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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TEN 인터뷰] '영웅본색'으로 뭉친 두 남자, 유준상·왕용범…"라스베이거스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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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김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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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웅본색’으로 호흡을 맞추는 연출가 왕용범(왼쪽), 배우 유준상. / 조준원 기자 wizard333@


“함께라면 믿고 갈 수 있습니다.”

뮤지컬계에서 ‘콤비’로 불리는 배우 유준상과 연출가 왕용범이 서로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영웅본색’으로 다시 뭉쳤다. 왕 연출과 유준상은 2009년 ‘삼총사’를 시작으로 ‘잭더리퍼’ ‘프랑켄슈타인’ ‘벤허’ 등 신선하고 파격적인 뮤지컬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나왔다. 왕용범 연출은 이번에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 1편과 2편을 섞어 뮤지컬판 ‘영웅본색’을 완성했다. 홍콩의 밤거리를 표현하기 위해 LED 세트와 영상을 도입했다. 유준상은 극중 ‘큰형님’ 자호 역을 맡아 작품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는다. 남자의 우정과 의리를 다루는 ‘영웅본색’은 오는 3월 22일까지 관객들을 만난다. 매회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이끌어내며 공연에 한창인 왕용범 연출과 유준상을 최근 서울 명륜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10. ‘영웅본색’의 마니아라고 들었다. 뮤지컬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왕용범 : ‘영웅본색’ ‘천녀유혼’을 뮤지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10년 전부터였어요. 당시에 한 인터뷰를 찾아보니 그런 말을 했더군요.(웃음) 10년 만에 ‘영웅본색’을 만들었으니…이렇게 꿈을 이뤄나가고 있네요. 그동안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왔어요. ‘프랑켄슈타인’도 처음엔 주위에서 “머리에 나사 박힌 괴물 이야기가 되겠어?”라는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흥행도 이루고 지금도 일본에서 한국 라이선스로 공연되고 있습니다. ‘벤허’도 마찬가지였죠. 이번에 ‘영웅본색’도 뮤지컬로 어떻게 만드냐고 다들 반문했는데, 일단 작품을 본 관객들은 정말 좋아해요. 영화를 본 사람은 그때의 향수와 더불어서 뮤지컬의 색다른 맛에 즐거워하고, ‘영웅본색’의 세대가 아닌 관객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가죠. 이번에도 해냈구나, 이런 자부심이 있습니다.
유준상 : 100개가 넘는 장면이 전환되는 것만 보더라도 티켓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혁신적인 뮤지컬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저 역시 얘기만 들었을 때는 ‘이게 가능한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리허설 때 감탄하면서 봤죠. 영화 한 편을 무대 위에서 찍고 있는 느낌입니다.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요. 하루에 2회 공연을 해도 끄덕없어요.(웃음)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하면 할수록 깊이를 찾게 되거든요. 더 많은 관객들이 이 작품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10. 왕용범 연출가와 다섯 작품째 같이 하기로 한 이유는?
유준상 : 왕 연출과 나의 기록으로 남는 거잖아요. ‘삼총사’부터 ‘잭더리퍼’ ‘프랑켄슈타인’ ‘벤허’ ‘영웅본색’까지 호흡을 맞추면서 새로운 걸 해냈다는 기분이 좋습니다. 왕용범 연출은 제가 70세가 돼서도 할 수 있는 작품도 남기고 싶다고 이야기하죠. 저 역시 기대돼요.(웃음)

10. ‘영웅본색’을 뮤지컬로 만든다고 했을 때, 홍콩의 오리지널 제작진의 반응은 어땠나?
왕용범 : 포천스타엔터테인먼트에서 ‘영웅본색’의 1, 2편 판권을 모두 샀어요. 왜 뮤지컬로 만들려고 하느냐고 의아해했고, 의심을 하기도 했죠. 일부 스태프들이 한국에 와서 첫 공연을 본 뒤에는 중국 본사에 투자를 이끌어내겠다고 할 정도로 좋아했어요. 명성에 누를 끼치지 말아야겠다고 열심히 만들었는데, 원작자들이 좋아해 줘서 다행이죠. 홍콩에서 공연한 뒤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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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으로 뭉친 왕용범 연출가(왼쪽)와 배우 유준상은 “둘이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화려한 LED 화면을 쓴 이유가 있나?
왕용범 :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작품의 콘셉트를 잡을 때, ‘홍콩은 빛의 도시다’라면서 출발했어요. 그래서 영상으로 관객들에게 빛나는 홍콩을 보여주고 싶었죠. 다음은 뮤지컬이지만 영화보다 속도감이 떨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장면 전환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했어요. 영화보다 장면 수가 더 많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건 배우의 연기를 빛나게 하기 위해서죠. 그래서 캐스팅에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 배우들의 연기 워낙 절절하고 설득력 있게 표현해줘서 연출가로서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10. 뮤지컬에 처음 도전하는 이장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왕용범 : 예전부터 눈여겨봤습니다. 성장하는 모습이 장국영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장국영도 ‘영웅본색’을 찍을 때 신인 배우였죠. 이장우도 뮤지컬계에서는 신인이고, 그에게는 때묻지 않은 풋풋함이 있어요. 무공해 같은 배우죠. 노래하는 모습을 몇 번 봤는데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제안했습니다. 때묻지 않은, 영화 같은 연기를 잘 표현하고 있어요.

10. 유준상과의 시너지 효과도 느끼고 있나?
왕용범 : 그럼요. 가장 중요한 건 무대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인데, 그걸 잘 지키고 작품을 할 때 큰 기둥이 되는 사람이에요. 대본도 가장 빨리 외워서 후배들에게는 불편한 선배죠.(웃음) 연출가가 미처 헤아릴 수 없는 배우들의 마음을 읽고, 소통하는 역할도 해주죠. 창작을 하면 산을 넘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 배우들의 신뢰가 힘이 됩니다. 저는 유준상이 믿어주니까 산을 넘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같이 하면 두려울 게 없어요. 팔순이 된 유준상과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하는 게 꿈이에요. 공연장을 바다로 채워놓고 ‘노인과 바다’를 1인극으로 하고 싶네요. 실현할 수 있겠죠?

10. 여러 작품을 하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졌겠다.
유준상 : 창작품을 세계 무대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이 만드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매년 미국 뉴욕에 가서 공연을 봅니다. 예전에는 ‘우리도 저렇게 만들 수 있을까?’라며 감탄하면서 봤는데 이제는 ‘우리도 할 수 있어!’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그들이 인정하는 우리의 작품도 나오고 있으니까요. 10년 전 이야기한 ‘영웅본색’을 만든, 약속을 지키는 연출가와 함께라면 뭘 해도 믿을 수 있죠.

10. 무대에 올리기 전까지 어려운 점은 없었나?
유준상 : 공연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 일주일은 장면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계속 반복했어요. 마치 유격 훈련받는 것처럼 말이죠.(웃음) 한 달 반 전에 완벽하게 돌아가도록 만들었어요. 끊임없이 연습해서 ‘초연 맞아?’라는 소리가 나오도록 하기 위해 대본도 더 빨리 외웠고요. 하루 만에 1, 2막 동선 확인도 다 했죠. 머릿속에 모든 장면이 들어있는 왕용범 연출을 보고 배우들은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왕용범 : 사실 1막과 2막 동선을 하루 만에 확인한 그날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졌죠. 액션 영화는 편집을 해서 강렬한 장면만 사용하지만, 우리는 라이브니까 배우들이 어색해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게 중요했어요. 배우들이 연습하면서 의심의 눈빛을 지을 때마다 더 이를 악물고 했죠.(웃음)

10. 뮤지컬 ‘영웅본색’만의 특별한 점은?
왕용범 : 저는 ‘영웅본색’을 정말 좋아하지만 젊은 친구들은 ‘재미없다’고 말하기도 해요. 워낙 오마주한 작품이 많이 나오면서 오히려 원작이 진부해 보이죠. 오리지널인 원작이 아류처럼 보일 정도니까요. 영화보다 뮤지컬이 더 재미있다고 말하는 스태프들도 있어요. 홍콩의 느와르는 서양의 느와르보다 훨씬 화려해요. 화려한 액션을 살리기 위해 안무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댄스 뮤지컬인가?’ 할 정도로 공연에 안무가 많이 나오고, 쇼 뮤지컬처럼 흥을 느낄 수 있죠. 더불어서 배우들마다 색깔이 다 달라요. 한 작품을 두고 해석하고 느끼는 게 다르기 때문에 연기도 달라지죠. ‘의리’ ‘희생’이라는 가치를 담고 있는 작품이어서 그런지 배우들끼리의 호흡과 팀워크도 좋아요. 서로 사악한 마음을 갖고 복수하는 작품을 할 때는 실제 분장실 분위기도 싸늘해요.(웃음) 그런데 ‘영웅본색’은 내가 너를 위해 죽고 희생하는 작품이니까 분장실도 정이 넘치죠. 우리는 정말 행복하게 공연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관객들에게 전해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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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에서 자호 역을 맡은 배우 유준상. / 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몸매 유지와 체력 관리 비법이 궁금하다.
유준상 : ‘영웅본색’의 의상 선생님과 오랫동안 같이 일하고 있는데, 10년 전 사이즈와 똑같다고 좋아해 주세요.(웃음) 계속 유지하고 싶어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관리를 하죠. 나이 들었다고 지친 티를 내면 분위기는 엉망이 되거든요. 이번 작품의 앙상블 배우들의 부모님과 제 나이가 비슷하더군요.(웃음) 먼저 가서 인사하고 그들이 내게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고민하죠. 무엇보다 ‘무대 정신’을 계속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무대가 얼마나 힘든 곳이고, 훌륭하고 처절한 곳인지 되새기며 살아남기 위해 매일 일지도 쓰고요. ‘오늘도 쓸 말이 있을까?’ 싶은데, 항상 많아요.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저의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10. 작품 안과 밖에서 ‘큰형님’ 역할을 해야하는 부담은 없을까?
유준상 : 부담은 없어요. 오랫동안 무대 위에 오르면서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더 좋은 이야기를 들려줄까, 그게 가장 고민입니다. 어느덧 선배가 됐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어떻게 하면 그 친구들을 돋보이게 만들어줄지 고민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가요.(웃음)

10. 스스로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나?
왕용범 : 관객들이 ‘영웅본색’을 ‘커튼콜 맛집’이라고 부르더군요. 느와르 장르라고 해서 폼만 잡는 게 아니라 모두의 축제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 노력들이 커튼콜 때 빛을 발하고, 관객들이 모두 마음을 열고 즐겨주는 것 같아서 만족합니다.
유준상 : 공연 전 무대에서 처음 리허설을 했을 때, 배우들이 계속 감탄했어요. 우리가 설 무대를 보면서 놀랐죠. 왕용범 연출과 작품을 하면 늘 놀라는 장면이 나와요. 그걸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볼 가치가 있습니다. 무대 디자이너가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무대 그림만 1000장 넘게 그렸다고 해요. 홍콩에서 사진을 엄청 찍어오고, 모든 장면을 다 그렸죠. 모두가 그만큼 피나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영화 같은 뮤지컬’이라고 불리는 작품이 나왔어요.

10. 두 사람의 다음 작품은 ‘천녀유혼’인가?
왕용범 : ‘천녀유혼’도 (마음에) 있는데, 3년 전쯤 유준상에게 “이제 단테를 하시죠”라고 말했어요. ‘단테의 신곡’을 오랫동안 준비 중입니다. 곧 제가 생각하는 수준의 기술 발전이 이뤄질 것 같습니다.
유준상 : 그때부터 단테와 관련된 서적을 읽고 있습니다.(웃음) ‘그걸 만든다고?’ 싶은데 또 만들 것 같잖아요, 하하. 얘기 듣자마자 바로 서점 가서 화보집까지 찾아보고 공부하고 있어요.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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