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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격리장소 하루 새 뒤집은 정부, 아산·진천 트랙터 봉쇄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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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키운 정부 오락가락 셋

박능후 “유증상자도 전세기 탑승”

중국 협의 필요한데 섣불리 발언

청와대 컨트롤타워 자처 논란 일자

‘질병관리본부가 방역 지휘’ 밝혀

중앙일보

충남 아산·충북 진천 지역 주민들이 29일 경찰인재개발원 앞에서 중국 우한 거주 유학생과 교민 700여 명의 수용시설 지정을 반대하며 지게차와 트랙터 등으로 시설 입구를 봉쇄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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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 내부에서 조율되지 않은 다른 목소리가 잇따라 나오면서 혼란을 키우고 있다.

외교당국과 보건당국은 중국 우한에 전세기를 투입해 교민과 유학생을 국내로 데려오는 문제를 놓고 하루 새 서로 다른 태도를 보였다. 지난 28일 외교부는 합동 브리핑에서 37.5도 이상 발열, 구토, 기침, 인후통, 호흡곤란 등 의심 증상자는 전세기에 탑승할 수 없으며 이를 사전 안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9일 오전 6개 의약 단체장 간담회에서 “유증상자도 함께 데려오겠다”며 하루 만에 정부 입장을 뒤집었다. “비행기 1층과 2층에 따로 탑승시켜 의학적·역학적으로 위험 없이 이송하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최종적으로 정부는 무증상자를 우선 이송하기로 결정했다. 유증상자를 데려오는 문제는 중국 정부의 동의가 필요해서다. 이에 대해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현지 검역에 관한 법령과 검역절차를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섣부른 발표로 현지 교민들은 물론 국민의 혼란만 자초한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한 폐렴 중앙사고수습본부(본부장 박능후 장관)는 29일 관계 부처 합동회의를 열어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중앙방역대책본부로서 현장 방역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며 방역 조치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질본의 방역대책본부가 방역 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지난 27일 컨트롤타워를 자처한 지 이틀 만에 말을 바꾼 것이다.

격리장소 천안 주민 반발하자 변경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는 질본을 제치고 청와대·복지부가 나섰다가 방역에 실패했고, 이후 처음부터 끝까지 질본이 중앙방역대책본부를 책임지도록 바뀌었다. 정부가 벌써 메르스 사태의 교훈을 잊은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중국 우한 교민의 격리 수용 시설도 천안에서 아산·진천으로 하루 새 결정을 바꿨다. 이런 오락가락 행보는 충청 민심을 들썩이게 했다. 정부가 29일 발표한 2개 임시생활시설은 충북 진천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과 충남 아산의 경찰인재개발원이다. 교민 간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는 1인 1실 배정이 가능하고, 도심에서 떨어져 있으며, 외부 개방을 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

애초 정부는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과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 2곳에 분산 수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중앙일보가 이를 28일 오전 11시에 최초 보도했고, 외교부도 이날 오후 4시쯤 사전 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그러나 30분 뒤 이태호 외교부 2차관 주재 브리핑에선 “민감한 사항이라 현재로선 격리 장소를 밝힐 수 없다”며 물러섰다. 외교부 관계자는 “어디 한 군데를 콕 집어 발표하기 난감한 상황이다. 최대한 발표를 미룰 수밖에 없는 측면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발표를 미룬 이유는 지역 반발 때문이다. 이날 보도 직후 천안 곳곳에 격리 수용에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총선과 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여야 예비후보들은 한결같이 “천안은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올랐다.

정부가 천안을 후보지에서 제외한 변곡점은 이날 오후 6시쯤 박성식 정부합동지원단장이 우정공무원교육원 인근 주민과 면담한 자리였다. 간담회에 참석한 주민 30여 명은 “검토 중이라고 거짓말하지 마라. 천안으로 오면 몸으로 막겠다”며 반발했다. 현장 분위기를 보고받은 행정안전부가 아산·진천으로 방향을 틀었다.

진천주민 “감염 두려워, 친척 집 대피”

중앙일보

충남 아산·충북 진천 지역 주민들이 29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앞에서 중국 우한 거주 유학생과 교민 700여 명의 수용시설 지정을 반대하며 지게차와 트랙터 등 으로 시설 입구를 봉쇄했다. [사진 독자 박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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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원칙 없는 변경을 하자 이번에는 아산·진천 지역 주민이 들고일어났다. 역시 반대 플래카드가 붙었고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경찰인재개발원 앞에는 진입을 막는 트랙터까지 나타났다. 천안아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성명에서 “김포공항에서 가까운 정부 재난대피시설을 활용하라”고 주장했다. 진천 충북혁신도시 주민 박모(39)씨는 “당분간 혁신도시를 떠나 친척 집이나 숙박시설에서 거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합리적 기준도, 절차적 타당성도 결여돼 있고 지방정부와 단 한 번의 협의도 없었다. 정치적 논리와 힘의 논리에 밀려 아산으로 결정됐다”(오세현 아산시장), “정부가 아무런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사항을 받아들이기 힘들다”(송기섭 진천군수) 등 지자체의 반발도 거셌다.

정부 내부에서조차 한탄이 나왔다. 행안부 한 공무원은 “찜찜하다거나 방역망이 뚫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혐오시설’이 아니라면서 주민 반발이 심하니 결정을 바꾸는 아마추어식 업무 추진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지방분권특별위원장)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격리시설을 먼저 정확하게 밝히고 안전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설명했다면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전염병 발병 주기가 짧아지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형 국가 지정 격리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갑 한림대 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수용이 끝난 뒤 소독·방역을 철저히 하면 감염학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고 강조했다.

김기환·이에스더 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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