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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아재들은 죽었다 깨도 모를 걸, 빌리 아일리시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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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어 패션까지 핫 아이콘

형광색 머리, 만화 캐릭터 의상

나다움 좇는 밀레니얼 세대 공감

“튀어야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죠”

중앙일보

올해 그래미 어워드 주요 부문 4관왕 에 오른 빌리 아일리시는 음악뿐 아니라 독특한 스타일로도 주목 받는 다. 오른쪽은 친오빠이자 앨범 작업을 함께하는 프로듀서 피니어스 오코넬.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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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퍼짐한 트위드 슈트에 스니커즈, 커다란 샤넬 로고 브로치, 흰색·녹색이 섞인 헤어스타일, 5~6cm는 돼 보이는 긴 손톱.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LA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레드카펫 드레스 사이로 낯선 옷차림의 인물이 등장했다. ‘Z세대 아이콘’으로 불리는 19세 소녀, 빌리 아일리시다.

빌리 아일리시는 지난달 26일 제62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연소로 본상 4관왕에 오르며 팝의 역사를 새로 쓴 글로벌 스타다. 히트곡 ‘배드가이(Bad guy)’ ‘위시 유 워 게이(Wish you were gay)’ 등은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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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ASCAP 팝 뮤직 어워드에 애니메이션 캐릭터 의상을 입고 등장한 빌리 아일리시.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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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재능을 넘어, 패션계는 그의 독특한 스타일에 주목한다. 미국 보그는 3월호 표지 모델로 빌리 아일리시를 낙점했다. 4명의 아티스트들과 4종의 표지를 작업한 그는 이번 화보에서도 화려한 패턴과 그래픽을 담은 넉넉한 오버사이즈에 선명한 네온 컬러의 옷을 입고 특유의 몽환적인 표정을 지었다.

빌리 아일리시의 옷은 오버 사이즈라는 패션 용어가 무색할 정도로 헐렁하다. 이유는 자신의 몸이 성적 대상화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난해 5월 캘빈 클라인 광고 캠페인에 등장해 “세상이 나의 모든 것을 알게 되길 원치 않는다. 그래서 나는 크고 헐렁한 옷을 입는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도 의견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빌리 아일리시는 여성, 남성 어느 한쪽의 성적 코드를 옷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성 구분을 파괴한 ‘젠더리스(genderless)’ 코드로 해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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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그래미 어워드 애프터 파티에선 구찌 로고가 프린트된 보라색 트레이닝 슈트 차림을 선보였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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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그래픽과 패턴, 형광 컬러의 과감한 스타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가끔은 큰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옷을 입기도 하고 그래픽으로 꽉 찬 옷에 고글이나 독특한 형태의 선글라스, 대담한 보석, 투박한 워커 등을 더하기도 한다. 명품 브랜드 로고를 패턴처럼 활용해 상·하의가 로고로 범벅된 옷도,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도배된 옷도 즐긴다. 사이즈뿐만 아니라 스타일도 과하게(오버·over) 넘친다.

이런 빌리 아일리시 스타일은 요즘 밀레니얼들의 ‘플렉스(flex)’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과시하다’ ‘지르다’라는 의미로 고가 제품을 구매했을 때 흔히 “플렉스 했다”고 표현한다. 1990년대 인기와 부를 얻은 흑인 래퍼들이 성공을 과시하려 금목걸이나, 명품 시계 등을 착용하고 이를 플렉스란 단어로 표현한 것에서 유래했다. 그들만의 놀이문화란 해석도 있다. ‘오버하는 것’ 자체를 즐긴다는 것. 과하게 장식하고 오버해서 치장하는 것 자체를 재미있고 ‘쿨’한 것으로 즐긴다는 것이다.

남·녀 성의 경계가 없고, 대놓고 ‘오버’한다는 점에서 밀레니얼 세대에 최적화된 빌리 아일리시를 향한 패션 브랜드의 러브콜도 한창이다. 지난가을에는 MCM 캠페인 모델로 가방·의류·액세서리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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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 마크인 형광 염색 헤어 스타일과 6㎝ 길이의 검정 네일 아트를 선보인 아카데미 시상식.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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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MCM 측은 “빌리 아일리시는 독특한 패션과 음악, 상상력으로 Z세대가 지닌 ‘나다움’을 드러낸다”며 모델 선정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여름 패션브랜드 버쉬카와 협업 컬렉션을 제작했고, 지난 1월엔 H&M과 컬렉션을 출시했다. 모델로서가 아니라 그의 시그너처 스타일을 넉넉한 티셔츠, 후드티, 스웨트셔츠, 비니 등 아이템으로 소개했다. 그만큼 스타일이 확고하다는 의미다. 흔히 ‘굿즈’로 불리는 MD 상품 판매도 한창이다. 지난해 11월 유니버셜뮤직 산하 브랜드 브라바도 코리아에서 낸 빌리 아일리시 공식 MD가 서울 강남의 패션 편집숍 ‘분더샵’에서 판매되기도 했다.

그는 무명의 거리 브랜드를 섞어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하는 것도 즐긴다. 덕분에 한국의 거리 패션 브랜드 ‘오십일퍼센트(51PERCENT)’의 옷이 ‘배드 가이(Bad guy)’ 뮤직비디오에 등장해 화제가 됐다. 오십일퍼센트의 이원재 디자이너는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메일을 보내 옷을 픽업했다”며 “빌리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 그게 이유의 전부였다”고 말했다.

빌리 아일리시 패션의 가장 큰 특징은 개성과 정체성 강조다. SNS를 통해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표출한 것처럼 정체성을 담은 패션 스타일로도 팬들과 소통한다. 평소 채식주의자임을 밝히며 과격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 그는 MCM, H&M과의 협업에서도 식물성 페이크 가죽, 유기농 면, 재활용 폴리에스터 등 지속 가능한 소재들을 사용했다. H&M의 에밀리 비요르크하임 수석 디자이너는 그런 빌리 아일리시를 두고 “자신감 넘치는 가치 표현으로 많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패셔니스타”라고 표현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온라인 편집 브랜드 드롭스의 김주영 담당자는 “요즘 세대는 큰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은 브랜드에 열광한다”며 빌리 아일리시 스타일이 주목받는 이유를 설명했다.

“저는 항상 튀게 입는 걸 좋아했어요. 사람들이 저를 보고 알아봐 줬으면 했죠. 늘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다녔을 뿐인데 어느 순간 제 패션에 이름표가 달리기 시작했어요.” V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빌리 아일리시가 한 말이다. 진지한 해석을 거부하며, 그저 좋아하는 것을 입는 것. 밀레니얼 세대가 빌리 아일리시에게 꽂힌 이유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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