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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겨울 이야기 /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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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영준 l 열린책들 편집이사

미혼모 펠리시는 딸 하나를 키우며 도서관 사서 로이크와 교제하고 있다. 로이크는 착한 남자지만 샤프한 편은 못 된다. 펠리시가 동료 미용사와 바람이 난 것을 전혀 눈치 못 채고 있기 때문이다. 펠리시는 잔인하게도 막상스(애인)와 합칠 준비가 마쳐졌을 때쯤 로이크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딸을 데리고 막상스의 집 겸 가게에 들어온 펠리시. 별로 기쁘지가 않다.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색하고, 어린 딸과 놀아주는 시간도 눈치가 보이게 만드는 막상스의 돌변한 태도도 짜증스럽다. 펠리시는 막상스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불과 며칠 만에 두 남자의 집에서 걸어나오는 일이 비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주인공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펠리시의 영원한 사랑은 딸아이의 아버지, 5년 전 휴가 때 만난 샤를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역에서 헤어질 때 주소를 잘못 주는 바람에’ 그를 만날 수 없게 되었지만, ‘결국 그는 다시 나타날 거야. 아무도 그를 대체할 수 없어.’ 펠리시는 이제 애인이 아닌 친구로서 로이크를 따라 극장에 간다.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 배우자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연극이다. 별 사전 지식이 없던 그녀는 죽은 왕비가 살아나는 장면에서 깜짝 놀라 눈물까지 흘린다.

에리크 로메르의 영화 <겨울 이야기>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언제 시작할 수 있는가?’ 죽음만 우리의 상상 속에서 유예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인생을 사는 날도 계속 연기되고 있는데, 내가 준비가 안 되었거나 객관적인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펠리시의 경우, 죽기 전에 샤를과 재회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날이 올 때까지 자신의 인생은 임시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못박아 놓았다. 그래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심지어 샤를조차― 없었는데 말이다. 펠리시는 특별하지 않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잘 알고 있다. 홍상수 영화의 한 등장인물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난 대충 산 겁니다!” 자신이 임시적으로 사는지 진짜로 사는지 타인이 알아차릴 수 없다는 문제가 있지만 적어도 본인들은 그걸 구분하면서 산다. 어쩌면 우리가 타인을 공감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은 그의 진짜 삶과 임시적인 삶, 양보할 수 없는 것과 어찌 되든 상관없어하는 것을 가려서 살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럴 경우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책임이라는 문제를 도외시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내게는 중요한 일인데 이 일에 엮인 상대방은 이게 자신 인생의 본령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온도차를 내가 감수하면 되는 걸까? 또는 그의 잘못이나 몰염치로 여러 사람이 실망하게 되었을 때, 그로부터 ‘너희들이 왜 이 문제에 그리 집착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식의 답변을 듣는다면 어떻게 될까? 왜 하필 네 스스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곳에서 너는 안락과 이기심을 충족하고 있냐고 반문해야 할까?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실무적이든 윤리적이든 책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시 <겨울 이야기>로 돌아가자. 펠리시가 그 부활 장면에서 눈물을 흘린 이유는, 자신이 샤를과 영영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충격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필자의 해석일 뿐, 이 영화를 크리스마스 동화로 보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왜 우리는 인생을 살지 않는가. 사랑했던 것을 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그것의 죽음과 부재를 받아들이고 애도를 표하자. 그게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간으로 돌아오는 첫걸음이다. 부활은 아마 그다음에야 가능한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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