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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김지수 칼럼] ‘예의 없는 자의 파국과 예의 있는 자의 천국’ 동시에 보여준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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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현재 지구상에서 봉준호만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변방과 중심,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아우성’을 사려 깊게 표현해내는 감독은 드물다. 어떤 상황에서건 우직한 몸으로, 우왕좌왕하는 인파를 뚫고, 우아하게 착지하는 그의 여유와 위트가 놀라울 뿐.

11년 전 영화 ‘마더' 촬영 후 처음 만났을 때 봉준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김혜자는 위대한 배우이고, 원빈은 위대함의 문턱에서 한쪽 발을 들이민 배우이며, 저는 위대해질 가망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위대해질 가망성이 없다’던 봉준호는, 칸 영화제 그랑프리에 이어 2020년 2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4개 부문을 석권하며 자신의 예언을 뒤집었다.

디즈니와 마블이 기존 백인 남성 중심의 콘텐츠를 갈아엎어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했듯, 아카데미도 익숙한 듯 새로운 ‘유니버설 덕후’ 봉준호 덕에 체면 구기지 않고 대세 전환에 성공했다. ‘1인치 언어의 장벽’ ‘아카데미는 로컬'이라는 뼈있는 농담과 ‘텍사스 전기톱으로 트로피를 5등분 하고 싶다'는 봉준호의 상생의 유머는 동시대의 화사한 햇빛이 되어 두꺼운 권위주의의 옷을 벗겨냈다.

아카데미는 흥행의 봉을 잡았고 봉준호는 오스카 히어로 무비의 주인공이 됐다. ‘기생충'의 전염력은 여전히 막강하고, 전 세계 미디어는 웃으며 바른 말 하는 ‘봉준호 유니버스’의 스피커를 자처하는 중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 모든 것이 과연 봉준호가 ‘불평등 이슈’를 잘 다뤘기 때문일까. 혹 그가 모두가 미묘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예의를 잘 차렸기 때문이 아닐까.

동양과 서양의 예의, 전통과 현대의 예의, 인종과 인종의 예의, 언어와 언어의 예의, 개인과 세계의 예의…

더 힘 있는 것과 덜 힘 있는 것들 사이의 미묘한 그라데이션. 리스펙트라는 지렛대를 절묘하게 움직여서.

따지고보면 ‘기생충'이라는 ‘웅장하고 비통한 동화’가 지속적으로 퍼져나가는 이유도 그가 빈부 격차를 고발해서가 아니라, 빈곤이라는 ‘감각적인’ 소재로 인간의 ‘예의 없음’을 고발했기 때문이다. 지상과 반지하와 깊은 지하의 건축적 위계는 감각의 파격일 뿐(이 영화에서는 빈곤을 실재적 고통으로 느끼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봉준호는 그 내부를 예의 있는 자와 예의 없는 자로 구분했다.

모든 고용인에게 의존하듯 칭얼대는 조여정과 꿀린 데 없이 기세등등한 박소담은 이 괴저택에 싱싱한 리듬을 부여하며, 부자와 빈자의 전형성을 역전시킨다. 대놓고 박사장네 가족을 골려먹는 기택 가족의 무례에 비해, 오히려 더 깊은 곳의 극빈자는 믿기지않을만큼 자족하며 박사장에게 ‘리스펙트'를 외친다.

사람들의 갑론을박과 달리 봉준호의 메시지는 사실 간단했다. "예의 무너지면 파국 오니, 가장 낮은 자까지 리스펙트하라!"

우연인듯 필연인듯, 칸에서 시작해 아카데미까지 봉준호가 공식 석상에서 보인 일관된 태도가 있었으니 바로 타자를 향한 ‘리스펙트’다. 덕분에 우리는 연결돼있으며, 나의 현재를 타인의 공덕으로 돌리는 행위가 어떤 기적의 연쇄 반응을 낳는가를, 우리는 즐겁게 목도했다.

칸에서는 프랑스 영화의 레전드인 조르주 클르조와 클로드 샤브롤에게, 한국의 100년 영화사에, 故 김기영 감독에게(봉준호는 ‘기생충'과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동시 상영됐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위대한 배우’ 송강호에게 자신의 트로피를 건넬 때는 기어이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까지 했다. "인내심과 슬기로움과 열정을 가르쳐준 대한민국의 모든 배우에게 이 영광을 바치겠다"는 송강호의 연이은 리스펙트로 한국 배우의 품격이 한없이 올라간 건 덤.

뿐인가. 골든글로브에서는 "방탄소년단이 나보다 3천배 쯤 유명하다"며 한국인의 뜨거움에 전체 공을 돌리더니, 아카데미에서는 위대한 감독 마틴 스콜세지와 쿠엔틴 타란티노 덕분에 자기가 있었노라고 리스펙트의 클라이맥스를 찍었다. 존엄이 회복된 거장의 기쁨은 말해 무엇하랴. 모두를 승자로 만드는 존중은 할리우드도 춤추게 한다.

‘예의가 없으면 파국'이라는 영화적 메시지를, ‘예의가 있으면 천국'이라는 현실의 메시지로 승화시킨 봉준호. 왜 이 거구의 사나이가 웃으며 말하면, 모든 게 진심으로 느껴지는걸까. 다른 언어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세계인은 그의 몸에서 우러나는 하나의 언어 ‘진정성’에 감화했다.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진정성은 자기다움의 윤리다.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이 진짜 자기의 것이어야 하고 서로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그 핵심은 약속의 이행과 공동체의 신뢰에 달려있다. 이게 무너지면 위선이다. 그래서 ‘도덕성보다 실천하기 어려운 과제가 진정성’이라고 실리콘 밸리의 대부 존 헤네시도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에서 토로하지 않았던가. 진정성은 자신 뿐 아니라 타인, 공동체, 인류 전체를 진정으로 대하는 품성이라고.

봉준호의 진정성은 자신이 창조한 작품의 세계관과 자기 자신의 통합을 이뤄내면서 만들어졌다. 그가 이룬 자기 통합의 근사치는 불평등의 반대말인 평등이 아니라, 혐오의 반대말인 존중이었다.

콘텐츠의 안팎을 오가는 봉준호의 이런 식의 ‘예의의 리얼리티쇼'에 반한 전 세계 팬들은, 이제 ‘기생충'이라는 상품을 넘어 ‘봉준호'라는 상표(브랜드)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의 외양, 그의 유머, 그가 일하는 방식, 그가 영광을 나누는 방식 모두를. 틸다 스윈튼과 변희봉에 대한 차별없는 정중과 스태프들의 ‘밥 때'와 어린 연기자들의 ‘잠 때'에 대한 변함없는 존중을!

조선비즈

2019년 5월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을 당시의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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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괴물' ‘옥자'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봉준호는 여지껏 고난을 겪었지만 파괴되지 않는 주인공을 그렸다. 그 점이 중요하다. 관객들은 앞으로도 ‘봉준호 유니버스’에 흩뿌려진 ‘인간 존중'의 쿨한 마법을 찾으려 애쓸 것이다. 봉준호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지구촌 여기저기서 자발적으로 발굴되고 재생산 될 것이다.

점점 더 콘텐츠는 콘텐츠로 끝나지 않고 콘텐츠를 만든 그 사람의 진정성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는 말은 마틴 스콜세지가 했지만, 봉준호에 이르러 ‘진짜로’ 시작되었다.

김지수 문화전문기자(kimjis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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