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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상생법, 대기업 옥죄고 中企엔 독”…法 개정안 ‘독소조항’ 논란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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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탁기업 기술유용 분쟁 발생 때 / 대기업측에 입증 책임 일방적 부담 / 중기부 처벌권한 강화 ‘규제 일변도’ / 전문가 “차라리 해외 진출 가능성 커”

세계일보

“협력업체를 가능하면 해외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은 앞으로 협력사와 관계를 청산할 때 중소기업 기술을 유용·탈취하지 않았다는 입증을 우리가 스스로 해야 한다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분쟁 여지는 없애야죠.”

19일 만난 대기업 관계자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개정안에 대한 걱정이 컸다. 이날 국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에 따르면 상생법은 지난해 7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해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위탁기업(대기업)이 기존 수탁기업(하청·협력업체) 생산물품과 유사한 물품을 자체 제조 혹은 제3자에게 제조를 맡기면 ‘기술유용’으로 추정된다. 위·수탁관계 종료 뒤에 수탁회사 물품을 위탁회사가 시장에서 계속 거래해도 마찬가지다. 유용이 아니라면 이에 대한 입증책임은 위탁기업 부담이다. 대기업 책임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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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기업부의 처벌 권한도 강화된다. 현재는 위·수탁기업의 분쟁조정 요청이 사전에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중기부의 개선 요구에 위탁업체가 불응하면 처벌된다.

재계는 이런 조항이 거래처 해외변경 확대, 위탁거래 축소로 국내 중소기업에 오히려 ‘독’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일본의 수출 규제로 국내 중소기업이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는 반도체 제작공정 핵심소재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최근 미국 듀폰사도 거액을 투자해 생산키로 했다. 대기업 입장에선 규제를 받는 한국업체와 규제를 받지 않는 외국업체 중 어느 쪽과 협력관계를 맺어야 할지부터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기술 유용이나 탈취는 하도급법 등에서 처벌이 가능해 법률충돌·중복규제라는 주장도 있다. 입증책임을 국가가 아닌 법인인 대기업에 넘긴 것 역시 ‘때린 사람이 때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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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김도읍 위원. 뉴스1


국회 상임위 통과 과정에서도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됐다. 자유한국당 김도읍 위원은 “동일 사안에 대해서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조사하고 중기부에서도 조사를 하고, 규제가 2중·3중으로 강화되는 불합리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이은재 의원은 “개정안의 궁극적인 목적은 중기부의 처벌 권한을 강화하는 것으로써 상생법 입법 취지를 무색게 한다”고 개탄했다.

이날 한국경제연구원과 중견기업연합회가 서울 전경련회관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최준선 명예교수는 “상생법이 개정되면 국내 대기업들은 기술유용 분쟁 등 우려로 거래처를 해외로 바꿀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 방침과 정반대의 방향”이라고 말했다. 숭실대 법학과 전삼현 교수는 “기술유용 입증책임을 위탁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입증책임의 일반 법리에 맞지 않는다”며 “기술자료 개념도 모호해 명확성 원칙에도 위배되고, 하도급법 등 타법과도 충돌한다”고 주장했다.

중기부는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수정했기에 큰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중기부는 ‘기술자료’가 광범위하다는 의견에 따라 ‘유용대상 기술자료’로 한정했다. 또한 중기부는 직접 기술유용 사건을 조사·처리할 경우 공정위와의 중복 조사를 원천 방지한다는 계획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중기부 사건 조사 시 하도급법 위반으로 인정될 경우 공정위에 필요한 조치 요구를 하고 있어 중복규제에 대한 안전장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기천·이우중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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