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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단독]'라임 참사' 키운 우리은행…부실 알고도 계속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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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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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이 자체 검사를 통해 라임펀드의 손실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계속해서 고객들에게 판매한 정황이 포착됐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에 이어 라임펀드까지,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17일 중앙일보가 확보한 우리은행 내부 문건 '라임운용 사모펀드 현황 및 관리강화 안'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라임사태가 불거지기 한참 전인 지난해 2월 이미 라임자산운용 ‘플루토 FI D-1호(이하 플루토)’의 부실 사실을 인지했다. 우리은행은 라임펀드 계좌를 1640개(전체의 35.5%)나 판매한 최다 판매사다.



2월말 처음 30% 손실 가능성 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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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이 라임펀드에 대한 위험을 사전 인지한 정황이 담긴 내부 문건 [제보자 제공]


지난해 3월 13일 작성된 이 문건에 따르면 그 해 2월 27일, 우리은행은 라임운용에 총수익스와프(TRS)를 제공한 KB증권을 만나 플루토 펀드에 대해 논의했다. KB증권은 이 자리에서 라임운용 펀드들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잠재적 취약성을 측정하는 시험)를 진행한 결과, 상황이 악화할 경우 플루토에서 70% 회수가 가능(30%는 손실 발생)하다는 결과를 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말은 플루토펀드가 투자한 기업 중 지투하이소닉에 부실이 발생한 직후다. 라임운용은 부도가 발생한 지투하이소닉의 메자닌(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등) 110억원 어치를 상각한 상태였다. 문건은 펀드가 편입한 부동산 중 지방 건이 50%고, 라임운용이 회수경험·시가평가를 한 적은 없다는 이유로 30% 손실 가능성을 언급했다. 추가 부실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고 본 셈이다.



라임펀드 계속 판매해 손실 키워



문제는 우리은행이 라임펀드의 손실 가능성을 인식한 뒤에도 관련 펀드를 계속해서 판매했다는 점이다. 취재 결과 우리은행은 고객들에게 같은해 4월까지 플루토 펀드를 편입한 '라임 Top2 밸런스 6M'를 계속 판매했다. 우리은행에서 DLF 상품과 라임펀드 모두에 가입한 한 투자자의 라임펀드 가입 시점은 지난해 4월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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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에서 해외금리연계 DLF와 라임펀드에 모두 가입한 한 투자자의 관련 가입서류. 라임펀드에는 2019년 4월 1일 가입했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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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18일 우리은행에서 '라임 Top2 밸런스 6M'에 가입한 유모(60)씨는 "연 3%를 주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해서 2억5000만원을 투자했다"며 "원금 30%를 날릴 수 있는 위험한 상품인 걸 알았다면 고작 3% 수익 받고 투자했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가 가입한 펀드의 만기는 지난해 10월 11일이었지만, 만기 사흘 전 라임운용은 환매 중단을 선언했다.



"위험하다" 평가에도…"점진 축소"



라임펀드 부실 가능성에 대한 우리은행 내부 점검은 이어졌다. 지난해 4월 4일 우리은행이 역시 내부 보고용으로 작성한 '라임운용 사모펀드 리스크 점검 및 관리강화 안' 문건에 따르면 지난해 3월 27일 이 은행은 라임자산운용을 실사했다. 플루토와 무역금융펀드(플루토 TF-1호), 2개 펀드를 집중 점검했다.

우리은행은 플루토 펀드에 대한 리스크 요인 세가지를 꼽았다. ▶지방 부동산시장 침체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고 ▶기업금융 자산의 부실화 우려가 있으며 ▶라임운용이 자산내역을 공개하지 않아 현황 파악이 어렵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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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이 라임펀드에 대한 위험을 사전 인지한 정황이 담긴 내부 문건 [제보자 제공]



펀드 전망도 부정적으로 봤다. 지방 부동산 시장의 거래, 가격 등이 악화하고 있다는 점을 먼저 꼽았다. 라임운용의 경우 브릿지론(임시대출) 같은 고위험군 자산 비중이 높아 경매·공매를 통한 담보처분 때 지연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무등급 기업금융 사모사채 중심 투자여서, 투자기업의 담보가치가 낮고 신용이 미흡하다는 점을 들었다. 투자기업의 이자지급 능력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은행이 제시한 대응방안은 판매중단이 아니었다. 우리은행은 라임펀드 연계 상품의 판매 규모를 축소하고 관련 모니터링 절차를 강화하도록 했다. 판매를 중단하면 영업점에 잘못된 신호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서 점진적으로 판매 비중을 축소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고객에게 라임펀드를 팔았다는 뜻이다.



"사기 취소 주장할 수 있다"



당시 내부 보고 문건에서 우리은행은 폰지 사기에 휘말린 무역금융펀드에 대해서도 리스크 관리를 진행했다. 우리은행은 그해 3월 15일 라임운용과 논의한 결과, 무역금융 관련 시장 현황 데이터가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운용사가 제공한 부도율 자료가 당시보다 한참 전인 2011년 통계자료인 데다, 편입 펀드별 주요 자산현황이나 투자제한 준수 등을 확인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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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이 라임펀드에 대한 위험을 사전 인지한 정황이 담긴 내부 문건 [제보자 제공]



무역금융펀드의 평균 담보인정비율(LTV)가 80%고, 보험가입 건에만 대출을 했다는 라임 측 설명과 달리 보험가입 현황과 LTV 확인이 불가능했다. 펀드 편입자산이 주로 아르헨티나, 아프리카 등에 분포해 있는 것도 위험하다고 봤다.

우리은행은 보험현황 확인이 불가능하면 무역금융펀드의 리스크를 높게 평가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펀드 전반의 국가위험이 높고 실체가 불확실하다는 이유에서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무역금융펀드를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현주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라임펀드의 부실을 판매사가 언제 알았는지가 중요한데, 해당 서류에 의하면 늦어도 2019년 2월말 이전 시점에 이미 라임펀드의 부실을 우리은행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 알면서도 고지하지 않고 계속 판매를 했다면 (투자자들은) 사기에 의한 계약 취소를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라임펀드의 부실 가능성을 지난해 2월 말 KB증권과의 미팅을 통해 인지하고 조사를 실시해 그해 4월 6일부터 판매를 중단했다"며 "라임운용 측이 협조하지 않아서 조사에 시간이 걸렸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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