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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대구 의료대란에 전문가들 “중증환자 지역 이동, 현실적으로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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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대구 남구보건소 직원들이 27일 남구보건소 앞 선별 진료소에서 방역복을 입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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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만 27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환자가 422명이 쏟아지면서 이 지역 환자 치료를 위한 의료시설 부족사태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이날 13번째 사망자가 입원을 기다리다 사망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는 입원 우선순위를 정하는 중증도기준 정비에 착수하고 병상 확대를 위해 힘쓰고 있다지만 이미 확진환자 1,000명을 훌쩍넘긴 대구지역의 의료 서비스 수위는 임계점을 넘어선지 오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일부 지자체에서 중증환자를 전원받아 치료를 돕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경증환자들을 추려내 이들을 자가 치료토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이날 서울시가 대구지역 신종 코로나 확진환자를 수용하겠다고 밝힌데 대해 일부 전문의들은“의료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이다”고 지적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인공호흡 등 기계호흡을 하고 있는 중증환자를 서울로 이송하는 자체가 너무 위험해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천 교수는 “서울에서 중증 감염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음압병실이 갖춰져 있는 상급종합병원 등 소수에 불과한데 이들 병원은 신종 코로나 사태 전부터 중환자실이 만원이라 대구‧경북 환자를 받을 여력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대구ㆍ경북만큼 상황이 나쁘지 않지만 이미 은평성모병원 등에서 신종 코로나 환자가 발생해 서울지역 의료기관들도 비상사태”라며 “중증환자는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지역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숙 경희대병원 감염면역과 교수는 “기존 중증환자를 퇴원시키고, 신종 코로나 확진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이나 의료진을 충원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각 의료기관의 여건과 현실에 맞게 환자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경증과 중증에 관계없이 서울 등 타 지역에서 대구ㆍ경북 신종 코로나 확진자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동의와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홍기정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국가적 재난이긴 하지만 신종 코로나 환자 수용으로 인해 일반 응급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의료기관에서는 이들 환자를 수용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며 “신종 코로나 확진자 치료를 위해 중증이 아니면 가급적 응급실 이용을 자제하는 등 시민들의 협조가 이뤄져야 환자 수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병실이 있어도 확진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 간호사, 장비 등이 추가로 확보돼야 하기 때문에 확진자들을 전원해 수용하려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확진자를 무조건적으로 의료기관에 수용해 치료하겠다는 원칙에서 탈피해 ‘자가격리’를 활성화하는 쪽으로 방역대책을 틀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신종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해 지난 20일부터 자가격리 상태인 김신우 경북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보건당국에서는 대구의료원 등 지역의료기관의 병실을 확보해 확진자 치료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당국의 말과 현실은 괴리가 있다”며 “의료기관들이 기존 환자들을 병실에서 내보내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건당국에서 병상을 확보했다는 것은 확진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병상 수를 의미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보건당국에서 1,000개 병상을 확보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확진자가 사용할 수 있는 병상은 100~200개에 불과하다”며 “지난 21일 음압병상을 찾아 청도대남병원에서 부산까지 이송됐다가 사망한 환자가 발생한 것도, 확진자들이 병실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자가격리를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턱없이 부족한 병상, 의료인력, 의료장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종 코로나 확진자 중 경증환자는 자가격리를 통해 관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확진자 가운데 △50대 이하 연령 △폐렴 증상이 없고 △자택소유자 △가족이 식사 등 관리 △증세 악화 시 이송 가능 △잠복기 해제 시 진단검사 가능한 자 등은 자가격리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경증임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확진을 빨리 받아 음압병실을 사용 중인 확진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의료자원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자가격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단독으로 자가격리 방침을 말하기 힘들 것”이라며 “대한감염학회 등 전문가들의 권고를 수용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한감염학회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한 대구에서 병상 부족으로 확진 판정을 받은 후 자가격리 중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현재 입원 중인 경증 환자를 수련원 시설 등으로 옮기고 새로 발생하는 확진자 중 중증도에 따라 병원 입원을 신속히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인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하루에 200여명 이상 발생하는 확진자 중 중증도를 평가해 분류하지 않다보니 만성신부전으로 콩팥 이식수술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진 고령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후 자가 격리 중 사망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며 “아무리 병상이 없어도 이런 분은 진단 받자마자 입원 시켰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재 입원 중인 경증 환자는 수련원 등으로 옮기고 의료진이 관리하도록 한 후, 빈 병상에 새로운 확진자 가운데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자 위주로 확진자 중증도를 분류해 입원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지역 감염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사망자를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현재 입원한 경증 환자는 사회에 전염시킬 수 있는 위험 때문에 격리 차원에서 입원을 하고 있는 것이지, 특별한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상태는 아니다. 이들은 대구 인근의 수련원 등으로 옮겨 1인실에 배치한 후 함께 간 의료진이 상태를 체크하도록 해 잠복기가 지나 두 번 음성 판정을 받은 후 사회로 복귀시키면 된다. 그렇게 난 자리에 신규 확진자 중 중증도에 따라 상태를 분류해 신속히 입원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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