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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수 23개월 만에…박인비 통산 20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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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여자오픈 정상 등극

다섯 차례 준우승 만에 우승 기쁨

한국선 박세리 이후 두 번째 20승

도쿄 올림픽 대표 경쟁 본격 시동

중앙일보

박인비가 우승컵에 입을 맞추고 있다. 2018년 3월 우승 후 5번 준우승하고 얻은 우승컵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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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거리 퍼트를 넣고 큰 박수를 받을 때도 별로 기쁜 기색 없이 팬들에게 슬쩍 손만 들어 보였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침묵의 암살자’인 박인비(32)가 오랜만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박인비는 16일 호주 로열 애들레이드 골프장에서 끝난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ISPS 한다 호주 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최종라운드 1오버파 74타, 합계 15언더파로 에이미 올슨(미국)을 3타 차로 꺾었다. 박인비의 LPGA 통산 20승째다. 한국 선수 중 박세리(25승)에 이어 두 번째로 20승 고지에 올랐다.

한국의 신예 조아연(20)에 3타 차 선두로 경기를 시작한 박인비는 첫 홀에서 보기를 했지만, 3번과 4번 홀 버디로 도망갔다. 한때 6타 차 선두를 달렸다. 잠시 위기도 맞았다. 16번 홀 보기로 타수 차가 2로 줄었을 때다. 그러나 박인비는 다음 홀에서 버디를 잡아 깨끗하게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박인비는 경기 후 평소와 달리 무척 기뻐했다. 그의 동기인 신지애, 최나연, 이정은(5)과 유소연, 이미향, 이정은6 등이 샴페인을 퍼부으며 축하했다.

좋아할 만한 이유가 있다. 박인비는 2018년 3월 19일 끝난 파운더스컵에서 19언더파로 LPGA 통산 19승째를 기록했다. 그 이후 지독한 아홉수를 겪었다. 이후 2위만 5차례다. 2018년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연장 끝에 패했고, 휴젤 LA오픈에서도 2위에 머물렀다. 지난해엔 기아클래식 최종라운드에서는 선두로 출발하고도 역전패했다. 월마트 챔피언십에서도 준우승에 그쳤다. 올 시즌 개막전인 다이아몬드 리조트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도 1위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했으나 선두를 지키지 못했다.

‘침묵의 암살자’라는 별명은 표정이 없다는 뜻도 있지만, 유능한 자객처럼 아무도 모르게 확실히 마무리한다는 의미도 있다. 박인비가 19승을 한 후로는 자객의 힘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런 박인비가 23개월의 공백을 깨고 우승했다. 19승은 19일 19언더파로 우승했는데, 20승은 2020년 기록하게 됐다.

박인비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여자골프 금메달을 딴 후 성적이 좋지 않았다. 손목과 허리 부상으로 고생했다.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올림픽 금메달+4개 메이저대회 우승) 달성 후에는 딱히 더 이룰 것이 없었다. 2018년에는 몸이 아프지 않은데도 참가 대회 수를 확 줄였다. 은퇴를 준비했다.

박인비는 올해 다시 올림픽 출전을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세계 정상급 선수가 즐비한 한국 여자 골프의 경우 양궁처럼 태극마크를 다는 게 올림픽 메달 획득보다 어려울 수도 있다. 박인비는 현재 세계 17위다. 올림픽에 가려면 세계 랭킹 상위 15위 안에, 또 한국 선수 중 상위 4위 안에 들어야 한다. 16일 현재 한국 선수 중 고진영(1위), 박성현(2위), 김세영(6위), 이정은6(9위), 김효주(12위)가 박인비보다 위에 있다. 박인비는 여섯 번째다.

통계로 보면 요즘 박인비 실력이 20대 때만큼은 아니다. 2013년 3연속 메이저 우승 때 보였던 날카로운 퍼트 감각은 무뎌진 듯하다. 2012년부터 3년간 1위를 했던 그린 적중 시 퍼트 수 순위는 2018년 13위로, 지난해엔 26위까지 밀렸다. 샷 거리도 2012년 41위에서 지난해 145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박인비는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기적을 만드는 선수이기도 하다. 올림픽이 열리는 2016년 박인비는 손가락 부상으로 경기에 거의 나서지도 못했다. 일부 팬은 기사 댓글로 ‘그 실력이면 올림픽 출전을 양보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인비는 부상 속에서도 출전을 강행했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 후 부상 후유증으로 또 한참을 쉬었던 박인비는 2017년 초 복귀하자마자 우승했다. 2017년엔 허리가 아파 하반기를 거의 쉬었다. 경기 감각이 부족한데도 2018년 복귀 두 번째 대회인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에서 우승했다. 오랜 공백기를 보내고 복귀 뒤 곧바로 우승한 전례는 흔치 않은데 박인비는 세 번이나 했다.

이번 대회에서 박인비의 날카로운 자객 기질이 다시 번뜩였다. 바람은 꽤 강했고 그린은 아주 딱딱했다. 6, 8, 9, 10번 홀에서 박인비는 만만치 않은 파 퍼트 상황을 맞았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무표정하게 쑥쑥 집어넣었다. 실수가 실수를 낳게 않도록 하는 집중력과 대형사고를 내지 않는 안정감도 다시 나왔다.

이 대회 우승으로 박인비의 세계 랭킹은 훌쩍 뛰어오르게 된다. 올림픽에 나설 태극마크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 아직은 짙은 안개에 싸여 있다. 짙은 안개 속에서 자객은 조용히 일본 도쿄로 갈 채비를 하고 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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