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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30년째 주말마다 어촌 답사… 아내도 포기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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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어촌 연구 사회학자 김준 연구위원

조선일보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주말마다 바다 마을 답사를 30년째 해오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잔소리도 지쳐 이제는 슬며시 양말과 속옷을 카메라 가방에 밀어 넣어 주는 아내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맙다"고 했다./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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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57)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어촌 공동체를 연구하는 희귀한 사회학자. 동시에 음식이나 인문학에 관심 있는 이들 사이에서 꽤 이름난 저자이다. '어촌사회학' '섬문화답사기 1·2·3·4' 등 전공인 사회학 외에 '바다맛기행 1·2·3' '어떤 소금을 먹을까' '물고기가 왜?' 등 갯벌과 바닷가, 섬의 자연과 문화, 풍습, 역사, 먹을거리를 다룬 책을 꾸준히 펴냈기 때문이다. 김 연구위원은 "동·서·남해안 어촌은 거의 다 가봤고, 400여 유인도(有人島)는 10곳 빼고 모두 다녀왔다"며 "지난 30여 년 동안 주말마다 섬과 해안을 답사했다"고 했다. 최근 '바닷마을 인문학'(따비刊)을 펴낸 김 연구위원이 이번에는 전남 여자만과 순천만, 광양만 일대 바다 마을을 답사한다기에 지난 23일 따라 나섰다.

―주말마다 답사입니다. 가족, 특히 아내는 불만이 없을 수 없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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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연구위원은 “바다 마을을 답사할 때는 가능한 한 차를 가져가지 않고 걷는다”며 “바다 사람들과 걸으며 만나야 속 깊은 사정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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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과 포기를 넘어 적응 단계에 접어들었죠(웃음). 잔소리도 지쳐 이제는 슬며시 양말과 속옷을 카메라 가방에 밀어 넣어 주니 미안하고 고맙죠. 대신 주중에는 8시에 출근하고 정확하게 5시에 퇴근해 귀가합니다. 약속도 거의 안 잡고요."

여자만으로 가기 전 김 연구위원은 보성 벌교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섬이나 바닷가 가기 전이나 갔다 와서 꼭 시장에 가 보죠. 요즘 어떤 해산물이 나오는지, 어떻게 활용되는지 확인하려고요." 서울에서는 보기도 힘든 참꼬막이 그래도 벌교 시장에는 꽤 있었다. 김 연구위원은 시장 상인에게 "이거 장도에서 나온 것이죠?"라고 물었다. "아니요. 득량만에서 온 거예요. 장도에서 꼬막 안 나온 지 꽤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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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연구위원이 전남 보성 벌교 대포리에서 마을 어르신에게 갯벌과 꼬막에 대해서 물어보고 있다./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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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구위원은 "장도는 '꼬막섬'이라고 할 만큼 꼬막이 많이 나던 섬인데…"라고 의아해하며 차를 벌교 대포리로 몰았다. 대포리 앞으로 '벌교 갯벌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갯벌이 펼쳐졌고, 그 한복판에 장도가 있었다. 포구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마을 어르신에게 김 연구위원이 "꼬막이 왜 그렇게 안 나온대요?"라고 묻자, 어르신은 "작년 태풍 때문에 펄이 뽑혀 나가버렸다"고 했다. "바다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갈 때마다 새롭고 변화무쌍해요."

―석사 학위는 농촌사회학으로 받았는데 박사를 하면서 어촌으로 전향했습니다.

"고향이 전남 곡성이고, 아버지 농사를 늘상 돕다 보니 농촌은 익숙했지요. 석사 마치고 박사 시작할 때가 1990년대 초였는데, 농촌사회학으로 박사 학위 받은 사람은 이미 포화 상태라 일자리 구하기 힘들겠더라고요. 그렇다고 도시사회학을 하자니 지역에서 서울 따라가기 어려웠어요. 살아남을 틈새가 뭘까 고민하다 보니 어촌사회학을 하는 연구자는 없더라고요."

―사회학을 넘어 음식이나 자연,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바다 생태계를 모르면 어민들과 얘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물때, 해초, 물고기, 어구를 알아야 속 깊은 얘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당신들 하는 거 좀 안다' 해줘야 다음 얘기가 나와요. 그거 아는 데만도 한 5년 걸리더라고요."

김 위원의 책에는 30년 동안 바다 마을을 다닌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내밀한 얘기가 가득하다. 예를 들면 '왜 지역마다 '참숭어'라 부르는 숭어의 종류가 다르냐'는 것. "참은 보통 '진짜'나 '품질이 우수한'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수산물에 붙을 때는 해당 지역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지역에 따라 보리숭어를 참숭어라 하는 곳도 있어요. 하지만 이것이 틀린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 지역에서 그 철에 잡히는 숭어는 가장 맛있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그것을 가장 최적화한 방식으로 먹는 문화를 지역마다 만들어냈지요. 낙지는 전남 무안에서 잡히는 펄낙지로 탕탕이를 만들고, 충남 태안에서 잡히는 돌낙지로는 박속낙지탕을 끓이지요. 아무리 좋은 태안 돌낙지라도 무안 펄낙지로 만든 탕탕이 맛은 나지 않지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책에서 '어촌은 농촌보다 접근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논밭에 짓는 농사는 눈에 보이잖아요. 바다에서 하는 것은 부표나 그물만 보고 알아야 하니까 힘들어요. 바닷속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어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가늠하기 어렵지요."

김 연구위원은 광양만에 접해 있는 여수 율촌면 조화리로 안내했다. 주민들이 경운기를 타고 마을 앞 시커먼 갯벌을 가로질렀다. 김 연구위원은 "마을 공동 갯밭"이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갯벌에는 철근처럼 가느다란 쇠막대가 줄지어 박혀 있었다. 쇠막대는 갯벌을 여러 구획으로 나누어 놓았다.

―모르고 보면 그냥 펄이지만, 알고 보면 밭이네요.

"갯벌에 굴이나 바지락이 잘 붙도록 돌을 힘들게 운반해와 쏟아부어 주는 등 정성 들여 가꿔준 마을 어장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을 모든 주민이 똑같이 나누기도 하고, 각각의 갯밭 소출을 각자 갖기도 합니다. 운영 방식은 마을마다 다르지요."

―어촌에 정착하는 귀어인(歸漁人)이 늘어난다는데, 마을 어장을 놓고 갈등이 생길 수 있겠네요.

"귀어인들은 어민들의 텃세가 강하다며 불만이 많지만, 어민들도 고충이 있습니다. 마을 어장은 어민들이 시간을 쏟고 비용을 들여 관리하고 가꾸어온 곳일뿐더러 갈수록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어요. 귀어 귀촌한 이들에게 곧바로 아무런 조건 없이 마을 어장을 이용할 권리를 주는 건 형평에 맞지 않는 것이죠."

―바다와 바다 마을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이 귀어인에게 절실할 듯합니다.

"바다를 뭍의 시선이나 논리가 아닌 바다의 시선으로 보게 해주는 교육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억대 연봉 귀어자' 같은 이야기만 하면서 양식 등 기술만 가르칩니다. 어촌 생활을 공감하고 문화를 이해하도록 돕는 교육은 고작 양념 정도, 아니 거의 하지 않죠. 그러다 보니 어촌은 망가지고 어촌에 왔던 사람들은 욕하고 떠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김 연구위원은 "어촌으로 귀촌하려는 사람보다 도시민에게 갯마을을 소개하고 싶어서 책을 썼다"고 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한다고 하잖아요. 어촌과 갯벌, 섬마을의 가치에 공감한다면, 골목 시장에서 마주치는 바지락이나 마트에서 마주하는 김이 다르게 보이겠죠. 바닷가 여행을 하다가 만나는 어민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넬 수도 있겠죠. 그 한마디가 어민들에게 큰 힘을 줄 수 있고, 어촌을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겁니다."




[보성·광양(전남)=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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