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엄마 잃은 美육사 여생도, ‘군의관’ 첫발 내딛다

슬픔 딛고 학업 전념한 끝에 ‘군의관 대학원’ 합격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4학년 여생도가 암에 걸린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별세라는 아픔을 딛고 육군 군의관의 꿈 실현에 한걸음 다가서 깊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18일 미 육군에 따르면 재클린 햄릭은 오는 5월 졸업 및 소위 임관을 앞둔 육사 4학년 생도다. 그는 고교 1학년 시절 어머니가 극히 드문 희귀암인 악성뇌종양 판정을 받는 슬픔을 겪었다. 당시 의사는 “4개월, 길어봐야 6개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판정했다.

미 육사 4학년 생도인 재클린 햄릭(왼쪽)이 1학년 신입생이던 2016년 악성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 제니퍼 햄릭과 함께 찍은 사진. 어머니 제니퍼는 딸의 소위 임관을 보지 못하고 그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미 육군 홈페이지

햄릭은 오래 전부터 육사 진학을 꿈꿔왔다. 육군 부사관인 아버지를 보며 일찌감치 장교가 되려는 희망을 품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와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어서 군복을 입고 싶은 햄릭의 거침없는 행보를 가로막진 못했다. 그래서 햄릭은 고교 졸업과 동시에 육사에 진학하는 길을 택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의사의 ‘4∼6개월 생존’ 판정과 달리 햄릭이 고교를 졸업하고 육사 생도가 될 때까지 살아 있었다.

2016년 여름 입학식 날 아버지는 햄릭을 차에 태워 육사까지 데려다주긴 했으나 행사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햄릭을 내리게 한 뒤 급히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픈 어머니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 육사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6주일 동안 ‘기본군사훈련’을 실시한다. 이 기간은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된다. 어머니가 걱정이 됐지만 햄릭은 집에서 학교로 먼저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물론 햄릭은 속으로 ‘제발 전화가 오지 않았으면’ 하고 빌었다. 다행히도 기본군사훈련이 끝날 때까지 햄릭의 어머니는 살아 있었다.

육사 1학년 생도로서 6개월 가까이 생활한 뒤인 2016년 11월 햄릭의 어머니는 결국 눈을 감았다. 처음 악성뇌종양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가 ‘4∼6개월 생존’을 예상한 것과 달리 실제로는 2년6개월 넘게 살며 딸이 늠름한 육사 생도가 되는 것을 지켜봤다.

미 육사 4학년 생도인 재클린 햄릭(왼쪽)이 역경을 딛고 큰 성취를 이룬 육사 4학년 생도에게 수여하는 ‘헨리 플리퍼 상’을 받고 있다. 미 육군 홈페이지

슬픔에 잠긴 햄릭을 위로한 것은 동료 생도들이었다. 새삼 악성뇌종양의 무서움에 눈을 뜬 생도들은 햄릭과 함께 이 질병으로 고생하는 이와 그 가족을 돕기 위한 캠페인에 나섰다. 웨스트포인트 공동체 전체가 나서 캠페인에 동참한 끝에 햄릭과 동기생들은 4000달러(약 476만원)라는 거액을 모금, 악성뇌종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재단과 단체에 기부할 수 있었다.

아픈 어머니를 보며 햄릭은 육군 군의관이 되는 꿈을 키웠다. 적군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우리 편을 살리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군사훈련과 학과 공부, 그리고 체력단련까지 무엇 하나 게을리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햄릭은 육사 졸업 및 소위 임관과 동시에 국립군의관의과대학원(USUHS)에 입학할 자격을 얻었다. 이 대학원은 현역 장교 신분으로 교육을 받는 곳으로 학위를 따면 육해공군과 해병대, 해안경비대 등 미군에서 복무하는 군의관이 된다.

미 육사는 역경을 딛고 군의관이 되기 위한 출발점에 선 햄릭을 응원하는 뜻에서 그에게 헨리 플리퍼 상(Henry O. Flipper Award)을 수여했다. 1977년 제정된 이 상은 19세기에 흑인으로는 처음 미 육사를 졸업한 헨리 플리퍼(1856~1940)를 기리고자 1977년 제정됐다. 고난 끝에 커다란 성취를 이룬 4학년 생도가 자신감을 갖고 장차 장교로서 승승장구하라고 기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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