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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우한 폐렴 포비아’…유튜브·SNS서 왜곡 정보·공포 조장 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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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폐렴’ 감정대응 자제 목소리 / 중국인 입국금지 국민청원 쇄도 / “교민 수용 반대” 진천·아산 반발 / 이 와중에 정치권은 당리당략만 / 전문가 “성숙한 시민 의식 필요”

세계일보

29일 중국 텐진에서 출발한 비행기를 타고 들어오는 탑승객들이 고정검역대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후베이성 우한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전세계로 번지고 국내에서도 확진자와 의심환자가 잇따라 나오면서 국민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유통·관광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증시마저 출렁이는 등 가뜩이나 힘겨운 경제는 우한 폐렴 파장에 짓눌리는 형국이다. 그야말로 국가적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 차원의 총력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다. 우한 폐렴 확산과 국내 2차 감염을 막도록 정부와 여야 정치권을 비롯해 의료기관 종사자 등 온 국민이 합심해 검역·방역 시스템에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국민 불안을 자극할 만한 우려스러운 상황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숙주로 한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왜곡된 정보로 우한 폐렴을 둘러싼 공포를 과장하는 사례가 난무한다.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 쓰러진 취객을 두고 우한 폐렴에 걸린 중국인이 쓰러진 것처럼 속이거나 ‘국내 확진자가 들른 지역의 대형 쇼핑몰에서 감염된 환자가 실려갔다’는 설이 삽시간에 퍼진 게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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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인근에서 열린 '중국인 입국금지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뉴스1


국내에 입국하거나 거주하는 중국인과 중국동포를 대상으로 ‘입국·접촉 금지’ ‘중국 송환’을 촉구하는 등 혐오·차별·배제를 부추기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런 기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도 반영돼 ‘중국인의 입국을 한시적으로 금지하자’는 내용의 청원에는 게시 엿새 만인 29일 오후 3시 현재 57만7000여명이 동의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해당 청원 글에 대한 관심을 독려하거나 홍콩, 대만 등 주변 국가에서 어떤 조처를 하는지 비교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자유대한호국단 등 일부 보수성향 시민단체도 이날 청와대 사랑채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자칫하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고 국가의 공공 안녕질서도 위기에 빠질 수 있다”며 “정부는 관광 목적의 중국인 입국을 잠정적으로 금지하라”고 촉구했다.

국민청원은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을 경우 2개월 이내 답변을 하게 돼 있지만 이번 청원의 경우 청와대는 “국민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가능한 빨리 답을 내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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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귀국하는 교민과 유학생의 격리수용 장소로 알려진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입구에서 29일 주민들이 격리수용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진천=이제원 기자


정부가 우한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 700여명을 전세기로 데려와 격리 수용할 시설이 위치한 충북 진천과 충남 아산 지역에서는 “왜 우리 지역이냐”는 반발도 터져나왔다. 전날 우정교육 공무원 연수원 등이 거론된 천안지역 반응처럼 이날 수용시설이 확정된 충북 진천(혁신도시 내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의 군의회와 주민 등은 일제히 발끈했다.

송기섭 진천군수는 “(충남) 천안에서 반발하니까 진천으로 변경하면 주민들이 선뜻 수용할 수 있겠느냐”고 따졌고, 자유한국당 경대수(진천·음성·증평) 의원은 “주민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격리시설을 변경하라”고 요구했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무조건 우리 지역은 안 된다는 지역이기주의가 아닌 정부에 철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특히 지역 정치인들이 주민들의 불안함을 부추기는 것은 대단히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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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아산 주민들이 경찰인재개발원에 우한 교민 격리 수용 반대하는 현수막을 붙여놓고 있다. 뉴스1


상황이 이런데도 여야 정치권은 국론을 모아 우한 폐렴에 대한 대응 역량을 결집시키는 리더십을 보여주기는커녕 삿대질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특히 제1 야당인 한국당은 정부 대응을 비판하며 여론에 편승한 초강경 대책을 주문했다. 원유철 의원은 “정부가 정신을 놓았다. 우한 등 후베이성에서 입국하거나 이곳을 경유한 중국인 등 외국인에 대해 입국정지 조치를 해야 한다”고, 조경태 최고위원은 “한국에 온 중국 관광객을 즉각적으로 송환하라”고 각각 주장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국민 안전에 여야가 따로 없다”(이해찬 원내대표), “한·중 양국 국민의 혐오를 부추기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이인영 원내대표)고 한국당의 태도를 에둘러 비판했다.

이를 두고 지난해 10월 바이러스성 질병 검역조사 체계 강화를 골자로 발의된 ‘검역법 개정안’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 문제로 충돌하느라 무산시킨 여야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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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국제공항에 마스크를 쓴 여행객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신종 감염병에 대한 걱정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과도한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우선 정부가 우한 폐렴 관련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고 투명하게 국민에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감염병 예방·인지 후 행동수칙을 준수하는 등 의료기관 종사자와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신종 감염병은 국제적 연대가 중요한데 입국금지 조처를 하게 되면 현실적으로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며 질병 발생 현황, 추이 등을 고려한 ’적정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도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반영된 대응방식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강은·김달중·유지혜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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