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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한방 香이 달큰한 부들부들 갈비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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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진고개의 갈비찜. 임선영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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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 작가


머물고 싶은 순간을 노포(老鋪)에서 찾는다.

60년 동안 서울 충무로를 지키고 있는 식당 진고개. 갈비찜을 먹던 행복한 기억을 다시 찾고 싶었다. 충무로에서 차를 내리자 한자로 된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大衆飮食店’(대중음식점)이라는 간판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1920년까지 이 일대는 흙이 질퍽한 고갯길이어서 진고개라 불렸다. 지형을 평평히 깎고 길을 재정비하면서 충무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식당의 이름은 진고개로 남아있다.

진고개에는 유명한 갈비찜 정식이 있다. 아메리카노를 연상시키는 간장 양념에 한방 향이 훅 하고 올라오는 풍미가 트레이드마크다. 동그란 스테인리스 뚝배기에 펄펄펄 끓여 내오는데 바라보고만 있어도 흐뭇하고 따스했다. 갈빗대 없이 고기로만 푸짐했고 푸딩처럼 포옥 익은 무와 쫀득함이 살아있는 버섯, 쫄깃하게 씹히는 당면까지 이것저것 건져 먹는 재미가 있다. 게다가 양념 안에 대추와 잣이 있어서 쌍화탕을 곁들여 마시는 기분이다.

필자가 이곳을 다시 찾은 것은 3년 만이다. 갈빗살은 여전히 부들부들 젤리 같은 식감이다. 이가 없어도 잇몸으로 먹을 수 있는 고기였다. 고기를 씹다가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가 흔들려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데…”라는 말씀을 하기를 3년. 돈 들까, 아플까, 그런 치아로 고기를 못 드신 게 3년이다. ‘이 갈비찜이면 어머님께 오랜만에 고기 맛을 보여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같이 오지 못한 것도 3년. 그간 변함없는 맛으로 기다려준 갈비찜이 고맙기까지 했다.

푹 익은 고기는 입에 넣자마자 혀에 밀착된다. 이로 가만히 누르기만 했는데도 살점이 흩어지며 향기로운 육즙이 입안에 퍼졌다. 쫀득하면서도 보드랍고 달큰한 맛이 감도는데, 이 순간 마치 잘 숙성된 곶감을 먹는 듯했다. 진한 간장 양념 위에서 쑥갓의 토핑은 매력적이다. 짙은 검은색에 초록색 느낌표를 찍으며 먹으면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실로 쑥갓의 멋스러운 향이 갈비찜의 끝맛을 상큼하게 마무리했다. 최근 국물이 훨씬 더 맑고 개운해졌다. 강하게 치고 올라오던 짠맛과 단맛도 줄었다.

갈비찜 정식에는 생선 조림, 쌈 다시마, 나물 무침 등 여섯 종류의 맛있는 밑반찬이 함께 나온다. 이모님을 연상케 하는 직원분들은 좋은 쌀로 갓 지은 밥을 손님상에 올려주고 모자란 반찬이 없는지 살갑게 챙겨줬다.

이곳의 보쌈김치와 오이소박이도 유명하다. 보쌈김치는 몇몇 요리를 주문하면 무료로 나오는데 다른 경우 맛보고 싶으면 따로 돈을 내야 한다. ‘시가’라고 해서 선뜻 주문하게 되지는 않지만 이전에 먹던 사람들은 이 추억의 맛을 안 시키고는 못 배긴다.

식사 뒤 계산대로 가니 커피 자판기와 조우했다. 사장님이 100원을 넣고 자판기 커피를 뽑아 건넨다. 세상과 사람들이 변해가지만 과거에 머물러 있는 식당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 진고개 서울 중구 충무로 19-1, 갈비찜 정식 1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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