는다. 신용카드 사용이 많을수록 동선 찾기가 더 쉬운 것은 당연지사. 반면 서울 종로구에 사는 82세 확진자처럼 카드 사용이 적은 고령층은 흔적이 적어 세부 동선 찾기가 까다롭다.

지난 1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가계 지출 중 상품 및 서비스 구매에 대한 현금 결제 비중이 19.8%(2018년 기준)였다. 10명 중 8명 이상이 계산할 때 현금 말고 다른 결제 수단을 내민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이 비교 대상으로 삼은 여섯 나라 중 스웨덴(13%) 다음으로 낮다. 스웨덴은 사실상 '현금 없는 사회'로 여겨지는 곳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신용카드 없이 살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일까. 2박 3일간 신용카드 없이 살아봤다.

조선일보

일러스트= 안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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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대신 포인트 쓰기

21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 현금 인출기(ATM)에 들러 현금 20만원을 찾았다. 가지고 있던 현금은 0원. 평소 일상생활은 대부분 신용카드나 모바일 결제로 하고, 필요할 때만 ATM으로 현금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현금을 찾은 것은 3주 전, 축의금 낼 때였다. ATM에서 5만원권 2장, 1만원권 10장을 찾았다. 당장 지폐 넣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평소 지갑 대용으로 카드보다 조금 큰 카드 지갑을 갖고 다녔다. 카드 지갑에 현금을 욱여넣고, 겨우 지퍼를 닫았다.

저녁 장을 보려고 집 근처 마트로 갔다. 한도가 있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더 고민하며 물건을 골랐다. 최종 결제 금액은 9만3510원. 5만원짜리 두 장을 생각 없이 건네는데, 계산대 직원이 익숙한 듯 물었다. "잔돈은 포인트로 쓰시겠어요?"

일주일에 1~2번 이상 들르는 마트지만, 카드 결제할 때는 못 들어본 말. 동전 받기가 싫은 사람들은 100원 단위를 현금 대신 포인트로 결제할 수 있다고 했다. 매번 적립만 하고 쓰지 않던 포인트를 이날 처음으로 써봤다.

100원짜리와 10원짜리 동전을 잔뜩 받는 사태(?)는 피했지만, 늘어난 지폐의 부피는 피하지 못했다. 거슬러 받은 1000원짜리로 카드 지갑이 더욱 두툼해졌다. 집에 도착해 몇 년간 쓰지 않던 반지갑을 꺼냈다. 동전 넣는 칸과 지폐·카드 넣는 자리가 분리된 지갑이다.

키오스크 사용 못 하고, 카드만 받는 곳도

다음 날 오전, 광화문 인근 샐러드 전문점에서 첫 번째 복병을 만났다. 매장 입구에 키오스크(무인 주문·계산대)가 있었다. 평소 자주 가는 매장인데, 현금을 들고 키오스크 앞에 서니 처음 본 듯 기계가 낯설었다. 아무리 봐도 현금을 어디에 넣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살펴보다 뒷사람 눈총이 따가워질 때쯤, 키오스크 한편에 붙은 안내 문구를 발견했다. '아래 같은 경우는 직원에게 결제 부탁합니다. 현금 또는 식권 결제.'

계산대에 있는 직원에게 가니 "카드는 없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현금밖에 없다고 하자, 기계 대신 직원이 주문을 받아줬다. 치킨샐러드 9800원. 아쉽게도 식당에선 100원 단위 이하를 대신 결제해 줄 수 있는 포인트가 없다. 1만원을 냈다. 처음으로 100원짜리 동전 2개가 생겼다. 직원과 얘기하며 주문하는 사이, 내 뒤에 왔던 고객들이 키오스크로 주문을 먼저 마치고 자리로 돌아갔다.

두 번째 복병은 식당 인근의 스타벅스였다. 메뉴를 고르고 계산대 앞에 섰는데, 현금은 받지 않는단다. 스타벅스는 2019년 기준 국내 1300개 매장 중 840곳(64%)을 현금 없는 매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결제 과정을 간소화해 손님맞이 시간을 단축하고, 현금 정산에 투입되는 인력을 줄여 업무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현금밖에 없는데 방법이 없느냐"고 하니, 곤란한 표정을 짓던 직원이 "거스름돈 내줄 필요 없이 현금이 판매 금액에 딱 맞게 있으면 받아주겠다"고 했다. 고른 것은 4100원짜리 아메리카노. 다행히 아까 돌려받은 100원짜리와 천 원짜리 네 장이 있었다.

조선일보

대중교통, 온라인에선 현금이 더 쥐약

현금을 들고 대중교통을 타 보니, 커피 못 마실 뻔한 건 약과였다. 23일 오전,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현금 승객은 일회용 교통카드를 별도로 사야 한다. 카드 결제보다 요금이 100원 비싸고, 보증금 500원도 내야 한다. 평소 카드를 이용해 지하철을 탈 때보다 표를 사는 데만 최소 3~5분이 더 걸렸다. 내려서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하는 일도 만만치 않게 번거롭다.

그러나 가장 큰 단점은 다른 대중교통 환승이 불가능하다는 점. 지하철역에서 내려 인근 정류장에서 10분 만에 버스로 갈아탔지만, 환승이 인정되지 않았다. 1000원짜리 지폐 두 장을 버스비로 다시 냈다. 버스 요금 역시 카드 결제보다 100원이 비쌌다. 버스 기사는 카드를 찍고 타는 손님이 다 지나간 후에야 "얼마 넣었느냐"고 묻고선 거스름돈을 내줬다. 자리에 앉지 못한 채 거스름돈을 계속 기다려야 했다.

이미 동전이 많은데도, 뒷사람 눈치를 보거나 금액을 맞추기가 귀찮아 지폐를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동전 무게로 지갑이 무거웠다. 저녁이면 남는 동전을 꺼내 돼지저금통에 넣었다. 언제 다시 꺼내 쓸지는 기약이 없었다.

현금 결제의 불편함은 '오프라인'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평소 온라인 거래는 대부분 간편 비밀번호나 지문 인증 한 번이면 해결됐다. 현금 결제는 2~3단계가 더 필요했다. 입금 계좌 번호를 기록하고, 은행 앱에 접속해 돈을 보내고, 상대가 입금 확인하기를 기다렸다. 온라인 영화 예매도 힘들었다. 무통장 입금을 받지 않았다. 매표소에 가서 직접 발권해야 하는데, 원하는 자리를 얻으려면 평소보다 더 일찍 가거나 다른 이들이 예매하지 않는 비선호 좌석에 앉아야 한다.

일부 현금 환영받아, 프라이버시 문제도

모든 곳에서 현금이 천대받는 것은 아니었다. 공산품이 아닌 노동력을 중시하는 업종이거나 영세 사업자는 여전히 현금을 선호했다. 현금 결제 시 혜택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23일 오후, 수선을 맡긴 코트를 찾으러 집 근처 세탁소에 갔더니 "수선은 대부분이 인건비라 현금만 받는다"고 했다. 현금이 없으면 계좌 이체를 해달라며 한쪽 벽면에 써둔 계좌 번호를 가리켰다. 바로 옆 김밥집에서는 한 줄 3000원인 김밥을 현금 결제하면 2000원에 준다고 했다. 붕어빵, 순대 등을 파는 푸드트럭에서도 현금만 받는 경우가 많다. 카드 단말기 설치 비용이나 카드 수수료 등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대신 최근에는 현금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적다는 점을 감안해, 계좌 이체도 가능하게 해놓은 곳이 많아졌다.

현금은 디지털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환영받는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9명 이상(90.5%)이 '현금 없이 전자 시스템만으로 결제하는 것은 모든 결제 이력을 남긴다는 의미'라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국가적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카드 명세를 기반으로 한 동선이 공개될 수 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33)씨는 "병 때문에 겪는 고통도 크겠지만, 평소 내 생활이 다 공개된다는 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라고 했다.

현금 없는 사회 될까

그렇다면 이제 첫 질문에 답할 차례. 우리는 신용카드 없이 살 수 있을까. 트렌드모니터 조사 결과가 대답이 될 듯하다. 응답자 89.2%는 '현금 이용은 앞으로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81.7%는 '실물 화폐와 그 기능이 축소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이라고도 했다. 대신 한국은행의 부연 설명. "현금 없는 사회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취약 계층의 금융 소외 같은 문제가 나타나지 않도록 대응책 마련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4일 오후, 2박 3일 체험을 마치고 편의점에 들렀다. 음료수 두 캔에 2100원. 카드로 계산했다. 나는 왜 사소한 것에만 기뻐하는가. 100원짜리 동전 9개를 받지 않을 수 있어 행복했다.

질본이 검찰보다 막강?… 영장 없이도 카드 내역 확인

확진자 접촉 판별 어떻게 하나

조선일보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보건소 관계자들이 한 식당에서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세 번째 확진자가 다녀간 곳이다.


방역 당국이 제시하는 접촉자 범위는 이렇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의 증상 발생 1일 전부터 확진자와 2m 이내에서 접촉이 이뤄진 사람. 그중 접촉 장소·기간, 확진자 증상 등을 고려해 역학조사반이 최종 접촉자를 판단한다. 2m 이내에서 확진자와 접촉했다 하더라도 당시 확진자가 마스크를 썼는지, 기침을 했는지, 공간이 밀폐된 곳인지 등을 고려한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4일 이전만 해도 접촉자를 밀접·일상 접촉자로 분류했다. 다만 거리, 접촉 시간 등 수치 기준은 적용하지 않았다. 숫자를 정해놓으면 현장 조사관들이 이를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일상 접촉자로 분류한 사람에게서도 양성 판정이 나오자, 이를 현재와 같은 기준으로 바꿨다. 접촉자는 14일 동안 자가 격리된다.

질본은 접촉자를 판별하기 위해 CCTV와 휴대전화, 신용카드 등을 이용한다. 역학조사관이 1차로 확진자의 진술을 받는다. 이를 토대로 CCTV 영상을 확인해 2m 내에 누가 있었는지, 당시 확진자가 기침을 했는지, 마스크는 썼는지 등을 따진다. 휴대전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도 파악한다. 당시 확진자 휴대전화와 접속한 근처 기지국의 GPS 정보를 받는다. 그러나 GPS 위치는 상세하지 않고 대략적 동선만 나오는 것이 한계다. 서울은 100~200m, 지방은 500m 이내 오차가 있다. 미진한 확진자의 기억이나 동선을 보완할 수 있는 게 신용카드 사용 내역이다. 카드업계는 지난달 31일부터 질본과 비상 연락망 체제를 구축해 24시간 대응하고 있다. 질본이 확진자 이름과 생년월일 등 개인 정보, 증상 발현 날짜·시간 등을 각 카드사에 전달하면 담당자가 자료를 질본에 바로 전달한다.

이는 개인의 동의나 영장 없이도 가능하다.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제32조의2)’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 또는 질병관리본부장은 감염병 예방 및 감염 전파 차단을 위해 필요한 경우 감염이 우려되는 사람에 대해 신용카드·직불카드·선불카드 사용 명세를 요청할 수 있다. 사생활 공개 논란 여부는 차치하고, 감염병은 법원보다 힘이 세다.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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