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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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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아세안 밀레니얼’에게 한·아세안 협력의 미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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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사람들은 대체로 중국에 대해서는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지만 한국은 편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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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트남 여성이 호찌민 하이바쯩 거리에 있는 뚜레쥬르 베트남 1호점 매장에서 빵을 고르고 있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뚜레쥬르는 진출 초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프리미엄’ 전략을 고집해 고급 베이커리 카페로 자리매김했다. /이용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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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열린 ‘2019 한-아세안 청년 학술 에세이 공모전’에 참석한 필리핀 유력매체 필리핀스타의 도린 유 부편집장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아세안 주요 국가들은 매년 6~7%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며 마치 80년대 중후반 한국처럼 자라고 있다. 1989년 39억달러였던 한국과 아세안 사이 교역(수출·수입) 규모 역시 40배 넘게 불어나 2018년 기준 1597억달러를 기록했다. 아세안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수년 내에 중국을 넘어 가장 큰 교역 상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1989년 11월 2일. 한국이 막 서울 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르며 아시아에서 정치·경제적 존재감을 한껏 뽐내던 바로 그 때. 한국은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같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과 처음 손을 잡았다.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나면 인사부터 나누듯 ‘부분대화상대국(Sectorial Dialogue Partner)’이라는 가장 초기 관계에서 시작한 외교적 만남이었다.

첫 물꼬를 튼 이후 어느덧 꼭 만으로 30년이 지났다. 간단한 대화로 시작한 한국과 아세안 회원국 사이 관계는 그동안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이면서 그 어느때보다 깊고 두터워졌다.

‘2019 한-아세안 청년 학술 에세이 공모전’은 베트남 수도 하노이. 외교관을 양성하는 국가교육기관 ‘베트남외교아카데미(DAV)’에서 열렸다. 아세안 각 회원국과 한국에서 온 청년 14명이 지난 3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30년을 준비하기 위해 의기투합한 자리였다.

이들은 모두 국제기구 ‘한-아세안센터(ASEAN-Korea Centre)’가 주최한 ‘2019 한-아세안 청년 학술 에세이 공모전’ 수상자들이다. 한국과 아세안 10개국 정부 간 경제·사회·문화 분야 협력 증진을 위해 2009년 출범한 한-아세안센터는 2016년 이후 4년간 매년 공모전을 열고 젊은 세대들이 발전적인 파트너십을 쌓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이날 세시간 가까이 자신이 써낸 에세이를 발표로 풀어내던 이들의 목소리는 한 지점으로 모아졌다. ‘지난 30년간 한-아세안 협력을 바라보던 주류 시각은 경제 협력을 넘어선 포괄적인 동반자 단계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앞으로 30년간 한-아세안 협력은 경제 분야를 넘어 사회·문화, 정치, 안보 분야까지 확대되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가장 확실한 한 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The only certainty is uncertainty itself).’ 인도네시아 외교장관과 유엔대사를 역임한 마티 나탈레가와가 2018년 아시아·태평양·인도양을 아우르는 혼란스런 국제 정세를 표현한 말이다. 미·중 무역분쟁이나 중·일 외교 갈등 같은 강대국끼리 세력 다툼,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 인도·파키스탄 사이 빈번한 국지적 마찰로 이 지역은 매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아세안은 지리적으로 아시아·태평양·인도양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이들은 유럽 전 대륙이 왕가(王家)의 전쟁터였던 10세기에서 15세기까지 중립국 ‘스위스’가 했던 역할을 맡길 원한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연달아 만났듯, 성큼 불어닥친 불확실성의 시대에 제3국이 대화를 중재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 자리는 아세안이나 그 회원국에서 내어줄 가능성이 크다. 아세안은 이미 1971년과 1995년 ‘평화, 자유, 중립지대(ZOPFAN)’와 ‘동남아비핵지대(SEANWFZ)’를 선언하며 아시아의 스위스를 자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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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외교아카데미의 도 탕 하이 박사가 베트남을 포함한 아세안 회원국을 둘러싼 위험 요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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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난양공대에서 온 앙구안테오는 "아세안 회원국 정상들이 지난해 6월 태국 방콕에서 제34차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과 포용성을 강조했다"며 "아세안 중심성은 미국, 중국과 인도 같은 큰 나라 틈새에서도 중립성을 지키며 한쪽으로 쏠리지 않겠다는 의미, 포용성은 이 과정에서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규칙 기반의 질서’를 내세워, 남중국해 등에서 중국이 군사적으로 영향력을 키우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확실히 견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요약하면 미국이나 중국의 일방적인 편 들기 요구나 세력 확장을 모두 거부하면서, 아시아·태평양·인도양 팽팽한 긴장감이 빠져나갈 구멍이 되겠다는 것. 자칭 ‘아시아 환풍구론(論)’이다.

아세안 10개국은 지정학적으로 모여있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정치·문화·종교적 이질성이 적지 않다. 캄보디아처럼 중국에 우호적인 나라도 있고, 베트남처럼 미국 쪽에 좀 더 기울고 있는 나라도 있다. 이러한 차이에도 급변하는 국제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서로 공통 분모를 추리고, 이해관계가 다른 10개 회원국이 상대 국가와 긴밀히 협력하려면 활발한 인적 교류가 필요하다.

이번 공모전에서 최고 성적을 거둔 인도네시아의 아딜라 누룰 일마는 "한국이 보유한 문화 콘텐츠가 아세안 지역을 하나로 묶는 자양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을 대표해 참여한 부경대 박해림 씨는 아세안 전체를 아우르는 한국 문화 기반 새 동영상 플랫폼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류 콘텐츠가 아세안 인적 교류의 아교(阿膠)가 될만큼 잠재력과 호응도가 크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선 지난 30년간 한국과 아세안이 물건이나 노동력을 나누면서 쌓아온 하드웨어적 협력 관계가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빠르게 전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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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이 모델로 등장한 호찌민 시내의 신한은행 지점. 신한베트남은행은 2018년 964억원의 순이익을 올리며 2017년 같은 기간보다 두배 성장했다. /이용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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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에서 한류는 이미 소비력이 큰 밀레니얼 세대와 결합하면서 새롭게 꿈틀대는 중이다. 이전 한류가 이미 한국을 한차례 휩쓴 K팝과 한국 드라마가 아세안 회원국으로 옮겨 붙는 ‘주입식 한류’었다면, 이제 능동적인 아세안 밀레니얼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한류를 재해석·재구성해 즐긴다.

필리핀스타의 도린 유 부편집장은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는 꾸준히 새롭게 탄생하기 때문에 아세안 회원국에서 대중적 관심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한국은 경제와 안보 협력 분야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지고 있기 때문에 협력의 범주를 넓혀가면 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하노이(베트남)=유진우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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