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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중국인 입국 금지" 집회도 열렸다···심상찮은 제노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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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9일 오후 서울 청와대 인근 도로에서 자유대한호국단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관련해 중국인 입국금지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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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확산되면서 지난 23일 시작된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청와대 국민 청원이 7일 만에 57만명을 돌파한 가운데 온ㆍ오프라인상에선 ‘노 차이나(No China)’를 외치는 반중(反中) 정서가 퍼져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9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 도로엔 붉은 오성홍기를 배경으로 ‘중국인 입국 금지’가 적힌 집회 무대가 세워졌다. 대부분 중장년층인 참가자 30여명은 ‘중국 폐렴 입국 금지’ ‘입국 금지 즉각 실행’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었다.

집회를 주최한 극우 성향의 시민단체 ‘자유대한호국단’은 이날 “(중국인) 입국 금지는 정치적 이념을 떠나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다. 국민의 생명보다 중국 관광객 입국을 우선해선 안 된다”면서 “대통령은 헌법에 규정된 긴급명령권을 사용해 관광 목적의 중국인 입국을 잠정적으로 금지하라”고 요구했다.

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집회 현장을 지나가는 중국인 추정 관광객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고성을 외치기도 했다. 경찰의 제지로 물리적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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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서울의 한 음식점 입구에 중국인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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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때 고향 갔다 온 중국 유학생 불안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도 우환 폐렴과 관련한 근거 없는 소문과 함께 ‘반중 정서’가 널리 퍼지고 있다.

각종 대학생 커뮤니티에는 "중국인 유학생들 춘절에 고향 다녀왔을 텐데 기숙사 같이 써도 괜찮은 거냐" "야생동물을 먹는다니 같은 사람이 맞냐" 등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지역 커뮤니티 등에도 "중국인이 많이 가는 병원을 알려달라. 가기 싫다"거나 "가게들이 중국인 손님을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경기도 소재의 한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A씨는 “캠퍼스나 기숙사에서 자주 중국인을 마주치고 공유하는 장소가 넓은 만큼 예기치 못한 감염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며 “주위 학생들도 중국인과 같이 기숙사를 쓴다는 사실에 불안해하고 있다. 학교 측에서 조처를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대형 성형외과 관계자도 “3번째 우한 폐렴 확진 환자가 강남권 성형외과를 들렀단 사실이 알려지며 고객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걱정하는 고객이 많다”며 “(이로 인해) 원래 잡혀있던 중국인 고객들의 시술 예약은 전부 취소했다. 당분간 중국인 예약은 받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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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교류촉진위원회 이창호 위원장(가운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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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적 조치로 해결 못 해"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짙어졌다. 같은 날 오후 3시 무렵 시민단체 ‘한중교류촉진위원회’(한중교류위)는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이 같은 비상사태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들은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면서도 “일각에서 제기되는 중국인 입국 금지와 같은 폐쇄적인 조치로는 이 사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중교류위는 이어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한국인 전체의 방역이나 예방도 필요하지만, 지리적으로 가깝고 언제든 국내로 유입될 소지가 많은 만큼 우리 정부의 적극적 대(對)중국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정부는 대책기구를 긴급히 구성하고 필요하다면 국무회의를 소집해 행ㆍ재정 지원 특별 시행령을 제정해 중국 긴급 구호에 나서야 한다. 또한 한국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의료진과 연구원 등 전문 구호 인력과 마스크 등 의료 장비를 즉각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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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가운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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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입국 금지 국제법상 어려워"



정부도 입국 금지가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을 비쳤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오전 의약단체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일괄적으로 어떤 국적을 가진 사람을 금지한다는 것은 국제법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검역을 더 강화해서 국적과 관계없이 증세가 있거나 병력이 있는 분들을 걸러내는 게 맞는 방법이지, 특정한 국가의 국적을 기준으로 금지하는 것은 굉장히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장관은 청와대 청원 등 입국 금지 여론에 대해서는 “(국민들을) 조금 더 이해시켜야 할 것 같다”며 “미국에서 장기거주하는 중국 국적자가 증세도 없는데 단지 국적만으로 걸러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원리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심각한 상태고, 일시적 입국 금지를 요구하는 만큼 국민의 정당한 두려움을 성급하게 ‘인종주의’나 ‘제노포비아’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다만 자국민의 안전과 인권이 중요한 만큼 보편적 인권 역시 중요하다. 우한 등 특정 지역 출신 중국인의 감염 위험이 높고 이를 주의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천편일률적으로 중국인 전체를 위험집단으로 인식하는 것에는 차별적인 요소가 있다”고 우려했다.



명동·홍대에서는 마스크·손 소독제 대란



한편 서울 명동과 홍대 등 지역에서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대량으로 구매하기 위해 약국과 편의점, 화장품 매장 등에 줄을 서는 등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CU는 국내에서 우한 폐렴 확진자가 발생한 20일부터 27일까지 마스크 매출을 분석한 결과, 지난달 같은 기간 대비 10.4배 급증했다고 29일 밝히기도 했다. 통상 미세먼지 등으로 겨울철 마스크 매출이 평소보다 5~8배 증가하긴 하지만 이번 달의 경우 우한 폐렴에 대한 우려가 겹치며 증가 폭이 더 늘어났다는 것이 CU 측의 설명이다.

이병준·채혜선·이우림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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