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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배터리 전쟁, LG가 승리… SK 합의 나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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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벌인 전기차 배터리 관련 소송전에서 LG화학이 사실상 승리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SK 측의 증거 훼손 및 포렌식 명령 불이행 등을 인정해 SK이노베이션에 조기 패소 예비결정(Initial Determination)을 내렸다.

조기 패소 결정은 변론 등 절차 없이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는 것으로, ITC의 조기 패소 결정이 최종 결정에서 뒤집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SK 측이 LG와 합의하지 못한 채 오는 10월 ITC의 최종 결정에서 패소가 확정되게 되면 SK 측은 배터리 부품 등을 미국 내로 수입할 수 없게 돼 미국 내 배터리 생산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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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을 놓고 가열된 국내 재계 3·4위 그룹 간의 국내외 분쟁이 이번 조기 패소 결정으로 합의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LG 측이 요구하고 있는 '영업비밀 빼내기 사실 인정·사과·손해배상' 등 3개 조건을 SK 측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美 ITC, LG화학 손들어

지난해 4월 국내 1위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LG화학은 ITC와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배터리 3위 업체인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소송의 핵심은 배터리 후발 주자인 SK가 LG 직원들을 빼내가면서 LG가 확보한 공정기술 내용을 빼내갔다는 것이었다. 즉, 배터리를 생산할 때 어떤 소재를, 어느 시점에, 어떻게 써야 가장 적절한 효과를 낼 수 있는지 등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자금을 들여 개발한 지식재산을 빼내갔고, 이를 통해 폴크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납품 수주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급여·복지 혜택이 좋은 기업으로의 자발적인 이직이었고, 기술 유출은 없었다"며 맞소송을 냈고, 이후 양측은 국내외에서 총 9건의 소송전을 벌였다.

14일(현지 시각) ITC의 결정은 양측의 소송전에서 가장 먼저 나온 판결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소송 과정에서 직원들의 컴퓨터 자료를 모두 지우게 하는 등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증거를 인멸했으며, ITC가 명령한 포렌식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조기 패소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는데, ITC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LG화학 측은 "SK의 악의적인 증거 훼손과 포렌식 명령 위반 등 법정 모독이 심각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사실심리나 증거조사 없이 영업비밀 침해 등 우리의 주장을 다 들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오는 10월 최종 결정에서도 LG화학이 승리를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ITC 통계자료에 따르면 특허 소송의 경우 예비 결정이 최종 결정으로 유지되는 비율은 90%, 영업비밀 소송은 100%이기 때문이다.

미국 생산 제동 걸린 SK, LG와 합의하나

ITC에서 한국 대표 기업끼리 소송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TC가 최종 결정을 내리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관련 부품·소재에 대한 미국 내 수입 금지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양산을 목표로 16억달러(1조9000억원)를 투자해 폴크스바겐 미국 공장 등에 공급할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배터리 부품 소재를 미국으로 수입하지 못하게 되면 미국 공장 가동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미국 행정부에 ITC 최종 결정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는 것 등 SK에 남은 반격 수단이 없지는 않지만 공정기술 관련 거부권 행사는 전례가 거의 없다. LG화학도 미국에 대규모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GM과 합작으로 짓기로 해 미국 정부가 한 기업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줄 가능성도 낮다.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의 판결도 문제다. 여기서도 LG화학이 이기게 되면, SK는 미국 내 배터리 생산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금까지 물어줘야 한다.

SK이노베이션은 이날 입장문에서 "LG화학과는 선의의 경쟁 관계이지만, 산업생태계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합의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LG화학도 "이번 소송의 본질은 30년 동안 축적한 우리의 소중한 지식재산권을 정당한 방법으로 보호하기 위한 데 있다"며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9월 양측 최고경영자(CEO)가 배터리 분쟁과 관련해 만났지만,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며 "이제는 LG화학이 확실히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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