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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수술복과 방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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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조선일보

어수웅·주말뉴스부장


대학 시절 동아리에 의대 선배가 있었습니다. 며칠 전 온라인 선후배 모임방에 이런 글을 올렸더군요. 졸업 후 대학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던 1991년, 당시 최고의 역병(疫病)은 에이즈(AIDS)였다는 것. 지금은 혹 감염돼도 제 수명 가까이 살게 하는 여러 치료법이 있다지만, 그때는 슬쩍 스치는 것만으로도 두렵던 시절. 당연히 에이즈 환자의 채혈은 모두가 피했답니다. 결국 그 모든 업무를 자신 또래 인턴·레지던트들이 했다는군요.

선배는 또 수술복과 방역복 이야기를 했죠. 그 둘은 완전히 다르답니다. 수술복은 나한테 묻어 있는 세균을 환자에게 옮기지 않으려고 입는 옷이지만, 방역복은 환자의 균이 내게 옮지 않도록 막는 옷이죠. 차이가 또 있습니다. 수술복은 입는 게 어렵답니다. 반면 방역복은 벗는 게 더 어렵죠. 조금만 생각하면 이유가 짐작됩니다. 순간 방심하면 감염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중국에서도 수많은 의료진이 감염됐고요. 유튜브에서 방역복 벗는 영상을 봤습니다. 겉장갑·속장갑·덧신·호흡장치·보호복…. 15단계까지 세다가 멈췄습니다. 하나 벗을 때마다 소독 또 소독. 20분 넘게 걸리더군요.

소맷자락 걷어붙이고 대구로 향하는 의료진의 소식을 듣습니다. 확진 환자가 급증한 대구는 의료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 중앙재난대책본부가 모집한 지 이틀 만에 500여 명의 의사와 간호사 등이 지원했다는 발표를 읽었습니다. 또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의 호소를 읽었습니다.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문자메시지에 하루 만에 250명 넘는 의사가 모였다고 합니다. 중앙재난대책본부와는 별도의 인원이죠.

"저도 일반 시민들과 똑같이 두렵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생명이 위독한 중환자를 보아야 하는 응급실은 폐쇄되고, 선별검사소에는 불안에 휩싸인 시민들이 넘쳐납니다. 의료 인력은 턱없이 모자라 신속한 진단조차 어렵고 확진 환자조차 병실이 없어 입원 치료 대신 자가 격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선별진료소로, 대구의료원으로, 격리병원으로, 그리고 응급실로 와 주십시오."

30년 전에는 인턴이었지만, 이제는 환갑을 눈앞에 둔 선배는 비장하더군요. "환갑이 가까운 노병도 이제 깊숙이 넣어두었던 군복을 챙긴다."

신종 코로나와 싸우는 전국의 의료진 여러분, 고맙습니다.

[어수웅·주말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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