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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외부인사에게 이사회 의장 넘긴 삼성.. 得일까 毒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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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처음으로 사외이사인 박재완 전 장관에게 이사회 의장 넘겨

이상훈 전 의장 구속에 따른 조치로 '계획에 없던 일'

이사회 독립성 강화는 장점이지만 이사회와 손발 안맞을 경우 '초격차' 힘들어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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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005930)가 지난 21일 이사회 의장으로 사외이사인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선임한 것에 대해 재계에서는 반응이 엇갈린다. 시가총액 353조원(21일 보통주 종가 기준)에 달하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업의 이사회 독립성이 강화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삼성 특유의 ‘초격차’에는 제동이 걸렸다는 우려가 나오는 탓이다. 박재완 전 장관이 거시경제 등에 해박한 ‘경제통’이긴 하지만 대통령실 정무수석 비서관, 고용노동부 장관,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교수 등의 이력을 살펴볼 때 정보기술(IT) 쪽의 전문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우려를 부추긴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박 전 장관의 특유의 안정감을 믿고 이사회 의장직을 맡겼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22일 상법과 삼성전자 정관 등을 살펴보면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우선 상법 제393조는 이사회의 역할에 대해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지배인의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ㆍ이전 또는 폐지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고 돼 있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이사회가 지난해 1월부터 3·4분기까지 의결한 중요 안건만 25건에 달한다. 세부적으로 보면 △2019년 경영계획 승인의 건 △PLP사업 영업양수의 건 △DS부문 우수협력사 인센티브 기금 출연의 건 등 굵직굵직한 안건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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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은 의장이라는 상징성 외에도 여타 이사 대비 권한도 강하다. 삼성전자 정관 제 30조에 따르면 ‘이사회는 의장이 소집한다’고 돼 있다. 물론 ‘이사는 업무수행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이사회를 소집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이때도 이사회 의장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박 신임 의장이 이사회를 좌우할 수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얼마전 까지만 하더라도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다만 지난 2018년 3월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김기남 카드가 여러모로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를 정관에 못박지는 않았지만 자칫 김기남 카드를 강행할 경우 현정부 들어 입김이 강해진 시민단체 및 노동단체들에게 몰매를 맞을 수 있는 상황이다.

타사의 경우 SK가 지난해 초 정관 변경을 통해 지주사 대표와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하고 외부인사인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에게 의장직을 맡겼지만 삼성전자와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다. SK의 경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연초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회 의장 자리를 내려놓긴 했지만 정관 34조 변경을 통해 기존 ‘이사회 의장’에게만 부여했던 이사회 소집 권한을 ‘이사회 의장 또는 대표이사’로 확대 변경했기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이 SK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는 점에서 이사회 의장의 실질적 권한은 그대로 쥐고 있어 반쪽짜리 권한 이양인 셈이다. 특히 염재호 의장이 SK그룹 공익재단인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지원을 받아 미국 유학을 다녀오는 등 ‘친 SK’ 성향의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사회 운영을 놓고 최 회장과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도 극히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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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삼성전자는 올해 주주총회에서 별도 정관 변경 등을 하지 않는 한 외부인사인 박재완 신임 이사회 의장이 이사회 소집이라는 막대한 권한을 홀로 쥐게 된다. 박 전 장관이 탁월한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MB 사람’으로 분류 된다는 점에서 현 정권과 얼마만큼 코드를 맞출지도 의문이다.

이 때문에 이 같은 급격한 이사회 구성 변경이 삼성전자의 글로벌 경영전략에 차질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 등에 따라 지난해 10월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는 등 삼성전자 이사회에서 내부의 목소리가 작아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측은 다음달 주주총회에서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인 한종희 사장과 경영지원실장인 최윤호 사장을 각각 사내이사로 등재한다는 방침이지만 사외이사의 권한이 막강해진 상황에서 예전 같은 발 빠른 경영행보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사회와 자칫 손발이 맞지 않을 경우 대규모 투자집행 등이 지체될 수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상훈 전 의장의 지난 연말 갑작스러운 구속으로 삼성전자의 의사결정 구조가 지나치게 빠르게 변하고 있다”며 “이처럼 ‘계획에 없는 일’이 자꾸 발생하면 삼성전자의 경영전략에도 다소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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