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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고유정 의붓아들 살해 무죄···판사는 '남편 다리'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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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전남편 살해 혐의만 '유죄' 선고

"범행동기 약하다" 의붓아들 살해는 '무죄'

"전남편 성폭행했다"는 고유정 주장은 안받아들여

전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37)이 1심 재판에서 의붓아들 살인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재판부의 판결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재판부는 여러 정황상 의붓아들을 살해한 의심은 들지만, 검찰이 제시한 간접증거들만으로는 유죄를 증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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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고인 고유정(37)이 20일 무기징역 선고를 받은 뒤 제주지방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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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 다리에 눌렸을 가능성 배제 못 해"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 정봉기)는 20일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살인과 사체손괴, 사체은닉 등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전남편을 계획적으로 살해한 혐의는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의붓아들 살해 혐의는 무죄로 봤다.

고유정은 지난해 5월 25일 제주 한 펜션에서 전남편 강모(사망당시 36세)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은닉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지난해 3월 2일에는 충북 청주의 자택에서 잠을 자던 의붓아들 A군(사망당시 5세)을 숨지게 한 혐의도 받았었다.

재판부는 이날 크게 3가지의 근거를 무죄판단의 배경으로 제시했다. ^A군 사망 전날 현남편B씨(38)가 옆에 앉은 상태에서 수면유도제를 차에 넣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점 ^A군의 사망시간을 특정할 수 없어 고유정의 범행으로 단정할 수 없는 점 ^고유정의 범행 동기 규명 미흡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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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이 경찰에 붙잡힐 당시 범행을 부인하는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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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남편 옆에 있는데 수면제 넣었다?



현남편 B씨는 “고유정이 아들(A군) 사망 전날 수면유도제를 섞은 차를 먹인 뒤 살해했다”고 주장해왔다. 재판부 역시 "고유정이 수면유도제인 독세핀을 B씨가 마실 차에 넣어 깊은 잠에 빠지게 한 다음 피해자를 살해한 것은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집안 구조나 고유정과 B씨의 위치 등으로 볼 때 독세핀 사용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봤다. 당시 B씨가 옆에 앉아있는 상황에서 고유정이 대담하게 차에 수면제 가루를 넣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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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이 20일 오후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제주지법에 도착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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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A군 사망시간 특정할 수 없다



당초 검찰은 A군 사망 추정 시간인 새벽에 깨어있었던 고유정의 행적 등을 근거로 유죄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A군 사망시간이 달라질 수 있어 살해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고 봤다. 고유정이새벽시간에 깨어있다는 것만으론 범행을 저질렀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아울러 재판부는 “(사망 당시 함께 잠을 자던) 아버지의 다리에 눌려 사망했을 가능성 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설명도 했다. A군이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왜소한 점과 수면유도 효과가 있는 감기약 등을 먹은 점 등에 근거한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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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과 사건 관계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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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고유정, A군에 분노 표출 안했다



재판부는 고유정이 A군을 살해한 범행동기 역시 약하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검찰은 수차례 유산과정에서 고유정이 B씨와 불화를 겪었고, 친아들인 A군만 아끼는 태도에 적개심을 품고 범행을 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재판부는 고유정과 현남편의 관계가 정도가 심하기는 하나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는 통상적인 부부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고유정이 B씨와 원만한 가족을 유지하려 했다면 A군이 오히려 필수적인 존재였다고 봤다. 친아들에 대한 친권을 갖기 위해 전남편을 살해한 것과는 달리 A군을 살해한 혐의는 범행동기가 모순된다는 판단이다.

반면 재판부는 고유정이 전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은닉한 혐의에 대해서는 치밀한 계획살인으로 결론 내렸다. 그동안 고유정은 전남편 살해가 우발적으로 이뤄진 범행이라는 점을 강조해왔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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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이 1차 공판당시 시민에 의해 머리채를 잡힌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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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 살해는 치밀한 계획범죄



고유정은 지난해 9월 30일 4차 공판 등에서 “전남편의 성폭행 시도를 막다가 살해했다”는 주장을 줄곧 해왔다. 숨진 전남편의 성폭행 시도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우발적 범행을 강조하기 위한 취지의 발언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 혈흔에서 고유정이 구입한 졸피뎀이 검출된 점, 범행이 일어난 펜션 내 혈흔 분석 결과 흉기를 수차례 휘두른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근거로 유죄로 판단했다. 또 범행도구나 장소 등을 사전에 검색하거나 구입한 점 등을 계획범죄의 증거로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전남편 사건의 경우 전례 없는 참혹한 방법으로 사체를 훼손하고 숨기는 등 범행이 계획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범행을 전혀 반성하지 않는 등 영구적으로 사회에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제주=최경호·최충일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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