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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청도대남병원 위중환자, 구급차 타고 떠돌다 결국 '심정지' 사망... 우한 데자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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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시설 부족으로 사태 키운 우한 전철 안 밟는 게 시급
"응급실 부족 막으려면 중국처럼 호텔 징발도 검토해야"

청도대남병원에서 나온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증환자가 인근 지역의 국가지정 음압병상 등 입원 병상이 부족해 타지역으로 이송되면서 사망하는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 감염병의 진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병원 수용능력이 부족해 병원을 찾다가 사망이 잇따랐던 사태가 국내에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섣부른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기저질환 유무, 발병 시기, 엑스레이 소견 등 중증도를 분류해서 병실을 배정한다는 원칙을 24일 밝혔다. 우한 코로나 감염 탓에 응급실 잇단 폐쇄 등 의료시설 부족이 현실화되면서 자칫 기존 의료시스템이 붕괴되는 걸 막기 위해 의료 자원 배분 효율을 높이는 게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20~80km 이상 먼 타지역으로 ‘무리하게’ 옮기다가 심정지와 호흡곤란이 발생해 오히려 사망하는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일보

지난 21일 오후 경북 청도대남병원에 입원 중인 확진 환자가 부산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청도대남병원에서는 2월 15일 전후로 감염이 시작됐다고 판단한다"며 "이후 어느정도 시간이 경과하면서 면역상태가 좋지 않은 장기입원환자들이 폐렴과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 사망이 발생하지 않도록 진료 및 치료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현재까지 사망한 7명 중 5명은 청도대남병원에 중장기로 입원해 있다가 확진판정을 받자 타지역으로 이송되는 과정 혹은 이송 후 사망했다.

국내 2번째 사망자(55세 여성)는 지난 21일 확진 판정 후 청도대남병원에서 가까운 지역에 국가지정 음압병상이 부족해 부산대병원까지 이송된 직후 호흡 곤란증세로 숨졌다. 그는
당일 오전 건강 상태가 나빠져 내과병동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며, 대구·경북 지역에서 음압격리병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부산대병원까지 약 80km이상(1시간 30분)을 무리하게 이동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지난 22일 브리핑에서 "폐렴이 상당히 진행됐고 중증이어서 음압병상이 필요해 그나마 가까운 국가지정격리병상을 배정하면서 부산으로 가게 됐다"며 "부산대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안타깝게도 도착직후 어느 정도 있다가 사망한 것으로 안다. 앞으로는 기저질환이 있거나 중증인 환자를 분류해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잘 배정하겠다"고 했다. 중증으로 분류해 큰 병원으로 옮겼으나 너무 멀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23일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지난 19일 청도대남병원에서 처음으로 양성 판정 받은 코로나19 확진자였던 57세 남성은 처음엔 포항의료원으로 이송됐다가 20일 중증 폐렴이 있는 상태에서 동국대 경주병원으로 다시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23일 오전 국내에서 네번째로 사망했다. 이송 과정 중에서 계속 산소포화도가 계속 떨어지고 폐질환이 중증으로 진행됐다.

같은 날 오후 8시 50분쯤 숨진 6번째 사망자(59세 남성)도 지난 19일 확진판정을 받은 이후 동국대 경주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던 중 상태가 악화돼 산소마스크를 쓰는 위중한 상황을 겪다 6번째 사망자가 됐다. 같은 날 사망한 7번째 사망자(62세 남성) 역시 21일 확진판정을 받고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이송됐다가 밤 10시쯤 사망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들에 대해 역학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판정을 받아서 사망자 집계엔 포함되지 않았으나, 청도대남병원 환자 중 인근지역 응급실을 떠돌다 사망한 사례도 나왔다.

청도대남병원 요양시설에 입원해있던 한 여성환자는 22일쯤 갑자기 몸상태가 악화돼 구급차를 타고 약 15분간 인근 지역병원 응급실에 요청했지만 입원을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환자는 당초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지면서 큰 병원으로 이송이 필요했다.

확진자가 아니어서 국가지정음압격리병상에 입원할 수도 없었다. 결국 20여㎞ 떨어진 경산 지역에 경산중앙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골든타임을 놓쳐 구급차 안에서 긴급 심정지로 사망했다. 보건당국은 "지역 병원의 경우 응급실이 폐쇄된 경우가 많아 소통 과정에서 연락이 지연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의료계에서는 사망자 대부분이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고 병상 배치를 위한 중증도 분류에 보다 촘촘한 체계를 마련해야한다고 지적한다. 방역당국은 뒤늦게 대구·경북지역처럼 대규모 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전원을 음압격리병상에 수용하기는 어렵다며, 중증도를 분류 한 뒤 병상을 배정하겠다는 계획만 24일 밝혔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환자가) 소수일 때는 1인 2실의 음압병상으로 배정을 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대규모 환자가 발생할 경우에는 국가지정 음압격리병상으로 수용하기는 어렵다"며 "저희가 원칙을 세운 것은 기저질환 여부, 엑스레이 소견 등에 따라 환자의 중증도를 일단 분류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음압병상이 100% 찬 대구·경북지역의 경우, 정부는 대구의료원과 대구동산병원에서 156개 병상을 우선 확보하고, 대구의료원을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하는 등 2월 말까지 453개 병상을 추가 확보할 계획이다. 이후에도 병상이 부족할 경우 대구 소재 공공병원과 인근 지역 공공병원을 전담병원으로 지정한다. 이날까지 대구 지역 환자는 446명이다.

하지만 이 같은 뒷북 대응으로는 의료시설 부족으로 혼란이 일어난 중국 우한 상황을 되풀이하는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후시진(胡錫進) 총편집인은 지난 22일 트위터 계정에서 "우한의 실수가 다른 나라에서 되풀이되고 있어 걱정스럽다"면서 "중국인들이 보기에는 한국의 상황은 매우 심각해 보인다. 한국의 대응은 느리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1일 웨이보에서도 한국과 인구, 면적이 비슷한 중국 저장(浙江)성의 일부 도시가 거주단지의 전면 폐쇄식 관리와 대중교통 운행 중단으로 확산 추세를 저지한 것을 효과적인 방역 조치로 제시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비상시국인 만큼 중국식의 강력한 대처를 주문하는 전문가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감염학회가 지난 22일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신형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센터장은 "환자가 늘어 공공병원이 차서 모자라면 중국처럼 호텔을 징발하는 방법도 있다"며 "그런 것 때문에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올려 적극 대응할 준비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 날인 23일 위기 경보를 ‘경계’에서 최고수준인 심각 단계로 올린다고 발표했지만 보건당국은 의료시설 부족에 대한 뾰족한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느라 기존 의료시스템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백진휘 인하의대 응급의학과 과장은 지난 22일 대한감염학회 기자간담회에서 "응급실에서 진료하는 의료진이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한 발열호흡기 환자를 격리하면서 동시에 중증환자 치료 차질이 없어야 하는데 점점 차질을 빚는 사태가 다가오고 있으며 일부는 겪고 있다"고 했다. 지역 내 중증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이미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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