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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박노승 골프칼럼] (9) 벙커 발자국에 들어간 볼을 어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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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발자국 속에 멈춘 볼. 절망적이다.


지난 칼럼에서 페어웨이 디봇에 들어간 볼을 구제받을 수 있는 룰은 없다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앞 팀에서 벙커에 남기고 간 깊은 발자국에 볼이 들어갔어도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볼은 놓인 그대로 쳐야 한다는 골프룰의 ‘헌법’적인 개념을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벙커 샷을 한 후 자기의 발자국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떠나는 것은 골프의 가장 중요한 에티켓 중 하나이다. 외국의 회원제 골프장에서 이 에티켓을 지키지 않았다가 크게 망신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가끔 들을 수 있다. 만일 앞 팀의 플레이어가 발자국을 정리하지 않고 떠나는 것을 발견하면 뒤 팀의 플레이어가 크게 소리질러 항의하기도 하거나, 성격이 급한 사람은 앞 조로 뛰어가서 직접 따지기도 한다. 조용히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서 마샬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벙커 정리를 안 하면서 계속 플레이 할 수 있는 골프장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많이 다르다. 우선 골퍼들에게 에티켓 교육이 부족하고 플레이 시간에 쫓기다 보니 벙커 정리의 에티켓을 알면서도 서둘러 다음 샷 위치로 뛰기 바쁘다. 캐디에게 벙커정리의 의무를 주는 것도 현실적이 아니다. 새벽에 깨끗하게 정리되었던 벙커들은 2부 플레이가 시작될 때쯤이면 발자국을 피해가기 어려울 지경이 된다. 어느 명문 회원제 골프장의 총지배인은 자기 골프장의 명예를 걸고 발자국 없는 벙커를 만들어 보려고 1년이상 노력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게스트로 온 플레이어는 물론이고 회원들 조차도 자기가 남긴 발자국을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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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히 정리된 벙커. 모든 골퍼들의 소망이다.


에티켓을 잘 아는 골퍼들도 이미 너무 많은 발자국들이 남겨져 있는 것을 보면 자기 발자국을 지워봐야 소용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서 발자국을 정리하지 않는 것이 점점 습관이 되고 당연시된다. 필자가 레프리로 일했던 대한골프협회의 어느 아마추어대회에서 한 선수가 도움을 요청했다. 상황을 보니 페어웨이 벙커로 간 볼이 아주 깊은 발자국에 들어가 있었다. 그 선수가 너무 딱했지만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경기위원회가 앞에 지나간 선수들 중에서 범인을 찾아 경고를 주는 방법이 있지만 피해자에게 보상은 없다. 결국 피해자만 억울하다. 프로 대회에서는 범인을 찾아서 벌금을 부과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고는 종종 일어난다.

그렇다면 한국의 ‘명랑골퍼’들이 플레이하는 중에 벙커의 발자국에 들어간 볼은 어떻게 처리 하면 좋을까? 동반자를 부를 필요 없이 바로 옆의 좋은 라이에 구제를 받거나 볼이 있던 위치의 발자국을 제거 한 후 다시 놓고 치도록 동반자 룰을 정하고 치는 방법이 있다. 골프룰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즐겁게 빨리 치는 것이라는 생각이 골프장의 경영자, 캐디, 플레이어들이 머리 속에 있는 한 골프 룰을 위반하는 동반자 룰은 점점 더 다양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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샷 후에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만한 벙커이다.


참고로 벙커에서 에그 플라이가 된 볼은 어떻게 할까? 에그 플라이가 된 위치가 발자국 속이면 구제하고 발자국이 아니면 그냥 쳐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벙커로 들어간 볼이라면 위치와 에그플라이 등 라이에 상관없이 모두 마크하고 집어서 원 위치와 가까운 곳에 놓고 치도록 하는 것이 더 실용적이다. 그렇게 하면 룰 적용도 쉬워진다. 벙커에 들어간 모든 볼에 프리퍼드 라이를 적용한다면 아무도 벙커 정리를 안 하더라도 상관없다. 앞으로 K골프의 명랑골프 에티켓에서는 벙커샷 후 발자국을 없애야 한다는 조항이 삭제될지도 모르겠다.

골프 룰을 지키며 플레이 하고 싶어하는 대한민국의 스포츠 골퍼들은 점점 갈 곳이 없어진다. 어쩌면 벙커 정리가 깨끗하게 되어있는 새벽 첫 팀의 티 타임이 가장 인기 있는 티 타임이 되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혹시 첫 팀으로 나갔다면 또는 깨끗한 벙커에서 플레이하면서 기분이 좋았다면 다음 팀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발자국을 말끔히 정리하는 골퍼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박노승: 건국대 산업대학원 골프산업학과 교수, 대한골프협회 규칙위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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