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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봉준호와 마틴 스콜세지의 평행이론 [김노을의 디렉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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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스포츠 김노을 기자

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자,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편집자주>

“어릴 때 항상 가슴에 새긴 말이 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책에서 읽은 것이지만, 그 말은 우리의 위대한 마틴 스콜세지가 한 이야깁니다”라고 말하는 봉준호 감독의 얼굴에는 감격과 경의가 교차했다.

봉 감독의 ‘기생충’은 지난 10일(한국시간)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며 4관왕을 차지했다. 올해 아카데미 최다 수상작인 동시에 한국영화, 아시아영화계 최초다. 봉 감독은 이번 시상식에서 경합한 마틴 스콜세지를 향한 존경을 자신만의 화법으로 전했고, ‘아이리시맨’이라는 마스터피스에도 불구하고 고배를 마신 마틴 스콜세지는 마치 울 듯한 얼굴로 답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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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봉준호 감독 사진=ⓒAFPBBNews=News1


영화감독을 꿈꾸던 어린 시절부터 세계가 존경하는 거장의 영화를 접해온 봉 감독, 그리고 훗날 새 역사를 쓴 한국감독에게 영감을 준 마틴 스콜세지 사이에는 꽤 닮아있는 이야기들이 흐른다.

◇ 비범한 영화광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봉 감독의 아버지는 한국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 봉산균이다. 외할아버지는 ‘천변풍경’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로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 박태원이다. 집안의 피를 물려받은 봉 감독 남매는 영화감독과 패션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봉 감독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서재에서 수많은 외국 서적, 비디오 등을 접하며 식견을 길렀다. 13살 무렵부터는 영화감독을 꿈꿨고, 봉 감독 스스로도 “12살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되게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라고 소싯적을 설명한다. 대학 재학 시절에는 교내 신문에 직접 컷 만화를 그렸으며 본인이 연출한 영화는 직접 스토리보드를 그린다.

마틴 스콜세지의 어린 시절도 봉 감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과 달리 필름으로 영화를 찍었던 시절, 당시 거장들의 필름을 빌리기 위해 매일 같이 가게를 드나들었고, 11살 무렵에는 손수 스토리보드를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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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봉준호 감독 사진=ⓒAFPBBNews=News1


◇ 연출력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봉 감독은 장편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 직후 가수 김돈규의 ‘단(但)’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데뷔작과 ‘살인의 추억’(2003)에서 열연한 배두나와 박해일이 출연했고, 봉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잡아 진두지휘했다. 남녀 주인공이 지하철의 각 칸을 오가며 진행되는 이 뮤직비디오는 현실과 환상을 섞은 듯한 연출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2003년에는 가수 한영애의 ‘외로운 가로등’ 뮤직비디오도 연출했다. 이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은 배우 류승범이었으며, 봉 감독은 직접 연기 지도를 했다.

마틴 스콜세지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단순한 장면의 배열이 아니라 서사가 있는 뮤직비디오를 원했던 마이클 잭슨은 영화감독들과 협업을 시도했다. 당시 마이클 잭슨의 프로듀서였던 퀸시 존스는 마틴 스콜세지에게 ‘Bad’ 뮤직비디오 연출을 부탁했고 마틴 스콜세지는 18분짜리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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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 마틴 스콜세지 감독 영화 ‘택시 드라이버’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택시 드라이버’


◇ 중심부와 변두리를 향한 비판의식

봉 감독은 단편영화 ‘지리멸렬’(1994)을 통해 대학교수와 신문사 논설위원, 엘리트 검사 등 소위 사회지도층 혹은 엘리트 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위선적 행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았다. 같은 해 ‘백색인’에서는 어느새 무감각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인텔리의 양면성을 비판했다.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그의 작품세계 특징인 기득권을 향한 비판의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할리우드에 첫 발을 디딘 다국적 프로젝트 ‘설국열차’(2013)는 전진하는 수평적 이미지를 열차라는 공간으로 구현했고, 기득권의 편의에 의해 재단된 계급사회와 이기적인 자본주의, 빈익빈부익부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옥자’(2017)로 자본주의가 낳은 탐욕과 사회의 추악한 이면을 꼬집었다.

그의 이름을 대중에 각인시킨 ‘살인의 추억’(2003)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당대 사회상과 폭력적인 정권을 비판했다. 극중 형사들은 연쇄살인범을 잡을 절호의 찬스를 잡고 지원을 요청하지만 정권에 반하는 시위대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하에 수많은 경찰들은 시위 현장으로 향한다. 범인을 놓친 건 형사가 아닌 국가라는 점에서 신랄한 비판이다. 그가 입봉 전부터 천착해온 주제는 ‘기생충’에 이르러 극대화됐다.

봉 감독이 테마를 변주하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듯 마틴 스콜세지도 그래왔다. 이탈리아계인 마틴 스콜세지는 시칠리아를 떠나 뉴욕에 정착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자신을 투영하기라도 하는 듯 영화 주인공 대부분이 이탈리아계 이민자로 설정했다.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등이 마틴 스콜세지의 페르소나들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이 마틴 스콜세지가 상당 기간 천착한 테마다. 몸은 미국에 있지만 미국에도 속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고향에도 속할 수 없는 복합적인 심경이 그의 영화에 오롯이 담겼다. 섞임을 거부당한 이민자들은 중심부가 아닌 변두리에 놓이기 마련이다. 세계에 겨우 반 발 걸치고 있는 위태로운 인물들을 향한 그의 관심은 현재진행형이다.

주제는 ‘비열한 거리’(1973), ‘택시 드라이버’(1976), ‘좋은친구들’(1990), ‘갱스 오브 뉴욕’(2002),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 등 다양한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제시되어 왔다. 자본주의에 함몰된 미국이라는 나라의 실체와 결코 중심으로 들어갈 수 없는 구조에 놓인 변두리 사람들의 현실을 갱스터, 스릴러, 드라마 등 여러 장르로 그렸다. sunset@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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