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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메아리] 신종 코로나와 복지 무임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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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확산에 중국인 건보 무임승차 제기

복지재정 둘러싼 세대갈등으로 변할 수도

복지 이기주의는 각자도생 사회 촉발할뿐
한국일보

인천국제공항에 중국 전용 입국장이 설치된 지난 4일 오후 중국발 항공기를 타고 입국한 중국인이 검역 확인증을 보여주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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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이어지면서 한국 사회의 여러 위험 요소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예컨대 국내 환자가 확인되기 시작한 지난달 말 순식간에 수십 만명이 청와대 게시판에 중국인 입국금지를 청원한 사태는 감염병의 확산이 인종주의(반중주의)와 결합할 때 한국 사회에 어떤 ‘재난’이 펼쳐질지를 예견하는 징후로 보인다.

지식인과 언론인들 사이에서 이런 상황에 대한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건 아니지만 오히려 반중주의 여론을 부추기거나 편승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사태 초기 언론 보도 가운데 중국인들에게 지급된 건강보험급여 지출액이 연간 5,000억원을 넘고 전체 외국인 건보 지출의 70%를 상회한다는 기사가 있다. 이 기사는 국내에서 치료를 받은 한 중국인 혈우병 환자에게 3년간 병원비가 4억7,500만원이 들어갔고, 이 환자 가족이 낸 건보료는 총 260만원에 불과하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이어 ‘신종 코로나 사태로 치료 목적의 중국인 입국 사례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는 예측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이 기사에는 국적과 무관하게 모든 건보 가입자가 혈우병 같은 희귀 난치병에 걸리면 건보 진료비의 10%만 부담하는 ‘산정특례제’가 시행되고 있다는 점,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건보 본인부담액이 일정액을 넘을 경우 이를 돌려주는 ‘본인부담상한제’가 적용된다는 것은 언급돼 있지 않다. 국내 건보 가입자의 1% 남짓한 중국인들이 총 건보 지출(61조6,696억원)의 0.8% 정도(4,871억원ㆍ2018년)를 지출한다는 내용도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중국인들이 건보 재정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느낌적 느낌’은 간단한 통계만 찾아봐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반증된다. 마치 한국인들의 피땀 어린 보험료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에 별로 기여하지 않는 중국인들이 5,000억원을 넘게 쓰고 있으며 더 많은 중국인들이 몰려와 이에 ‘기생’할 것 같다는 인상을 주려는게 이 기사의 유일한 목적처럼 느껴진다.

치료 목적으로 입국해 건강보험에 가입한 뒤 단기간 보험료를 내고 고액 치료를 받고 돌아가는 ‘먹튀 외국인’ 문제는 국정감사의 단골 지적 사항이고, 이에 대한 내국인들의 불만을 부당하다고 폄하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정말로 우려되는 건 이런 식으로 복지 무임 승차자를 현미경처럼 걸러내자는 주장의 확산 가능성이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동안에는 그 전염병이 시작된 중국인이 타깃이 됐지만 다른 범주로 변종될 가능성은 과연 없을까.

저출산 고령화의 진행에 따라 늘어나는 사회보험 재정 지출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은 이런 종류의 무임승차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다. 가령 젊고 건강한 30대는 납부한 건보료의 1.1배 혜택을 받지만 60대는 2.5배의 혜택을 받는다. 자녀 세대가 낸 보험료로 노인 세대가 부양받는 셈인데 앞으로 치솟을 수밖에 없는 사회보험료를 감안하면 젊은 세대의 불만은 노인 세대로 향할 수도 있다. 지금 제도를 손보지 않으면 후세대에게 ‘보험료 폭탄’이 예고돼 있는 국민연금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복지 무임승차론이 위험한 이유는 무엇보다 사회보험 제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여한 만큼 혜택을 받는 사보험과 달리 사회보험은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하고 필요에 따라 혜택을 받는 제도를 지향한다. 더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 혜택은 적게 볼 수 있는 ‘불평등’한 제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택을 더 많이 보는 사람들의 힘이 강력하고 자신의 것을 나누겠다는 사람들의 ‘연대의식’ 덕분에 제도는 존속돼 왔다. 연대의식이 이타심에서 출발하는 것과 달리 복지 무임승차론의 저류에는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이기주의가 흐른다. 복지 무임승차론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릴까. 그 끝에는 각자도생 사회라는 지옥도가 펼쳐져 있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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