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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병원도 호텔도 택시도 "중국인 안 받아요"... '우한 폐렴'發 'No China' 확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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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덮친 ‘우한 폐렴’에 확산하는 反中 감정
성형외과도, 호텔도, 택시도 "중국 손님 안 받아요"
"정부 불신도 무분별한 혐오 야기…사회 전체에 악영향"

중국발(發)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불안감이 국내에서도 급속하게 퍼지면서 곳곳에서 반중(反中)·혐중(嫌中)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주로 찾는 호텔, 식당, 성형외과 등에는 ‘중국인 손님은 받지 않는다’는 문구가 나붙었고, 일부 택시기사는 중국인 승차를 거부했다. 온라인에선 반일(反日) 슬로건이던 ‘노 재팬(No Japan)’이 ‘노 차이나’(No China)로 옮겨가는 움직임도 나왔다.

정부의 방역망이 뚫린 것도 반중 정서에 기름을 부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3·4번째 확진자가 서울과 수도권 일대를 활보한 사실이 알려진 뒤 정부 방역 체계에 대한 불신 때문에 커지는 불안과 공포감을 중국에 대한 혐오로 분출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방역에 대한 신뢰를 주지 못할 경우 무분별한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로 사태가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 성형외과는 예약 취소·택시는 승차 거부… 中 관광객 "환자 취급…불쾌"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성형외과. 중국인 손님 2명이 "상담을 받고싶다"고 하자, 직원은 이들의 체온부터 잰 뒤 "한국에 입국한 지 얼마 됐느냐"고 물었다. "5일 됐다"는 말에 직원은 "체온은 정상이지만 (우한 폐렴) 잠복기일 가능성이 있어 병원 이용은 어렵다"며 돌려보냈다. 병원 관계자는 "전체 고객의 10%가 중국인 손님이지만, 국내 고객의 예약 취소 문의가 잇따라 불가피하게 중국인 손님을 받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호텔에선 "투숙이 불가하다"는 안내를 받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캐리어를 끌고 거리로 나와 인근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이 호텔은 지난 24일까지 42건의 중국인 관광객 예약분을 전액 환불조치하고, 당분간 중국인에 한해 투숙을 금지하기로 했다. 호텔 관계자는 "중국인이 아닌 다른 국적 투숙객의 불안감을 고려해 중국인의 예약을 일시적으로 막아뒀다"고 설명했다.

이날 신사동 가로수길 앞에서 택시를 잡던 중국인 관광객 3명은 세차례 승차 거부를 당했다. 일단 택시에 탑승해 목적지를 말해도, 중국어를 쓰면 "미안하지만 내려달라"는 기사들이 많았다. 한 택시기사는 "오전에도 명동으로 가 달라는 중국인 3명을 태웠다가 정중하게 ‘내려달라’고 말했다"며 "혹시라도 이 차에 탑승한 손님들한테 병이 옮을까 봐 염려됐다. 미안해서 중국인이 많은 명동, 강남역, 홍대 등은 오늘 웬만해선 가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연달아 승차거부를 당한 중국인 관광객 여성 A(23)씨는 "우한에서 온 것도 아닌데 무작정 거부하면 어쩌자는 것이냐"며 "(우한 폐렴) 환자도 아닌데 환자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했다. 택시를 잡지 못한 이들은 지하철 3호선 신사역으로 향했다.

◇온라인 달구는 ‘노 차이나’… "우한 폐렴은 中 생화학무기" 등 괴담에 불안감↑
온라인 공간에선 ‘노 차이나’ 포스터가 공유되며 노골적인 반중 정서가 표출되고 있다. 작년 중순부터 반일(反日)운동이 확산하며 만들어진 ‘노 재팬(No Japan)’ 포스터를 패러디한 것이다. 이 포스터에는 ‘보이콧 차이나’ ‘코로나 바이러스’ ‘죽기 싫습니다 받기 싫습니다’ 등의 문구가 담겨있다. 중국인의 국내 입국금지 조치를 촉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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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일명 ‘노 차이나' 포스터.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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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국내에서 발견된 3·4번째 감염자가 서울 강남 등 수도권 일대를 활보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정부 방역 관리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폭발하고 있다.

"중국 불매운동을 추진해야 한다" "중국인의 한국 입국을 거부해야 한다" "중국인 유학생 유입을 막아야 한다" 등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청원글’이 잇따라 등장하고, 맘카페에선 관련 청원글을 공유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구체적 대응책이 나오지 않는 사이 가짜뉴스와 괴담은 무분별하게 생성·확산되고 있다. 이날 오전 유튜브에는 "우한 폐렴은 중국 공산당의 생화학 무기"라며 "중국의 생화학무기 연구시설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유출됐다"는 내용의 영상이 올라와 1만 2000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트위터에선 ‘인천에서 국내 첫 우한 폐렴 사망자가 나왔다’ ‘현재까지 폐렴 확진자가 9만명이 넘었다' ‘발표되지 않은 환자가 더 있다’ ‘감염자 기침 한 번에 주변 14명이 동시에 감염된다’ 등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글이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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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우한 폐렴이 중국 공산당의 생화학무기라고 주장하는 유튜브 영상. 1만2000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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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대한 불신이 외국인 혐오로 이어져"
전문가들은 "정부의 방역에 대한 불신으로 생겨난 공포와 불안이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질병 관리에 대한 신뢰를 주지 못하면서 무작정 공격 대상을 찾는다는 것이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작정 공격 대상을 찾는 제노포비아보다 스스로 개인 위생에 신경 쓰는 게 질병 관리에서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이라며 "국가간 불필요한 혐오 감정이 확산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국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 ‘불신 사회’로 번질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임상조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중국인의 입국 금지는 최후 수단일 수밖에 없고, 밀입국시 경로를 파악할 수 없어 전염병이 번질 경우 더 복잡해진다"면서 "제노포비아는 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으며, ‘마스크 착용’ ‘손 씻기’ 등이 가장 효율적이며 좋은 방법"이라고 밝혔다.

[김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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