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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없는 '사법농단'…판결문 3건 모두 어김없이 "관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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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재경지법의 한 판사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판결을 보고 한 말이다. 지난해 초 전직 대법원장과 전ㆍ현직 판사 14명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 지 일 년여가 흘렀다. 7개로 나눠 진행되고 있는 재판 중 3개 재판의 1심 결과가 올해 나왔다. 결과는 무죄, 무죄, 무죄다.

세 건의 무죄 판결문에는 어김없이 ‘관행’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이 판사는 “형사 범죄로 처벌하기 어려운 것이 비난 가능성 없이 무결하다는 뜻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개입, 형사수석부장 ‘직권’ 아니라 범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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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14일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일선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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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의 명예훼손 재판에 개입하는 등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임성근(56ㆍ사법연수원 17기)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무죄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가토 지국장의 재판을 맡은 재판부에 ‘가토의 행위가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말해달라’고 요청하거나 ‘판결문 구술본을 고쳐달라’고 요구한 것은 그 자체로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결과를 유도하고 재판의 절차 진행에 간섭하는 재판관여행위"라며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위헌적 행위와 처벌은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임 부장판사의 행위가 위헌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라는 형법상 범죄로 처벌하려면 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행위가 ‘직무상 권한(직권)’에 해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형사수석 부장판사의 사법행정권에 대해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업무상 관행’이었을 뿐이며 임 부장판사에게 독자적인 사법행정권이 있다고 볼만한 '근거 법령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설령 상급자인 서울중앙지방법원장에게 사법행정권이 있더라도 특정 유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결과(판결, 결정, 명령, 중간 판결 성격의 판단, 판결문의 표현 방식과 내용), 기일지정이나 절차 진행 같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는 직무 권한 범위에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전날 판결엔 수석부장 사법행정권 ‘관행’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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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비리 의혹을 은폐하기 위해 정운호 게이트 수사 관련 정보를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부장판사들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왼쪽부터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조의연·성창호 전 영장전담 부장판사.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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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부장판사보다 하루 전날(13일) 선고된 신광렬(55ㆍ연수원 19기)ㆍ조의연(54ㆍ24기) 성창호(48ㆍ25기) 부장판사 판결에서도 관행은 등장한다. 신 부장판사는 임 부장판사의 후임으로 2016~2018년 서울중앙지법 형사 수석부장판사로 재직했다.

신 전 수석은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당시 임종헌(61ㆍ연수원 17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 지시를 받고, 조ㆍ성 당시 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들에게 영장 관련 정보를 보고받아 이를 별도로 행정처에 보고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받았다.

판결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이 집중되는 서울중앙지법의 형사 수석부장판사는 사법행정 업무 수행을 위해 중요 영장재판에 관여하는 영장판사로부터 그 처리 결과와 내용을 사후에 보고받을 필요가 있고, 전통적으로 그래 왔다"고 관행을 인정했다.

이 재판에서는 이른바 ‘영장 가이드라인’이 문제 됐다. 2016년 6월 행정처에서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한 현직 부장판사 7명의 가족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파일을 만들고, 이를 신 전 수석에게 전달했다. 신 전 수석은 이를 조 영장 판사에게, 조 판사는 성 영장 판사에게 전달한다. 두 판사는 신 수석부장으로부터 판사 가족 계좌 문건을 받고 2개월 뒤, 정운호 게이트 관련 영장을 처리하며 판사와 그 가족에 대한 통신 영장을 기각하거나 신용카드거래내역 영장청구를 기각했다.

해당 판사들은 "판사 가족에게 영장이 청구될 경우 결과를 보고해달라는 취지로 이를 주고받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행정처에서 법관 가족에게 청구된 영장을 엄격히 심사해 기각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고, 조ㆍ성 판사의 영장 처리에도 부당함이 없다"며 판사들의 행위가 범죄를 공모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판사들이 법관이 연관된 영장 재판을 하며 특정 관계인을 식별할 수 있는 자료를 별도로 받고, 그 결과를 보고하더라도 사법행정상 관행으로 인정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영장 판사가 수석 부장에게 영장에 대해 보고하고, 관련 자료를 받는다는 건 결국 지시가 내려왔을 때 따르겠다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재판 자료, 퇴직 때 갖고 가는 것도 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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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형사 재판에 넘겨진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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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무죄 선고가 난 유해용(54ㆍ연수원 19기)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판결에는 또 다른 관행이 녹아있다. 당시 재판부는 유 전 수석이 대법원 재판연구관이 작성한 파일을 변호사 사무실에 보관·비치한 사실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는 대법원이 재판부의 사실조회에 회신한 내용이 담겼다.

대법원은 "대법원 재판연구관의 검토보고서 파일이나 종이 문서는 공공기록물법에서 정한 기록물처럼 분류나 정리, 이관, 폐기, 보존 등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재판연구관실에서 만든 보고서는 원칙적으로 대법원 내부에서만 쓰이게 돼 있지만 외부로 반출된 경우에 대비한 보관 방법이나 회수 절차 등이 특별히 마련된 것은 없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대법원 회신결과 등을 토대로 "판사들이 업무를 수행하며 취득한 파일은 보직이 변경되거나 사무실이 바뀌는 경우 개인 저장 매체에 저장한 파일을 새로운 근무지에 그대로 옮기고 계속 참고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유 전 수석에게 공공기록물 무단 유출이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범행 의도가 없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경험이 있는 변호사는 "연구관 보고서를 저작물로 보는 시각도 있어 외부 반출 금지를 강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재판연구관실 문건의 외부 유출문제에 대해 "검토가 다각도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힌 상태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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